그래도 운동하기 싫은 날이 있지

바쁜 스케줄에 지친 직장인을 위한 위로

by 문마닐


스불재 인생


최근 두 달 동안은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였다. 원래도 바쁘게 살아왔지만 이건 좀 정도가 심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야근을 불사하며 회사 일을 하고, 수요일에는 퇴근하자마자 차를 몰고 세 시간 반 거리의 도시에 가서 하룻밤 잔 다음에 목요일에 8시간 동안 설계 강의를 하고 다시 운전을 해서 서울로 돌아왔다. 금요일에는 연차를 내거나 출근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 내내 마음에 걸려 있던 대학원에 드디어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제출하고 면접까지 준비해야 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여성건축인모임에서 내가 만든 스터디를 소화하기 위해 3주에 한 번씩 책을 읽고 요약해서 발표자료를 만들었다. 틈틈이 머리를 식히기 위해 뜨개도 해야 하고. 매일매일 글 쓰는 챌린지도 습관처럼 진행하고. 거기에 6주 간 주 1회로 브랜디드 콘텐츠 제작을 위한 수업을 듣고 과제를 냈다.


그 바쁜 두 달 중 첫 번째 달은 어찌어찌 하루에 10분씩이라도 근력운동을 해보고자 어플도 깔고 실제로 열심히 운동을 했다. 대학원 준비가 시작된 두 번째 달에는 그마저도 할 에너지가 없었다. 하루하루의 사투 끝에 남은 에너지의 양은, 뭐랄까. 파스타를 삶고 채반에 남아 있는 1센티 길이의 파스타면 같은 양이랄까. 손톱 끝으로도 잘 집히지가 않고, 그렇다고 긁어내자니 채반도 면도 상할 것 같은 양이었다. 결국은 숟가락을 이용해 살살 들어 올려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듯이, 그 알량한 에너지는 운동에 쓰이는 게 아니라 몸을 씻어내고 침대에 누이는 데 쓰였다. 원래는 잘 때 소리에도 빛에도 예민했지만 요새는 눕자마자 의식이 뚝하고 끊어졌다.


매일 열심히 살 수만은 없는 법이다. 온 힘을 다해서 쉬어야 하는 날들이 있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 제일 좋아하는 잔을 꺼내 따뜻한 차를 담고, 가만히 앉아 책을 읽었다.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올 때가 되면 뜨개 감을 꺼내 한없이 시간을 엮었다. 압력밥솥에 좋을 쌀로 밥을 지어 앉히고 구황작물을 가득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 먹었다. 저녁이 되면 뜨거운 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적시고 초콜릿을 몰드에 붓듯이 잠옷 안에 몸을 쏟아 넣었다. 몇 달의 고생을 하루의 집콕으로 만회할 수는 없지만, 혼자 앉아 스스로를 채우는 시간과 공간은 힘을 되찾는 데 필수적이다.


지친 에너지를 비워낸 자리에는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 넣어야 한다. 하루를 마치고 자기 전, ‘스트릿 우먼 파이터’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도전하는 눈빛, 새로운 것을 보고 반짝반짝하는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려진 눈이 다시 맑아지는 기분이다. 무대를 만들기 위해 심야 연습을 마다하지 않고 온 힘을 다 불어넣어 완벽한 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광경을 본다. 100퍼센트의 에너지를 넘어, 120퍼센트, 150퍼센트의 힘을 내는 광경을. 나는 어려서부터 계속한 운동으로 유난히 남들보다 체력이 좋았고, 그 좋은 체력도 항상 100퍼센트 넘게 써서 얼마간의 불타는 시간 후에는 항상 재만 남아 지치곤 했다. 그렇지만 재만 남은 상황이어도 체력이 좋으니, 마치 불을 지폈다가 한차례 식은 숯으로 고기를 구우면 오히려 일정한 화력으로 끝내주는 양갈비를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상태였다.


불을 지피면 일을 벌인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거나 모임을 계획하거나 글을 쓸 궁리를 한다. 한동안 열정적으로 달리다가 한차례 파스스하고 불길이 수그러든다. 그러면 벌여놨던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마무리하거나, 꾸역꾸역 이어나간다. 완전히 불길이 꺼진 이후에는 최소한의 루틴을 남기고 잡다한 일들을 정리한다. 약속을 최소한으로 잡고, 운동하고 독서할 시간을 늘린다. 그동안 썼던 에너지를 다시 채우는 시간이다. 이런 루틴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 단위로 이어졌다. 흔히들 말하는 ‘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앙과 같은 스케줄이었다. 할 때는 지쳤고 수습하느라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무언가 발자국이 차곡차곡 쌓이는 과정이었다. 체력이 없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우울할 때는 병원에 갑시다


사실 최근 두 달간의 과로로 지치긴 했지만, 작년 말의 상황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상태였다. 격주로 주 6일 일하는 회사에 다닌 지 2년째였고, 주말에도 쉴 새 없이 전화가 울려 도무지 일 스위치를 끄지 못한 지 2년째였다. 책까지 내고 나니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것 같았다. 가장 먼저 찾아온 신호는 입맛이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힘든 때여도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했는데, 뭔가 맛있는 걸 찾아먹어야겠다는 의욕도 없고,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재미가 없었다. 운동도 가기 싫었다. 그냥 싫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체육관에 가려고 꾸역꾸역 옷까지 갈아입고는 포기한 날이 늘었다. 우울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나를 룸메이트가 끌고 산책까지 나갈 정도였다. 원래 산책을 가자고 조르는 것은 나였는데. 이런 상황이 한 달 넘게 지속됐다.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정신과 의원에 갔다. 마음속에서 빨간 비상등이 울리고 있었다. 비상, 비상. 이건 문제가 있다. 당장 약이라도 먹어서 나아져야 해! 병원에 가니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이 내과나 한의원보다도 바글바글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우울 때문에 왔다고 하니 체크리스트를 하나 건네받았다. 각 항목의 증상들이 1주일 이상 지속되었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모든 항목에 ‘매우 그렇다’를 체크하고 나니, 제대로 찾아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역시 우울이었구나. 그런데 약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의사와 상담을 하니 우울증의 원인을 확인해보기 위해 종합심리검사를 하자고 했다. 검사를 주말에 예약하려니 한 달 넘게 걸린단다. 이쯤 되니 회사 따위, 그냥 주중에 검사를 받겠다고 했다. 그래도 보름 후에나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또 일주일이 걸렸다.


결국 병원에 방문한 지 한 달이 되어서야 첫 약을 처방받았다. 하루에 최소 용량으로 단 한 알. 2주 후에 경과를 보고 용량을 두 배로 늘렸다. 신기하게도 약을 먹으니 조금 덜 우울해졌다. 첫 병원 상담에서는 거의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는데, 점차 말하는 게 밝아지는 게 스스로 느껴질 정도였다. PMS(생리 전 증후군)도 완화되어 신경이 예민해지고 짜증이 나는 게 많이 줄었다. 6개월쯤 후에는 약의 부작용인 피로가 우울보다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의사와 상의해서 다시 용량을 반으로 줄이고, 단약까지 성공했다.


우울증 약을 먹으며 느낀 것은, 진작 병원에 갔더라면 20대 초중반에 괴로워서 과하게 운동을 하는 일은 없었을 거란 깨달음이었다. 미리 병원에 갔다면 관절을 훨씬 아낄 수 있었을 텐데… 운동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병원에 찾아간 케이스다. 그러니 혹시 이 글을 보고 우울증을 운동으로 이겨내려는 분이 계시다면, 꼭 병원 진료를 병행하기를 권한다. 분명히, 우울증에는 운동이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병원의 도움 없이 운동만으로 우울증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세상 모든 직장인들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일하고, 지속 가능한 직장생활 혹은 자아실현을 이루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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