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직장인의 허리를 쭉 펴 봅시다
허리 갱생 프로젝트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지겹도록 들은 말은 “허리 좀 펴!”였다. 그런데 대체 허리를 편다는 게 뭔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잠깐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가 다시 주저앉히고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앉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앉는 방법과 서는 방법을 그때 배웠더라면 내 허리의 인생은 조금 달라졌을까?
여행을 다녀오며 허리를 다쳐서 와식생활 하기를 1년, 그 이후 1년 간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부지런히 오갔다. 허리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수 있을까? 이대로 몸이 점점 망가지고 무거워지는 일만 남은 걸까? 운동을 못하니 우울한 마음이 해결되지 않았다. 정형외과에서 제안한 운동은 딱 두 가지였다. 걷기와 수영. 출근길에 새벽 수영을 하러 딱 세 번 가고 난 뒤 뉴스를 통해 수영장에서 코로나 집단 발병이 있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결국 나에게 남는 것은 걷기 뿐이었다.
인테리어 시공회사를 다니던 시기였다. 차로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느라 걸을 시간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았다. 외근이 많은 회사의 장점은 자리를 오래 비워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멀리멀리 떨어진 곳으로 밥을 먹으러 다녔다. 걸어서 오가는데만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도 많았다. 사무실을 둘러싼 목동의 아파트 단지는 자연을 만끽할만한 산책로가 사방에 있었다. 봄에는 왕벚나무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냈다. 여름이면 까만 장우산을 양산 삼아 쓰고 땀을 줄줄 흘리며 걸었다. 가을엔 아파트와 차도 사이 방음둑에 난 산책로를 걸으며 잘 마른 낙엽을 바스락바스락 밟았다. 겨울에는 롱 패딩으로 꽁꽁 싸매고 눈 사이를 헤치며 걸었다.
추나치료와 걷기를 1년쯤 병행하니 허리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드디어 운동을 할만한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훌륭한 선수가 훌륭한 감독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
훌륭한 축구선수는 훌륭한 감독이 되기 어렵다고들 한다. 워낙 잘했기에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퍼포먼스를 하는 코치라고 해서 배우는 사람의 몸에 맞춰 운동을 가르쳐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요새 헬스 PT(퍼스널 트레이닝)를 받다가 무리한 운동으로 횡문근융해증을 얻어 한동안 운동을 못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종종 전해 듣는다. 읽기도 어려운 이 무서운 질병의 이름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 한참 스피닝이 유행했을 때는 스피닝을 하다가 똑같은 병이 생긴 사람도 많았다. 유행 따라 돌고도는 강도 높은 운동은 사람에 따라 약이 아닌 독으로 작용하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학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부 코치의 잘못된 훈련법은, 건강하자고 간 체육관에서 병을 얻어오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허리디스크를 겪어보지 않은 코치에게 내 몸을 맡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허리 통증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디스크 환자의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언제고 디스크가 터져 몇 주고 몇 달이고 걷지도 못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공포는 너무나도 현실과 맞닿아 있다. 허리가 아프면 제자리에 앉아있는 것조차 굉장히 힘든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생계에 직격타가 올 수 있는 리스크를 함부로 질 수는 없다. 한번 다친 허리는 어떻게 회복이 되었다고 한들 다시 다치기 쉬운 연약한 상태다. 내 허리를 잘 알아봐 줄 선생님은 어디 없을까 고민하던 때에, 성당 책 추천사를 써준 친구 지연이 요가 클래스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버티는 몸, 지속하는 몸
지연의 직업은 작가로,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다는 점이 나의 직업과 닮았다. 3년 전에 인스타그램 친구로 시작한 인연이었다. 좋아하는 카페가 겹친다는 이유로 커피 한잔 하자고 만나 지하철에서 헤어지는 순간까지 오디오가 빌 틈이 없이 수다를 떤 이후에는 제법 친해져서 종종 만나 근황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땐 내가 오히려 운동을 권했었는데, 지연은 3년 사이에 허리 디스크를 두 번이나 겪고는 도수치료와 필라테스를 다니며 허리를 물리적으로 거의 새로 뜯어고치는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는 병원에서 도수치료로 척추를 늘리고 당겨 원위치에 데려다 놓고, 바로 오후에 필라테스를 하러 가서 척추를 데려다 놓은 자리에 고정시켜 놓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나날이 자세가 곧아지고 체력도 좋아져서 하루에 몇 건의 스케줄을 소화하는 그에게서 척추환자의 희망을 보았다.
그런 지연이 한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안무가 권금의 요가 수업을 듣더니 어느 날은 그 수업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공연의 이름은 <버티는 몸>. 멤버마다 자신이 버티는 ‘움직임’을 한 공간에서 반복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테이블 포즈를 취하고, 누군가는 벽을 본 상태로 의자에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등의 동작을 반복했다. 관객 참여형이라 관람을 하러 갔던 나도 난데없이 갑자기 비도 오지 않는 실내에서 우비를 입고 한 멤버를 따라 이 벽에서 저 벽으로 전력 질주하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에는 관객들이 의자를 놓고 둘러앉아 멤버들이 함께 몸을 붙이고 커다란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광경을 보았다. 우비와 피부 사이로 차갑게 식어 뚝뚝 떨어지는 땀의 감각이 생소했다.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서로에게 의지해 파도처럼 움직이던 멤버들은 한 명씩 일어나더니 각자가 버티던 동작을 하고, 다른 멤버들이 다가가 위로해주는 동작을 보였다.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안무인 듯 요가인 듯 그 신기한 수업을 듣던 지연이 강사과정까지 배운다고 했다. 그러더니 요가 클래스를 연 것이다. 수업의 이름은 <지속하는 몸>. 허리디스크로 인해 삶과 일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던 지연에게 꼭 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책상 노동자와 작업자들을 특히 환영한다는 문구가 심장에 날아와 박혔다. 바로 이거지. 첫 수업을 들으러 간 날, 한 동작당 거의 1~2분씩 버티는 바람에 ‘내가 왜 금요일에 여기 와서 이러고 있을까’ 후회하기도 잠시, 마지막에 사바아사나 자세로 편안하게 누워 쉬니 그렇게 온몸이 개운할 수가 없었다. 봄부터 6개월간 매주 금요일마다 빠짐없이 수업에 나갔다.
다시 서는 몸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며 몸이 낡은 것은, 단순히 신체 노화 때문이 아니라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생활이 변하면서 활동량이 줄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서 컴퓨터 앞에 오랜 시간 앉아있으면 몸은 점점 뻣뻣해지고 안 좋은 자세 그대로 굳는다. 그래서 주기적인 운동을 통해 몸을 깨워줘야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몸’의 상태를 만들 수 있다. 결코 멋진 몸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 아니다.
똑바로 서는 것은 어렵다. 똑바로 앉는 것은 더 어렵다. 어렸을 때야 엄마가 잔소리라도 하지만, 커서는 구부정한 몸을 지적해줄 사람조차 없다. 시간이 갈수록 몸은 부상에 점점 취약해져 간다. 자그마한 충격에도 부상을 입는 부위는 바로 안 좋은 자세로 앉고, 서고, 누웠을 때 비틀어져 있는 허리와 목, 무릎, 발목 등이다. 그래서 재활의 시작은 늘 제대로 된 자세로 생활하는 것이다.
나의 몸을 어떤 몸이라고 표현하고 싶냐는 지연의 물음에, 나는 “다시 서는 몸”이라고 대답했다. 요가를 하면서 제대로 서는 방법부터 다시 배웠다. 심지어 이 자세에는 ‘타다사나(산 자세)’라는 이름도 있다. 두 발을 모으고 서서 팔은 자연스럽게 내리고, 어깨의 긴장을 풀어낸다. 손바닥은 정면을 보게 펼치고 엉덩이와 배에 힘을 준다. 단순히 배를 안으로 집어넣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복근을 위로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힘을 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등이 펴진다. 이 자세를 배우며 여태 내가 서 있던 자세가 모두 잘못된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항상 과하게 가슴이나 배를 내밀거나, 반대로 등이 구부정하게 굽어 있는 자세였던 것이다. 타다사나를 제대로 했다는 것은 건강검진에서 알 수 있었다. 키가 1cm나 커진 것이다.
요가 동작을 하면 허리 아래쪽이 아직도 조금 굽어있는 것이 보인다. 요가와 근력운동을 계속해서 이게 펴진다면, 175cm까지도 클 수 있지 않을까? 키는 둘째 치고, 요즘 만나는 친구들이 예전에 비해 어깨가 많이 펴졌다는 얘기를 한다. 자세가 좋아진 게 눈에 보일 정도인 모양이다. 허리를 다친 직후에 나는 더 아프기만 할 미래를 꿈꾸기 두려워졌지만, 운동으로 오히려 몸이 더 곧아진 지금은 달리 생각한다. 운동을 제대로, 꾸준히 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더 나은 몸 상태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