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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Jul 27. 2024

한 땀 한 땀 공들여 쌓아 나가는 기분

팜프라에서의 우드카빙

어머니 오신다고 며칠 일을 비워놨더니 오랜만에 출근하는 기분이다. 11시부터 객실 청소 세 동을 해야 했는데, 평소에 유정 님과 둘이서 하던 걸 수진 님까지 합세하니 별로 힘들이지 않고 두 시간 만에 청소를 끝낼 수 있었다. 나는 청소와 침구정리, 수진 님은 주방 정리, 유정 님은 화장실 청소. 이제 일이 손에 익었다고 별말 없이 척척이다. 곧 있으면 이 일도 끝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든다. 평화롭게 굴러가는 하루 세 시간의 육체노동 시간이 한 번씩 생각날 것 같다. 



객실 청소가 끝나고 점심시간이다. 엄마가 밭에서 따다가 준 애호박을 넣어 된장찌개를 끓이기로 했다. 냉장고에서 시들어가는 무도 꺼내서 채 썰고, 하나 남은 팽이버섯도 썰었다. 웍 하나 가득 끓였더니 마음도 풍성해지는 기분이다. 남해에서도 엄마의 사랑으로 먹고산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서둘러 라운지로 복귀했다. 아직 한 시간의 일이 남았다. 라운지에서 안 쓰는 앰프와 여러 짐들을 생활관 2층으로 옮기기로 했다. 힘쓰는 일은 자신 있지. 전기로 충전해서 쓰는 전동카트가 일을 많이 도와줬다. 팜프라는 직접 건물을 지으니까, 여러 기계가 갖춰진 걸 보는 재미가 있다. 지난번에 데크 청소할 때 썼던 고압살수기처럼 말이다. 일은 금세 끝났다. 오래간만에 이른 퇴근이다. 



4시에 일정이 있어서 어디 나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일찍 끝나 여유시간이 조금 생겼다. 송정솔바람해변으로 나갈까 하다가 그냥 시간을 좀 더 여유롭게 쓰고 싶어서 은모래해변으로 나갔다. 멀리서 온 친구에게 그래도 남해의 바다를 한 번은 보여주고 싶었다. 송정솔바람해변보다 사람이 많다는 말에 사람 많은 데는 싫다고 해서, 네가 걱정하는 만큼 사람이 많을 일은 없다고 안심시켰다. 한산함은 남해의 매력 중 하나다.


은모래비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마을빵집 동동에서 빵 쇼핑을 하고 해변으로 나왔다. 남해의 바다는 잔잔한 매력이 있는데, 오늘은 웬일로 파도가 높다. 간밤에 온 비로 해변의 모래도 단단하다. 계단에 슬리퍼를 벗어두고 모래사장을 걸어 파도로 향했다. 가만히 서있으니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나며 발치의 모래를 깎아서 가져간다. 발치가 위태위태해지는 걸 감각하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 번씩 높은 파도가 치며 바짓단을 적셨다. 고무줄 바지를 점점 위까지 끌어올렸다. 시원한 바닷물에 다리를 담그고, 눈앞에 무한히 펼쳐진 파란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돌아오는 길에 우체국에 들러 편지를 부쳤다. 우체국도 여러 번 방문하니 직원 분의 얼굴이 낯익다. 이제 편지를 보낼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흰 규격봉투에 편지지를 반 접어 넣고, 봉투 끄트머리와 우표에 풀칠을 해 붙였다. 같은 글인데도 카톡보다는 손 편지에 마음이 더 깊이 배어있다. 이 편지가 닿는 사람의 마음에도 더 깊이 따뜻하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가는 길에 메가커피가 눈에 띈다. 친구가 계속 커피를 먹고 싶다고 했던 게 생각나, 길가에서 대충 유턴을 하여 다시 카페에 들렀다. 우리만 먹기는 미안하니 팜프라 식구들에게 전화해서 주문을 받았다. 도시의 맛! 나는 플레인 요거트 푸라푸치노를 주문했다. 최애 메뉴다. 주문한 커피 메뉴에도 각자의 스타일이 보이는 것 같아 재밌다.



오후에 있는 일정은 바로 팜프라촌에서의 우드카빙이다. 준호 님이 가르쳐주시는 수업이다. 친구와 나 둘이서만 할 줄 알았는데, 팜프라의 다른 숙박객 두 분도 신청한 모양이다. 우드카빙은 꽤 난이도가 있고 힘들다는 얘기를 린지 님과 유정 님에게 들었던 차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공방에 들어갔다. 직사각형의 단단한 호두나무 조각을 하나씩 받았다. 원래는 둥글고 오목한 접시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난이도가 높아 판판한 접시를 만드는 것으로 조정했다고 한다. 또, 결 따라 나무를 파내는 일이 더 어려워서 결에 수직 된 방향으로 파내기 쉬운 운 직사각형을 선택하신 것 같다. 아무튼 나는 둥근 것을 만들고 싶어서, 직사각형 테두리를 둥글게 따내서 타원형의 접시를 만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더 밝은 색깔의 무른 나무로 연습했다. 생각보다 나무를 파내는 일이 쉽지 않다. 체중을 온전히 싣고 몸에는 힘을 빼서 파내야 한다. 끝도 둥글고 날도 둥글게 된 '가우지(곡환끌)'라는 도구를 사용했다. 날끼리 부딪치면 이가 나가 쓸 수 없으니 조심해서 다뤄야 하고, 바닥에 떨어뜨리면 발이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손이 날 앞에 있으면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 반드시 손을 날 뒤에 놓으라는 당부를 들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힘을 싣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한두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제법 익숙해져서, 지나가던 준호 님이 자신감이 생겼다고 응원해 주고 갔다.  



네모난 나무판에 연필로 선을 그어 가이드라인을 만든 후, 양쪽 끝은 끝이 가운데로 모이도록 파내고, 가운데는 결에 수직으로 파냈다. 깊이감을 주는 게 쉽지 않다. 수 백 번의 칼질 끝에 한쪽 면을 다 파냈다. 뒷면은 망치를 이용해서 가우지 뒤를 쳐서 좀 더 쉽게 깊이를 줬다. 망치를 두들기는 게 의외로 재밌어서 앞면도 좀 더 파낼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래도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무늬가 마음에 쏙 들었다.


모양을 다 낸 후에는 준호 님이 밴드 쏘를 사용해서 테두리를 잘라내고 아랫면에 각을 줘서 오목하게 만들어주셨다. 기계를 이용해 만든 면은 1차로 기계 샌딩을 거친 후 마무리는 직접 손으로 샌딩 했다. 네 명의 학생 중에 제일 마지막으로 작업을 마쳤다. 한번 끓이고 다른 제품을 첨가하지 않은 린씨드 오일을 나무에 바르는 것으로 작업은 끝이 났다. 오일이 나무에 스며들어 굳어지면 오염에 강하고 쓰임이 편한 접시가 된다고 한다.



오랜 시간 고생해 주신 준호 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장장 세 시간 반에 거쳐 접시를 다 만들고 나니 허기가 진다. 다리도 무겁다. 온종일 서서 일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엄마가 가져다준 바질페스토를 친구가 가져온 식빵에 발라 먹는 걸로 저녁을 해결했다. 남해에서 며칠 남지 않은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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