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은 햄버거
2박 3일간 머물렀던 친구도 떠나는 날이다. 남해에서의 마지막 손님이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이제 몸에 익었는데 곧 떠난다는 생각을 하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 문을 열고 나오면 보이는 파란 논, 금산 위로 하얗게 내려앉은 구름, 아기자기하게 귀여운 팜프라촌, 지나가다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이장님!" 인사드리면 씨익 웃으시는 다정한 얼굴들, 시원한 계곡 같은 두모천, 걸어 나가면 만날 수 있는 맑은 바다... 남해에서의 모든 일상이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할 것은 해야지, 하는 마음이다. 내내 남해의 볼거리로 죽방렴, 보리암, 다랭이논, 그리고 독일마을 등을 꼽았는데, 여태 독일마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독일마을 근처에 있는 햄버거집에 가보자는 핑계로 드디어 발걸음을 뗐다. 독일마을에 간다고 하니 팜프라 식구들이 독일마을 아래에 있는 물건마을이 예쁘다고 한다.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먼저 물건마을에 먼저 가보기로 했다.
물건마을은 생각보다 마을의 규모가 컸다. 경사지를 따라 길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땅을 고르게 하기 위해 대지를 돋우거나 낮췄는데, 그 단차의 옆면을 돌담으로 쌓아 정리했다. 집집마다 제각각의 돌담이 있는 게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옛 형태를 유지하면서 여전히 농사용 창고로 활용되고 있는 한옥형 건물도 눈에 띈다. 물건마을에는 아는 이도 아는 건물도 아는 명소도 없으니 그저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며 잠시 걸었다.
지도를 보니 저 아래 바닷가 쪽에 물건해수욕장이 보인다. 차를 몰고 내려가보니 한산한 몽돌해변이 나온다. 남해에는 각각 모래, 자갈, 뻘로 된 해수욕장이 다 있다고 한다. 모래와 자갈로 된 해수욕장은 파도가 치는 소리가 다르다. 모래는 싸아아아-하는 소리와 함께 파도가 쓸려나간다면, 자갈은 동글동글한 자갈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며 보글보글 소리를 낸다. 자갈끼리 부딪치며 음악과 같은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다시 차에 올라타 독일마을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서부터 사람이 많다. 남해에 온 이래로 본 가장 큰 인파다. 역시 유명 관광지는 관광지인가 보다. 빨간색 기와를 얹은 흰색 벽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대부분은 펜션이나 레스토랑, 카페 등으로 운영되고 있는 건물들이다. 길을 따라 올라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 바로 위에 독일광장과 파독기념관이 있다.
그 먼 옛날 독일까지 건너가 간호사와 광부로 일하며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큰 공을 하신 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이 최소한의 생계비만 남기고 고국으로 부친 금액이 당시 우리나라 수출액의 10%에 달했다고 하니 이들의 공이 정말로 크다. 근무 환경이 열악하여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낯선 타국에서 여전히 한국을 그리워하고 한국의 문화를 나누며, 심지어 독일인과 한국 전통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고국을 그리워한 이들은 결국 은퇴 후 남해에 모여 살게 되었다. 파독 후 귀국한 이들이 모여 만든 마을이 독일마을이다.
독일마을에 드디어 다녀오니 미뤄둔 숙제를 하나 끝낸 기분이다. 시끌시끌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마을을 나와 햄버거집으로 향했다. 건축과 인테리어에 제법 신경을 쓴 곳으로, 들어가자마자 "도시다!" 하는 촌스러운 감탄사가 먼저 튀어나왔다. 한쪽 벽면에는 각종 액세서리와 지비츠 등이 진열되어 있었고, 농촌 라이프를 위한 몸빼바지와 원피스도 판매하고 있었다.
홀리 버거 세트와 조이 버거 세트를 하나씩 주문했다. 일반적인 햄버거인 홀리 버거는 패티가 특히 맛있었고, 조이 버거는 와사비 소스를 곁들인 새우 버거로, 깻잎 향이 특징적이었다. 오늘 함께 다닌 친구는 대학원 동기라, 둘이 8월 이후에 있을 논문 일정을 얘기하다가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이렇게 패스트푸드가 먹고 싶어 지는 순간들이 있다. 어린 시절 몇 년을 해외에서 보내서 그런지, 한식을 그리워하는 쿨타임과 양식을 그리워하는 쿨타임이 각각 따로 작용하는 느낌이 든다. 친구 덕분에 독일마을과 햄버거를 즐기고 남해 터미널로 바래다주고 두모마을로 돌아왔다.
세 시부터 팜프라촌의 대표인 지황 님과 인터뷰가 있었다. 팜프라촌을 남해에 만들게 된 계기와 남해에서의 생활, 청년 정책에 기여한 내용들을 들었다. 그간 해온 일이 많고 물어볼 내용이 많아 인터뷰는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긴 시간 인터뷰를 도와주신 게 감사했다. 이야기를 나누기는 금방이지만 그 이야기를 만들어가기까지의 과정에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저녁은 바쿠테를 끓이기로 했다. 지황 님의 어머니께서 제주에서 보내주신 수육용 오겹살을 삶고, 인천에 계신 우리 어머니가 가져온 마늘을 빻고, 연구실 동료가 싱가포르에서 사다 준 바쿠테 티백을 넣어 끓였다. 지황 님, 린지 님, 건우 님, 그리고 나까지 넷이서 함께 식사했다. 재밌는 건 그 자리에 있는 네 명이 모두 집에서 '콘텐츠'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쟨 대체 나중에 뭘 해 먹고 살려나, 하는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사람 말이다. 인생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는 다들 다르고, 이곳 남해에서 만나 함께 밥을 먹는 사이가 되기까지 각자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러니 나는 연구자로 이곳에 온 것이겠지.
두모에서의 며칠 남지 않은 밤이 또다시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