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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Aug 04. 2024

일복이 많은 사람의 일요일

일요일은 일하는 날

타고난 일복이 많은 사주라 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 사이에서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의 아이콘으로 불리곤 한다. 일정을 테트리스처럼 쌓고선 할 일을 해치우는 스타일이랄까. 발등에 불이 붙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스모어까지 구워 먹을 지경이다. 일이 많은 걸 즐기는 것도 복인가 보다. 아무튼 지난밤에도 발등에 불붙은 일들을 해치웠다. 두 고양이가 나의 야근 메이트가 되어주었다. 인절미는 내 가방 위에 올라가 아예 식빵을 굽고, 낑깡이는 나 대신 글을 써주겠다며 키보드 위로 올라왔다. 고양이 발이라도 빌리며 이렇게 일을 하고 있다.


아침에는 열한 시부터 근무를 하기로 해서 느지막이 일어나 라운지로 나왔다. 사람도 고양이도 더운 날씨다. 내내 흐릴 때는 그래도 시원하더니, 본격적으로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가 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낑깡이와 인절미가 평상 밑에서 볕을 피하며 세모난 눈으로 인간을 쳐다본다. 너희도 나랑 야근하느라 피곤했니. 라운지로 들어가니 여느 때처럼 유정 님이 반가운 목소리로 맞아주신다. "좋은 아침입니다!" 논밭을 걸어 팜프라로 출근하는 길이 즐겁다. 육체노동의 기쁨과 힘듦을 함께해 줄 동료가 있어서인 것 같다.



객실 청소와 기타 업무를 해치우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보통 때 같으면 린지 님과 함께 식사를 할 텐데, 린지 님은 오늘도 두모사진관 예약 손님이 있어 사진을 찍으러 가셨다. 논과 두모천 사이를 걷는데 린지 님이 카메라를 들고 손님들을 찍어주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막 성수기라 손님이 많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나도 당산나무 앞에서 밝게 웃는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어 진다. 공동주방으로 가니 린지 님이 먼저 식사를 하고 두신 된장찌개가 스토브 위에 놓여 있다. 그저께 내가 끓인 것에 두부를 추가한 것이다. 내친김에 계란프라이도 두 장 굽고, 엄마가 주고 간 방울토마토도 씻어서 몇 개 곁들여 먹었다. 혼자 차리는 밥상이야 도시민에게 익숙한 것이다.



저녁에는 은모래해변 쪽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권월 님과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농부가 되신 필주 님의 인터뷰가 있었다. 권월 님과 같은 동네에서 같은 시기에 자라났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신기했다. 먼 타지에서 만나는 고향 사람이라니. 괜히 더 친밀감이 생기고 반갑다. 필주 님은 남해에서 농사를 시작하면서 '입지를 다졌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지지를 한 몸에 받으며 초보 농부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들이 멋지다. 나도 영 모르는 동네에 와서 그렇게 새로운 일을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인터뷰를 마친 후에는 다시 라운지로 돌아가 마저 할 일을 했다. 오늘도 인절미랑 낑깡이가 함께하는 야근이다. 오늘까지 작업물을 주기로 해서, 그 어느 때보다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바삐 돌아가는 일정이 야속하면서도 뭔가를 해내는 기분이 들어 뿌듯하기도 하다. 잘하고 싶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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