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두모마을
지난 밤, 늦게 숙소로 들어가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한가득 떠 있었다. 가로등이 별로 없는 시골 마을의 매력은 바로 밤하늘이 아니겠나. 사실 내내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구름만 가득이라 별 볼 일 없었다. 마지막 날이라고 그래도 하늘마저 나를 배웅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밤에도 별이 잘 보이더니 아침이 되니 파아란 하늘이 나를 맞이해준다. 마지막 날이지만 출근은 해야 한다. 새벽에 깨서 세탁기에 빨래를 한 바탕 돌리고 방으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논둑 아래에 잔디처럼 자라던 벼는 어느새 훌쩍 커서 이삭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낯설고 조금은 불편했던 두모마을은, 이제 내 마을 같고 내 동네 같은 정겨움이 있다. 마음만은 고향 같은 마을이다.
마지막으로 한 달 간 묵었던 내 방과 숙소 두 채를 청소했다. 처음과 같은 모양으로 청소하고 나오며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영영 두모마을을 떠나는 손님이 된 것만 같다. 괜히 유정 님에게, 수진 님에게 나중에 놀러오면 재워줄 수 있냐고 물었다. 유정 님은 침낭만 가져오란다. 수진 님네는 이미 손님 방이 마련되어 있다. 수진 님은 치즈냥이 네 마리와 함께 사시는데, 한번 놀러오라는 얘기만 듣고 내내 가지 못해 아쉬웠다. 마지막 날이라 하니 카톡으로 언제 오냐는 연락이 와서, 오늘 청소를 마치자마자 가겠노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라운지에서 손님이 선물로 주고 간 와플에 드립 커피 한 잔을 곁들여 마셨다. 커다란 창을 마주한 캠핑의자에 앉았더니 웬일로 인절미가 와서 무릎에 눕는다. 얘도 내가 마지막 날인 걸 아는 걸까? 인절미가 무릎에서 일어나길 기다렸다가 내내 눈독을 들이던 셔츠도 한 장 샀다. 팜프라의 의류 브랜드 '폿'에서 나온 신상품인데, 정말 소량만 뽑아서 디자이너가 직접 단추를 하나하나 달았다고 한다. 가을에 논문 발표를 할 때 유용하게 입을 것 같다. 얇고 탄탄한 소재가 맘에 든다. 마지막까지 고양이들이 마중나와줬다. 다음에 또 보자 낑깡아, 인절미야.
그렇게 남해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수진 님네 놀러갔는데, 세상에 네 고양이가 너무 귀엽고 너무 다르고 정말 귀엽다. 그렇지만 낯선 사람에게 곁을 잘 주지는 않는 녀석들이라 가까이 오는 고양이들의 엉덩이만 열심히 두들겨줬다. 수진 님이 잠깐 짬을 내서 일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누워서 낮잠을 즐겼다. 서울까지 긴 여정이니 잘 쉬었다가 출발해야만 한다.
마지막 날이라고 팜프라 멤버들이 모두 모였다. 읍내의 중국집에서 같이 요리를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지황 님, 린지 님, 유정 님, 수진 님, 준호 님, 건우 님, 그리고 나까지 총 일곱 명. 평소에도 이들은 휴무 스케줄이 서로 맞지 않아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이 좀처럼 없다는데, 이렇게 나의 환송식 겸 해서 모여주신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어엿한 팜프라의 식구가 된 기분이랄까. 한국에 가족처럼 느껴지는 식구들, 고향처럼 느껴지는 마을이 하나 더 생겨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쌀국수로 만들었다는 자장면을 한 그릇 시키고 탕수육을 나눠먹으며 배를 채웠다. 이제는 서울로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