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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May 10. 2024

10. 열하일기 버전의 카톡 알람

  8월 1일, 조선 사신단은 연경에 도착한다. 압록강을 건너 40여 일동안 2030리의 길을 왔다. 정작 축하의 주인공은 연경에 있지 않다. 연경에서 420리, 만리장성 밖 200리를 더 가는, 열하에 있다. 열하까지야 설마 부르리, 하며 사신단은 보고서를 올려 인사치레를 가름하고 사흘 동안 어정쩡한 상태로 시내 관광을 즐긴다. 하지만 황제는 그게 아니다. 조선 사신단을 꼭 보고 싶다. 그들을 열하로 보낼 것인지 여부도 묻지 않고 보고서 한 장만 달랑 올리다니, 직무 태만이라고 담당자들에게 감봉 처분을 내린다. 겁에 질린 관리들은 조선 사신단을 불같이 재촉한다. 조선사신단은 인원을 줄이고 짐을 최소한으로 꾸려 반드시 만수절(황제의 생일) 이전에 열하에 도착해야 한다. 8월 4일의 일이다.       


  정확하게는 오후 7~9시 사이에 열하에 올 조선 사신단의 인적상황을 보고하라는 문서가 왔다. 하루의 노고를 씻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일행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걷느라 발이 부르튼 사람들이 곯고 병든 말을 타고 일정에 차질을 빚는 연장근무를 무박나흘로 가야 한다.  열하로 누가 가고 누가 안 갈지를 논의하고 연암에게는 함께 가자고 설득하는 시간이 흐른다. 그 사이를 못 참고 자정(밤 12시) 이전에 문서가 또 온다. 열하에 올 명단을 왜 아직도 제출하지 않느냐고 채근하는 문서다. 와, 이 엄청난 스트레스! 청나라 관리들은 잠도 안 자나! 수렵민족 출신답게 업무 속도가 신속하다. 낮밤 없이 사는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서도 어쩌면 이렇게 요즘하고 똑같나, 혀를 끌끌 차게 된다.      


  8월 5일 오전 9시~11시에 사람 일흔네 명과 말 쉰다섯 필이 출발한다. 촉박한 일정에 맞추어 달려야 한다. 생일 이후에 도착하려면 아예 갈 필요도 없다. 가다가 죽으면 죽었지 생일 이전에 도착해야 한다. 달리는 와중에도 연암은 우연히 황제의 조칙을 마주친다. 조선 사신단에게 건장한 말을 내주어 무사히 오도록 도우라는 명령이다. 연암은 바짝 긴장한다. 날쌘 청나라의 말이 잠깐 사이에 나르는 듯 70리를 달리는 것을 여행내내 숱하게 봤다. 사정없이 달리다가 지칠 만할 때쯤 역참에서 교대로 바꿔 타는, 청나라의 비체법이다. 여름이면 관리들은 황제에게 일을 아뢰느라 말 안장을 떠날 새 없이 북경에서 열하를 문 앞뜰처럼 나다닌다.  황제의 생각에는 북경에서 열하까지는 이틀이면 왕복한다. 애 어른 가릴 것 없이 말타기가 대물림인지라 건장한 말을 내어주는 것이 그네들로서는 정중한 손님 대접이다.

    

  그런데 조선 사신단은 조선의 말, 과하마를 탄다. 과하마란 키가 작아 말을 타고서도 과실나무 밑을 지나갈 수 있다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도 과하마를 탔다고 하지만, 품종을 개량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은 탓에 조선시대에는 보잘것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조선 사람은 그 키 작은 말을 타면서도 경마를 잡힌다. 오죽하면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이 다 있겠는가. 경마잡이는 양반이라면 빠질 수 없는  체면치레다. 다만 말고삐만 잡을 뿐,  말의 속도로 달릴 수 없는 사람이 경마잡이를 하니, 말을 타나 걸어가나 속도는 매한가지다. 그런데 기껏 생각해 준답시고 건장한 말을 건네받으면 오히려 낭패다. 황제가 내려준 말을 안 탈 수도 없는데 그 말을 누가 부릴 줄을 아나.


  병자호란 이후에 청나라에 머물던 소현세자도 말 때문에 애를 먹었다. 유약한 몸에 과하마만 살랑살랑 타고 다녀 버릇한 몸이 청나라의 건장한 말을 타느라 몸살을 앓았다. 황제의 호의가 헛되이, 길이 어긋나 건장한 말을 못 은 게 얼마나 다행이었나, 조선사신단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더구나 연암은 열하 길에서 인원을 줄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경마를 잡히지 않는다. 이게 왠 떡이냐, 손수 말고삐를 잡고, 연암은 말을 믿고 말은 제 발굽을 믿고 말발굽은 땅을 믿고 하룻밤에 아홉 번도 강을 건넌다. 조선식 말타기가 얼마나 문제투성이인지를 몸소 체험하며 연암은 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조선의 현실을 탄식한다. 하지만 나를 탄식하게 만드는 것은 연암식의 거국적인 일이 아니라 어떻게 연암은 이런 글을 써냈는가, 하는 하찮은 일뿐이다. 글자 한두어 자만 메모하려고 해도 먹을 갈아야 하는데, 먹을 갈 기운조차 없어 눈뜨고 졸면서 행군하는 극한 상황에서.      


  8월 6일에는 밀운성 우두머리가 직접 나와 맞는가 하면 반드시 9일 이전에 도착하라는 당부가 오고 관리가 직접 채찍을 휘둘러 먼저 냇물을 건너도록 새치기를 시켜준다. 8월 9일에는 사신단의 현위치를 확인하러 오고 태학에 유숙하라는 통지가 오는 등, 일처리 속도가 거의 실시간 업데이트다. 느슨한 속도에 길이든 조선 사람은 혀를 내두를 만큼 빠른 기동력이다. 오늘날 시도 때도 없이 카톡에 쫓겨 치열하게 달리는 우리는 죄다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한다. 모르는 사이에 청나라사람의 피가 듬뿍 유입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제의 생일 날짜에 대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리던 조선 사신단의 속도가 어떻게 지금 우리의  삶의 속도와 똑같단 말인가. 그대는 아는가, 연암이여? 카톡 소리에 깜짝 놀라며 알람을 꺼놓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현대인의 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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