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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Nov 18. 2024

25. 노바디로 홀로 서서

--연경의 유리창(琉璃廠)

 엄청난 제안을 받았다! 연경 사행에 동행하겠느냐고 명원 형님이 묻는다. 2월 25일(양력 4월 2일)의 일이다. 사행은 통상 3개월 전부터 구성하는 법이라 5월 25일(양력 7월 13일)이 출발일이 되었다. 사행단의 공식 사절단 곧 정사와 부사, 서장관은 외교문서와 공물 준비에 바쁘고 나는 3,200리 사행길의 볼거리와  연경 시티투어 준비에 바빴다. 연경에서는 약 두 달 머물 예정이라고 하니 서두르면 아쉬운대로나마 눈에 담을 것이 많으리라.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누구를 만날 것인가? 평소에 중국에 다녀온 벗들에게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작별 인사를 겸하여 만나 소소한 것들까지 귀에 담았다.       


그러니 나의 계획의 1순위는 유리창 방문이었다. 이곳에서 나의 벗들의 중국 벗들을 만나 안부를 전하고 편지를 배달하기로 했다. 중국의 관시(觀視)문화는 벗(朋友)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먼 이국의 벗이 보낸 소식을 전해주면 그 새로운 벗도 옛 벗의 관심의 영역에 들어온다. 옛 벗이 소개하는 벗은 그 옛 벗처럼 대하고 또 다른 벗들을 불러 만남을 주선하여 그 영역을 넓히게 되어 있다. 박제가, 이덕무에게서 말로만 듣던 유리창에 내일 간다, 는 생각에 어찌나 설레었던지 밤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었으나 아침 햇살이 얼굴에 닿기도 전에 벌떡 일어났다.      


드디어 숙소인 서관의 문이 열렸다. 시대와 장복 두 하인과 함께 나란히 걸었다. 말은 안 탄다. 걸을 만한 거리이기도 하지만 수레를 빌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볼거리가 많은 시내의 구석구석을 누비려면 승용차를 렌트(rent)하는 게 더 낫다. 첨운패루 아래에 이르러 노새가 끄는 태평차 한 대를 세내었다. 그동안 시대가 궁궐의 주방에서 준 식자재를 돈으로 바꿔 왔다. 은자 두 냥 곧 엽전 2200닢이다. 값을 치르고 수레에 올라 시대는 수레 오른쪽, 장복은 수레 뒤에 각각 앉았다. 선무문까지 질풍같이 달렸다. 선무문의 왼쪽은 상방이요 오른쪽은 천주당이다. 선무문을 나가 우회전하여 유리창에 진입했다.      


유리창은 황실 전용의 유리 기와와 벽돌을 만드는 공장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건륭제 때에 점포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데 주로 큰 서점들이었다. 명성당 서목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명성당도 있었다. 과거 철이면 전국에서 서생들이 모여 들어 인근에 기거하며 과거를 준비하기도 하고 과거에 낙방한 자들이 당분간 머물며 귀향을 준비하기도 했단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연경 시내에는 아무리 관료라 해도 족이 거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니 그들은 성내 출입이 손쉬운 유리창에 자리를 잡았다. <사고전서>를 만들면서는 책방만 270개가 넘었다는데 곁따라 문방사우(文房四友) 상점들과 화랑과 골동품 상점들이 모여 번화가가 절로 이루어졌다.      


유리창 첫 거리에 도옥의 서점 오류거가 있다. 지난해에 이덕무 등이 책을 많이 샀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한 곳이다. 이곳을 지나려니  벗을 보듯 반가웠다. 양매서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육일루에 올랐다. 황포 유세기를 만났다. 벗의 벗이 아닌 오롯이 나만의 벗이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동석(同席)한 문포 서황, 입재 진정훈 등도 모두 교양 있는 선비인지라 거듭 재회를 약속했다. 그리고 수레를 돌려 이덕무가 알려준대로 원항 당낙우의 집을 향다.  어른거리는 선월루의 금빛 글씨가 눈을 붙잡으니 당씨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마치 아는 집을 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당낙우는 집에 없었다. 나도 서둘렀건만 출근이 일러도 너무 이른 오전 5시, 청나라 출근시간에 대려면 어림도 없다.      


다음날 이틀 연속 유리창을 방문했다. 유리창에는 27만 칸의 집이 있다. 정양문에서 선무문에 이르기까지  마을 다섯을 이루는 어마어마한 책 거리(street)이다. 국내외의 재화와 보물이 다 있었다. 희귀 서적과 예술품은 물론이고 선비라면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뛰었을 귀한 문방사우들이 '나 잡아봐라' 하고 반짝거렸다. 나는 지갑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한편으로는 심양의 '전사가(田仕可)'한테서 받은 메모를 만지작거렸다. 유리창에서는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더라도 그 진위僞)는 구분할 줄 아느냐고 전사가는 물었다. 유리창에서 바가지를 쓴 자기 얘기도 들려주며 골동품 감정법을 글로 적어주기까지 하며, '사기당하기 딱 좋으니 조심하라'고 경고를 했는데,  


아, 이 어마어마한 지식의 보물창고 거리에서 나는 얼마나 티끌이며 먼지인가. 내 옷과 갓, 용모와 성씨를 아무도 모르는 nobody일 뿐이다. 아무도 몰라본다 치면 성인이나 부처, 현인이나 호걸 중에서 홀가분하게 아무거나 되어 볼 법도 하다. 그런데 요임금과 석가, 주태백과 굴원, 월나라 범여도 한눈에 알아보는 자가 있었으니 나를 알아볼 사람도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나는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여기에 달려왔는가, 내가 그리는 이들의 목록에 뒤를 이어 나를 목록하는 시간이 황하의 물결처럼 도도하게 흐른다. 낯선 이국에서 나는 나 그대로의 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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