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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Nov 15. 2024

24.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조선의 민형남(閔德男:1564~1659)


  이 세상은 잘못 되어 간다. 뭔가를 해야 한다. 젊은이에게 물어봐라. 늙은이들이 문제다. 늙은이들에게 물어봐라. 젊은이들이 문제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세대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해답으로 가는 길을 연암이 슬쩍 들려 주는 것은,  


첫 번째는 조선사람 민형남의 과일나무다. 그는 36세에 별시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하루는 70세를 넘긴 민공이 손수 과일나무의 접을 붙이고 있었다. 벼슬깨나 하는 젊은이들이 이 모습을 보더니 민공을 비웃었다.

"어르신은 아직도 백 년 사실 계획을 꾸리고 있습니까?"

"바로 그대들에게 남겨 주려고 하는 것이네." 라고 그는 대답했다.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을, 일 주일은 여행을, 한 달은 집을 사고, 일 년은 결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평생 행복하려면 이웃을 섬겨야 한다고 했다. 민공이 과일나무를 접붙인 건 이웃을 섬기는 일이었다.  과연 민공의 백 년은 어떠했을까?


민공은 은퇴의 시기를 넘겨서까지 공직에 근무하다가 아흔세 살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기로소(耆老所)란 70세를 넘은, 은퇴한 신하를 예우하는 모임이다. 민공은 더는 과일나무에 접을 붙이지 못했지만, 그 과일을 따 먹으며 노년의 행복을 즐겼다. 그러기를 아흔여섯 살까지 했으니 기로소의 최고령자 제 2위였다. 민공은 벼슬깨나 하던 이들의 제삿날이 되면 손수 그 과일을 따서 부조를 했다. 이만하면 백 년 계획 하나는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행여라도 민공을 비웃던 저 젊은것들의 제삿날까지 보신 건 아니었겠지?


두 번째는 송나라 사람 주한과 주앙의 백발이다. 대년 양억(974~1020)은 포성(浦城)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탁월했다. 나이 열한 살의 양억을 불러 대화를 하던 송나라의 태종이 그를 신동이라 찬탄하였다. 박학다식한 그는 한림학사와 수찬, 시랑을 역임하며 왕흠약과 함께 사료백과사전인 『책부원구(冊符元龜)』 1천 권을 지었다. 고려에 주지 말자고 소동파가 상소를 올렸던 바로 그 책이다. 스무 살 약관에 한림학사가 되니, 머리가 허옇게 센 늙은 주한과 주앙이 입사선배(?)였다.


늙어서 머리가 팍팍 돌아가지 않는 두 사람이 소년 영재는 답답했을 것이다. 업무를 논의할 때마다 양대년은 업신여기는 말투로 "두 영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단다. 주한은 "노인을 놀리지 말게나. 자네는 늙을 날이 없을 줄 아는가? 자네에게도 이 백발을 남겨 줄 터이니."라고 했고 주앙은 "저자에게는 백발을 남겨 주지 말게. 젊은이에게 무시당하지 않도록"이라고 했다. 주한과 주앙이 백발을 남겨 주지 않아 양대년은 나이 50을 채우지 못했다. 그는 병을 얻어 47세에 세상을 떠났다.


민형남이 참어른답게 철없는 질문에 철든 대답을 해준 반면에 주앙은, 젊은이에게 백발을 물려주지 말자는, 연암의 말에 따르면 저주를 퍼부은 막어른이었다. 어른다운 언행을 보여준 민형남은 다른 이들의 제사에 과일을 부조하며 오래오래 장수를 누렸다. 그런데 젊은것들에게 저주를 퍼붓기가 예사인 요즘 어른이같은 주앙은 과연 어떤 노년을 맞았는지가 궁금하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양대년은 계속 나오는데 주안과 주항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백발을 남겨줄 줄 몰랐던 이 어른이는 그 젊은 것 덕을 봐 인터넷에라도 이름이 올랐더란다.


세 번째는 청나라의 왕라한이다. 그는 한족 소년 호삼다와 함께 한 스승에게서 강의를 배운다. 왕라한은 이른 새벽에 호삼다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교(?)했다. 스승이 혹 바쁘면 왕라한은 어린 호삼다에게 강의를 한 차례 받고 집으로 돌아가 다섯 손자와 두 증손자에게 다시 가르쳤다. 젊은이에게는 한번 들으면 그뿐, 다시 물으려면 핀잔을 받고 사정사정 해야 한다. 어린 호삼다의 강의를 일삼아 노상 듣는 그 쉽지 않은 모습을 보고 연암은, 늙은이가 젊은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젊은이가 늙은이를 업신여기지 않으니 예의가 밝고 풍속이 순박하다고 했다.


하루는 호삼다가 붉은 종이 첩지와 문은 두 냥을 가져온다. "동학 동경의 아우 호군에게 부탁하여 조선의 박공자께 청심환 한두 알을 전편으로 청하옵니다."라고 되어 있다. 왕라한의 편지다. 호삼다를, 함께 공부하는 동학과 띠가 같은 동경의 아우라고 부른다. 호삼다가 열세 살이니 왕라한은 일흔세 살이다. 손자 혹은 증손자뻘 아이를, 동학이네 동경이네 부르니 얼마나 웃기냐. 객지 벗 십 년이란 말이 있지만, 객지 벗 육십 년은 해도 해도 너무 하지 않나? 웃기 잘하는 연암이 속웃음을 삼키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청심환 두 알과 함께 은화를 되돌려 보내며, 호삼다의 뒷모습이 멀어지자마자 포복절도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연암은 왕라한의 웃어넘길 수 없는 자세를 놓치지 않는다. 다 큰 어른이 아마도 손자들의 과외비용을 절감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은 자신이 젊은 시절 못한 공부를 하고 싶어 날마다 스승을 찾아오고 미치지 못하는 부분은 벗이네, 아우네 해가면서 어린 호삼다의 덕을 보는, 그 모습이 참 애틋하다. 평소에 그가 자신의 손자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넉넉히 짐작이 된다. 근면 성실한 왕라한이 겸손한 데다가 또 그만큼 눈높이를 맞추어 동갑 호삼다에게 잘해주었으리라.  그건 성마른 주앙이 저주를 퍼부은 것과는 자못 차이가 크다고 하겠다.


연암은 노인을 무시하는 젊은이들에게 경계로 삼고자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게 아니네, 젊은이들을 무시하는 늙은이들의 언행에 경계로 삼으려고 썼다는 말로 들리네. '역시 어른이 어른 같아야 공경을 받는다, 안 그래?' 라는 말로 들리니, 내가 속이 배배 꼬였나, 이렇게 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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