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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Nov 13. 2024

23. 풀무질로 연주하는 악기

-연경 천주당의 파이프 오르간

피아노 조율하는 모습을 본 적 있나요? 커다란 피아노 덮개를 끙끙거리며 들어 올리면 그 안에는 나무 망치들이 크기별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놓여 있어요. 건반을 누르면 망치가 움직여 탁, 하고 치고 제자리로 돌아가요. 이런 면에서는 피아노더러, 건반 악기라고 하지만 실은 타악기라네요. 건반에서 그 망치까지 뭔가가 연결되어 있어 움직이게 만들지요. 그 뭔가가 망가지면 건반을 눌러도 망치가 안 움직여 소리가 안 납니다. 그러면 조율사를 불러 '고쳐 달라'고 하지요. 조율사는 건반을 누르는 동시에 망치의 상태를 관찰하고 조율에 들어갑니다.     


이전에는 '풍금'이 있었어요. 이것은 발로 페달을 밟아 소리가 나게 만드는 악기에요. 요령이 생기면 괜찮겠지만 계속 발로 밟아야 하니까 연주자는 발 맛사지를 받아 가며 연주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어지간히 역사가 있는 교회에 가면 100년 된 풍금이네, 120년 된 풍금이네, 하며 구닥다리 풍금을 모셔놨어요. 강화 기독교 기념관에도 백 년 넘는 풍금이 있는데 앞면 덮개를 벗겨 그 내장(?)이 다 들여다보이도록 전시를 해놨어요. 연경 천주당에서 풍금의 제도를 처음 들여다본 홍대용처럼 나도 깜짝 놀라 '왜 벗겨놨대?' 했지요. 그랬더니 연주자가 악기의 구조를 잘 알아야 하니까 덮개를 벗기고 안을 들여다봐 버릇해야 한대요.      


이런 건 작은 풍금이에요. 연암이 본 것은 파이프 오르간이죠. 생황 소리가 난다니, 나는 또 생황 소리를 검색하여 파이프 오르간 소리도 들었어요. 생황은 멜로디 단음(單音)만 연주하는 데 비해 파이프 오르간은 화음을 이루는 복음(複音)이라 썩 비슷하게 들리지는 않았어요. 거문고와 가야금, 대금과 해금의 소리도 뒤를 이어 들었지요. 그제서야 생황소리와 비슷하다고 홍대용이 쓴 것이 이해가 되었어요. 일단 파이프 오르간 하면 떠오르는 그 금빛 파이프들을 몇 배율로 축소한 듯한 생황의 생김새하며 입으로 불어 소리를 내는 관악기의 느낌이 일치하는군요. 


이 파이프 오르간은 서양 사신 서일승(敍日昇)의 작품입니다. 서일승(1646-1708)은 포르투갈인 토마스 페레이라의 중국 이름이에요. 그는 선교사로 중국에 왔는데 관직을 얻어 관복을 입고 중국식 예의범절과 생활방식을 지켜 살았답니다. 그는 1708년 북경에서 사망할 때까지 37년 동안 활동했는데, 선교 외에도 외교와 서구 음악 전파로 업적을 남겼다고 합니다. 당시에 중국에 온 것은 종교개혁의 풍파를 겪은 천주교 일각에서 공격적(?)으로 선교에 나선  예수회 선교사들이지요. 이마두를 비롯하여 서일승 등 선교사의 묘지가 또 소개됩니다.      


홍대용이 말한 금빛, 은빛의 금속제 통이란 파이프일 거에요. 풀무질로 바람을 보낸 듯하다니 작은 풍금처럼 발로 페달을 밟는 수준이 아니죠. 진짜로 사람이 매달려 그네 띄듯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풀무로 바람을 내보내어 소리를 내었답니다. 그게 얼마나 장관이었을지 상상만 해 보네요. 당시에 파이프 오르간이 중국 음악, 만주 음악, 몽고 음악을 연주하다니 참 신기했겠습니다. 제 시간이 되면 인형들이 나와 종을 땡땡 울리던 해시계처럼 자동화되어 있었나 봅니다. 지금처럼 녹음이 되는 시대가 아니니 누군가가 연주를 했을 텐데 아, 그걸 봤다면 진정한 황도(皇都)의 기략(奇-기이할 기/略)이 되었을 것을! 


 이 조선 선비들은 악기 연주보다도 악기 제작에 관심을 더 가졌습니다. 연암도 홍대용이 말하던 풍금 만드는 방법이 영 잊히지 않았어요. 즉시 선무문 안 천주당을 찾았지요. 천주당은 높이 일곱 길에 넓이 수백 칸인데 명의 만력 29년(1601년) 서양 사람 이마두가 방물과 마리아상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어요. 문제의 그 파이프 오르간은 건륭 기축년에 천주당이 헐리는 바람에 없어지고 말았어요. 그림으로 그려 남겼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서글픈 마음으로 연암은 홍대용의 풍금 이야기를 곱씹고 맙니다. 


나중에 담양에 갔어요. 그곳의 담양 예술창고 카페에는 대나무로 만든, 세계에 두 개 밖에 없는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이 있습니다. 나무라 습기에 민감하니 유리 벽 안에 잘 모셔놓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문을 엽니다. 그리고 전문오르가니스트가 자그마한 게시판에다 곡목을 쓰고 해설을 곁들여 연주를 합니다. 딱 30분 동안만. 그거라도 보고듣고 연암처럼 답답하던 숨통이 뚫리더군요. 한 가족이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와서는 연주를 감상하는데, 커피향에 청아한 오르간 소리가 얽혀 이 좋은 문화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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