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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Nov 11. 2024

22. 받느냐 안 받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반선의 선물

조선 사신단은 열하에 왔습니다. 무탈없이 황제의 만수절 축하식에 참석하여 선물을 드렸으니 미션 클리어입니다. 그런데 황제가 스승으로 예우하는 서번(西番:티베트)의 반선(班禪)내키지 않게 만나야 합니다. 그렇게 만난 반선이 조선 사신단에게 준 선물들이 열하일기의 행재잡록 편에 나옵니다. 정사와 부사, 서장관은 각각 구리불상과 서역 융단, 합달과 붉은 양탄자 그리고 서장 향과 계협편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받을 정도라면 빈손으로 가지는 않았을 텐데 드린 것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후세 사람으로서는 이런 자질구레한 TMI가 더 궁금한데 말이죠!     


구리불상은 키가 한 자인 휴대용이자 호신용 불상입니다. 중국에서는 흔히 선물로 주고받는 물건이랍니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은 반드시 불상을 지니고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공양한다고 하니, 부적을 소중히 간직하는 격입니다. 특히 티베트에서는 부처 한 좌를 으뜸 토산품으로 여깁니다. 사신이 먼길을 무사히 가도록 빌어주는, 반선의 폐백이 구리 불상이었어요. 하지만 조선에서는 한번이라도 부처에 관계되면 평생 누가 되는 판인데 하물며 이것을 준 자가 그냥 승려도 아니고 서번의 승려이니 문제이지요. 천자의 스승이 준 물건을 안 받으면 무례하다고 할 것이요 받자니 명분이 없습니다. 더구나 사신단의 숙소가 공자를 모시는 태학관인데 불상을 들여놓겠습니까?      


절에 버리자니 청나라가 분노할 것이요, 귀국할 때 가져가면 말썽이 될 것입니다. 궤짝에 넣어 압록강에 띄워 버릴까, 생각도 하고 순금 아니고 도금(鍍金) 부처니까 버리자고 웃기도 했지만, 보고(報告)차원에서 가져옵니다. 당장 성균관 유생들이 권당(학생 시위)소동을 벌입니다. ‘사악하고 더러운 물건[邪穢之物]’을 가져와 국가에 치욕을 끼치고 후세의 비웃음을 받을 짓을 했다는 겁니다. 정조실록에는, 정조가 불상의 처분에 관해 묻자, 평안북도 변의 모 절에 봉안했다"고 박명원이 대답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 구리불상인지 모르지요. 이게 발견되면 국보급으로 대서특필되지 않을까  싶어요. 북한만 아니라면 당장 쫓아가 확인할 텐데요.      


합달은 비단 폐백입니다. '폐'는 원래 선물로 주고 받는 예이고 '백'은 비단입니다. 그러니 '폐백'이란 비단을 선물로 올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원래 반선을 만나려면 옥색 비단 한 필을 폐백으로 가져가게 되어 있습니다. 반선의 전신(前身)이 팔사파이고 팔사파의 어머니가 향내 나는 헝겊을 삼키고 팔사파를 낳았기에 반선을 만나면 헝겊을 잡아야 한답니다. 황제도 예외가 아닙니다. 황제도 황족과 부마도 반선 앞에서는 비단 헝겊을 드리며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합니다. 비단은 반선에게 바쳤으니 사신들이 챙긴 건 아니지만, 청나라 입장에서는 비용이 발생했으니 공금 처리를 하느라 목록을 써놓은 듯합니다.      


제독이 조선 사신들을 인도하여 반선 앞에 이르 군기대신이 두 손으로 비단을 받들어 건네줍니다. 사신은 비단을 넘겨 받아 반선에게 드립니다.  반선은 앉은 채로 비단을 받아 무릎에 둡니다. 그 비단은 다시 공손히 받들어 놓여집니다. 마지막으로 사신단을 인솔해온 제독이, 남은 비단 조각을 얻어 반선에게 바니다. 비단을 바치는 동시에 머리를 땅에 대고 조아려 절하는 고두례(叩頭禮)가 순서입니다. 사신들은 머리를 꼿꼿이한 채 절을 안 했다고 주장하지만요. 하지만 절을 못 하겠다는 조선사신을 두드려패고 강제로 무릎을 꿇린 전례가  있느니만큼 사신들 말처럼 절을 안하고 배겼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서역 융단은 벼슬의 높낮이에 따라 각각 18장, 14장 그리고 10장을 받았습니다. 붉은 양탄자는 각각 2필, 1필, 2필을 받았습니다. 융단이나 양탄자나 비슷합니다. 둘 다 표면에 보풀이 일게 양털을 짠 두꺼운 모직물입니다. 천의 날실과 씨실 외에, 날실에 색실을 묶어 그 끝을 잘라 보풀이 일게 하며 마루에 깔거나 벽에 거는 물건입니다. 개수로 보아 붉은 양탄자는 방바닥에 까는, 널찍하니 크고 무거운 물건이며 서역 융단은 좀 더 가벼운 벽걸이 장식용일 것 같습니다.     


서장 향은 피우는 향입니다. 벼슬의 높낮이에 따라 각각 24묶음, 20묶음, 14묶음을 받습니다. 향은 제사같은 의식에 요긴한 물건이지요. 마지막으로 계협편이 있는데 이건 정사에게만 1부대를 줍니다. 일종의 메모지라는 주가 붙었습니다. 서류나 문건에 따로 적바림하여 붙인 쪽지 협편(夾片)이라고 부릅니다. 이 협편을 우즈베키스탄어 까탁(katak)으로 부른 데도 있는데  정사각형 또는 사각형의 뜻입니다. 디지털 장서각에서는 ‘목에 둘러 축복해주는 까탁’이라고 했습니다. 메모지라면 가장 먼저 포스트잇이 떠오르는 바람에 종이류라면 연암이 뭔지 모르겠다고 주를 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하고 여전히 의혹은 풀 길이 없네요.  


사신들은 반선의  물건조차 지니고 싶지 않 죄다 역관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역관들도 이를 똥이나 오물처럼 자신을 더럽히는 것으로 여기고 팔아치웁니다. 당시에도 당근거래 가능했던지 은자 90냥을 받습니다. 그 은자조차도 껄쩍지근하여 마두(馬頭)들에게 줍니다. 그 마두들조차 이 돈으로 술 한 잔도 안 마셔요. 참 깔끔을 떨어도 여간 떨지 않네요. 결백하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의 풍속으로 따져 본다면(외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물정이 어두운 촌티(결례)를 면하지 못한 일이라고 연암은 평합니다. 남 얘기가 아니네요. 나부터라도 우물 안 개구리 티를 좀 벗어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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