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한국 올림픽은 종묘제례악으로 전야를 밝혔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때에는 국립국악원 단원 백여 명이 종묘제례악을 연주했습니다. 종묘제례악은 한국문화의 상징이자 ‘오래된 것, 변하지 않는 것’의 소중한 가치를 음악과 춤으로 일깨워 졌습니다. 종묘제례악은 반드시 음악과 노래와 춤이 함께 어울려 이루어지며 유가(儒家)의 가치관을 담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전통예술의 일환으로 이어져서 극장 무대에 오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13세에 작(勺)춤과, 15세의 상(象)춤 그리고 20세에 대하(舞樂-우왕의 춤) 춤을 가르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제향과 회례연에서 사용하는 의식춤으로 커리큘럼의 하나였어요. 유교의 예법에 춤이 포함되는 것부터 의외이더니만, 상류층의 고급 문화로 간주됐다는 게 여간 신기하지 않았답니다. 봉급이 얼마 이상의 금수저 부모를 가지지 않은 자는 절대 배울 일도, 배워도 써먹을 일이 없는 어마어마한 춤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근엄 진지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공자라 할지라도 한 해에 몇 번은 덩실덩실 춤을 추곤 했겠군요. 이런저런 모양으로 제사를 연이어 모셨을 테니까요.
종묘제례악에서 추는 춤은 일무(佾舞)입니다. 일무란, 무용수들이 줄을 맞추어 서서 춤춘다는 뜻으로 무용수들이 거의 한 자리에서 춤춥니다. 일무는 다시 문무와 무무로 나눕니다. 문무는 문덕을 찬양하고, 무무는 무공을 찬양하는 춤입니다. 신을 맞이하는 영신, 폐백을 올리는 전폐, 첫 잔을 올리는 초헌에서는 문무를 추고, 둘째 잔과 셋째 잔을 올리는 아헌과 종헌에서는 무무를 춥니다. 당연히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는 짝을 이루어 문무가 먼저 무무가 나중에 오는 법입니다.
문을 위한 춤과 무를 위한 춤이라, 무를 위해서는 칼춤 같은 게 떠오르는데 문을 위한 춤은 아예 캄캄했어요. 알고 보니 문무(文舞)는 주로 임금/성인의 학문적 덕을 노랫말로 표현하며 왼손에 약(籥=대나무 피리), 오른손에 적(翟-나무 용머리에 꿩 깃)을 들고 추게 되어 있습니다. 문무를 춤추는 자를 재랑(齋郞)이라고 부릅니다. 이조(吏曹)의 지원자 가운데 총명한 젊은이를 뽑고, 또 양민(良民)의 자제(子弟)를 교육시켜 재랑의 일을 맡겼답니다.
문무와 무무는 춤의 성격에 따라 손에 드는 무구가 다릅니다. 문무는 약과 적을 드는데, 약과 적은 선비의 덕목을 나타냅니다. 반면에 무무를 출 때는 왼손에 방패형 간(干)을, 오른손에는 도끼형 척(戚)을 들게 되어 있습니다. 검과 창은 무공을 나타냅니다. 무무는 주로 임금/성인의 무공(武功)을 찬미하는 노랫말을 사용하지요. 무무를 담당하는 무공(武工)은 병조의 젊은이를 선발했습니다. 무게감이 있는 물품을 들고 날렵하게 춤을 추려면 병조에서 선발해야 했겠지요. 칼과 창, 방패형과 도끼형의 소품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무무쪽이 더 기억나는 것이 좀 더 다이나믹했기 때문일 거에요.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는요, 인조임금이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월 초하루에 조선 임금은 명나라 천자에게 하례하는 예식을 올립니다. 예식에는 노래와 춤이 빠지지 않아요.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명나라 수도 방향을 향해 임금은 해마다 춤을 추었습니다. 청나라 군대가 남한산성을 포위한 와중에도 춤을 춥니다. 바로 그 방향에서 그 춤을 지켜보는 자가 있었어요. 명나라의 라이벌인 청나라의 태종이었습니다.인조임금도 청태종이 지켜보는 걸 뻔히 알면서도 으레 하던 대로 춤을 춥니다. 그 장면을 읽을 때는 내가 조선의 자손인 것이 부끄럽더군요.
미국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 미국이나 되니까 저렇게 남녀 간에도 스스럼없이 춤을 추나 보다 했었지요. 서양의 춤이 남녀 간의 사교춤으로 흥에 겨워 춤을 추던데, 유교 예식의 남자만의 춤으로 사람과 귀신을 다 만족시켜야 했을 터이니 즐기기는 좀 그랬겠지요. 특히 나처럼 몸치인 사람은 굉장히 애를 먹었을 것 같고요. 13세와 15세, 20세에 작춤과 상춤 그리고 대하춤을 배운다 한들 부단한 연습 없이는 숙련되지 않는 법이니까요. 살얼음을 딛는 것 같은 관직생활에 춤까지 포함되었다면, 중국의 공무원 생활이 과연 어땠을까요?
주나라인은 춤을, 각종 제사뿐만 아니라 인재 교육 목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으로 썼습니다. 예를 갖추어 안부를 묻고 연희를 하거나 주선하는 예는 문무에서, 싸움터에서 치고 찌르는 법은 무무에서 익히도록 하였답니다. 그러니 무무 중에 주공 단(周公旦)이 지은 것도 있을 법 합니다. 악무 안에 찌르고 치는 무술 동작을 가미하여 후대에 군사 훈련용으로 사용했대요. 공자도 이 춤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답니다. 전설적인 성인이 만든 춤을 공연하는 것도 대단하거니와 그 공연을 바라보던 공자의 심정이 또 어떠했을까, 감히 짐작이 안 됩니다.
전통적인 것들이 사라져 가는 건 안타깝지요. 한복은 일 년에 서너번이나 입을 뿐이요. 팽이치기나 연날리기등은 한국인의 전통놀이로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고요. 그 중에서도 전통음식은 명맥이 끊어지지 않은 채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전통예술은 어떠냐고요? 올림픽 개막식의 종묘 제례악을 보세요. 금수저 부모가 없이도 마음껏 춤출 수 있는 이 좋은 세상에 빨간 예복을 갖춰 입은 성균관대학생들이 멋진 춤사위로 개막식을 빛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