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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Jun 14. 2024

15. 섹시하게 좀 더 쎅시하게

최명희의 장편 소설  『혼불』과 함께

  나라마다 고유한 악습이 있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싶은 이해되지 않는 악습도 있다. 중국의 전족이 그러하다. 전족은 어린 여자아이의 발가락을 꺾어 발바닥에 붙여 하나로 뭉치고 발 전체를 천으로 꽁꽁 동여매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악습이다. 전족을 하면 발을 천으로 꽁꽁 동여매고 궁혜(宮鞋)라는 전족용 가죽신을 신는다. 평소에 천을 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발이 상할뿐더러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는데도 그 악취조차도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연암이 지금 마주한 점포 주인의 어린 딸이 검정신을 꿰차고 있다면 그것은 그 집안이 만주족이라는 뜻이다. 만주족은 원래 기마민족 출신이라 오늘날 남녀가 가릴 것 없이 승용차를 운전하듯 승마를 한다. 만주족 여자는 전족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다.  

    

  원나라 시절에는 한족 여자들이 작은 발에 궁혜를 신어, ‘나는 한족 여자이지 몽고족 여자가 아니라’는 표를 삼았다고 한다. 그 뒤를 이은 명나라 시절에는 황제 주원장의 황후조차도 발이 크다는 이유로 공공연하게 모욕을 당할 정도로 유행을 탔다. 청나라에서는 전족을 엄금하기는 했지만 끝내 없애지 못했다. 정책적으로 십종십부종(十從十不從)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가 남종여부종(男從女不從:남자는 따르되, 여자는 따르지 않는다)이다. 한족 남자는 만주족을 따라 변발을 하되, 여자는 한족의 머리 모양을 그대로 유지해도 된다. 헤어 스타일만 지켰으면 좋았을 것을 확대해석하여 애꿎은 발까지 전족을 했다. 한족 여자들이 몸을 망치는 짓을 한다고 만주족 여자들은 겉으로는 비웃으면서도 속으로는 굽 높은 나막신을 신어 전족의 종종걸음을 모방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남자들이 전족한 여자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한족 여자는 만주족 여자와 혼동되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만주족 여자와 다르게 보이려면 아무리 불편해도 전족을 하여 차별화되어야 한다. 한족 여자들이 죽어도 전족을 고집한 건 발에 영구장애 입기를 좋아하고 더 나아가 딸에게까지 영구장애 입히기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다. 전족을 한 작은 발로 뒤뚱거리며 걷는 여자를, 남자들이 섹시하게 봐주었기 때문이다. 한족뿐이라면 몰라도 만주족인 건륭제부터가 전족을 아주 좋아했으니 게임 오버다. 남편 하나만 잘 만나면 대박이 나는 뒤웅박 팔자에 전족을 안 했다가는 혼삿길이 막힐 줄 뻔히 아는 처지에 전족을 안 시킬 수가 있겠는가. '여적여'라는 말도 있던데, 여자가 같은 여자를 괴롭히고 싶은 게 아니다. 딸을 사랑한다면 전족을 꼭 시켜야 한다.


  한족 선비는 연암과 필담을 나누던 중에 ‘조선 부인들도 전족을 하느냐’고 묻는다. 연암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조선은 중국의 온갖 것을 모방했지만, 전족만큼은 도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화란 물처럼 더 낮은 곳으로 흘러 빈틈없이 스며들어 채우는 법이다. 연암의 1780년이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의 1930년에 이르면 양반집 딸은 애기버선을 신게 되어 있다. 양반 아낙들은 죽기 살기로 애기버선을 신었지만, 항상 예외는 있는 법이다. 등장인물의 하나인 동촌댁은 어려서부터 발 조이는 걸 못 참았다. 어지간한 친정어머니도 딸을 시집을 보낼 즈음에는 신으면 칼날을 밟는 것같이 아프게, 발바닥이 또르르 오므라지게, 조그막한 애기버선을 신겨 보내야만 했다. 여자란 의당 조이는 버선 신고 발걸음도 사뿐사뿐, 소리 날까 겁내고 걷는 것이 몸에 배고, 발가락 사이가 써렛발같이 벌어질까 애기 때부터 조여 신고 크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제 발에 맞는 버선은 쌀자루 버선이요, 그런 버선을 신는 발은 도둑발이다.

     

  동촌댁은 시집올 때 몰래 쌀자루 버선을 시어머니에게 들켜 날벼락을 맞는다. 일본에서 태어나 제주도로 이사를 온 나의 친정엄마도 이 쌀자루 버선을 신으셨나 보다. 이 열여덟 살 새아기는 ‘발이 크다’는 소릴 들으셨단다. 그러고 보니 조선시대 미담 제조기인 퇴계 이황에게도 버선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아내 권씨부인이 커다란 쌀자루만한 버선을 남편 퇴계에게 신긴 것이다. 퇴계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정성껏 챙겨 신어 오히려 제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조선이 중국의 전족을 곧이곧대로 베끼지 않은 건 불행 중 다행이지만 작은 발을 자랑으로 여긴 나머지 남원의 촌구석에서조차 애기버선을 신길 만큼은 베꼈던 것이다.

   

  본받을 것을 주로 봤지만 본받지 않을 것도 샅샅이 보려고 부릅뜬 연암의 밝은 눈에 청나라 버전의 영세민 하나가 들어온다. 연경에 들어서기 직전 삼하와 통주 사이에서 목격한 여자 거지다. 허옇게 센 머리카락에 꽃은 잔뜩 꽂고 발은 전족을 한 채다. 만주족 여자보다 훨씬 못한 꼴로, 실컷 먹은 오리처럼 배가 빵빵하여 휘청휘청하며 열 번 넘어지고 아홉 번 엎어지면서도 (아마 빠른 걸음으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을) 말을 따라오며 구걸을 한다. 한족 여자다. 걸인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한족 여자라고 거지가 없을 리는 없다. 그 광경을 상상하노라니, 문득 별 일 아닌 것이 궁금해진다. 연암이 그녀에게 동냥을 줬을까 안 줬을까? 말을 탄 상태로 주섬주섬 주머니를 더듬어 지갑을 찾는 모습이 상상만 해도 답답하다.    

  

  글 읽는 백수였던 연암이 차비나 두둑이 챙겨왔겠나, 아니, 아예 지갑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필요하면 하인이 즉시 현금을 대령했겠지. 연경이 가까워져 입성하기 직전이라 바쁘게 길을 재촉하던 때다.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멈춰 서서 이리저리 보살펴줄 여지가 없었을 게다. 하지만, 거지로 영락해 버릴 궁핍한 처지에도 혹시나 좋은 남자의 눈에 들어 팔자를 고칠지도 모른다고, 전족을 굳이 시켜야 했던 그 어미의 심정이 어쩔 수 없이 같은 여자의 눈에 밟힌다. 청나라의 모든 것을 눈에 담고자 했던 조선 선비의 눈에 언짢고 안타까운 그림으로 남은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조선 여인의 전족 여부를 물은 한족 선비에게 연암은 스스럼없이 되묻는다. 한족 여자들이 궁혜를 신은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습니다. 발꿈치로 땅을 밟고 걷는데 보리를 심는 사람처럼 왼쪽으로 흔들고 오른쪽으로 기우뚱하며 바람이 안 불어도 넘어질 것 같으니 그게 무슨 꼴입니까?’    


  연암이 현대에 왔다면 그게 무슨 꼴입니까?’ 하고 한 번 더 물을 법한 것이, 내가 보기에는 오늘날 하이힐을 신는 것이다. 그것도 한족 여인들이 전족을 하고 동촌댁이 애기버선을 신은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신는다. 하이힐이 몸의 건강을 해치는 줄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요. 지금 당장은 여성미를 완성해야 부와 권력을, 아니 부와 권력을 가진 남자를 차지할 기회가 생긴다. 그 절박함 때문에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는 딸과 며느리에게 애기버선을 신겨야 했다. 애초에 전족을, 애기버선을, 하이힐을 남자가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여성의 정장(正裝)을 완성하는 이 소소한 소품 하나에 뭇 여성들이 애가 닳지는 않았을 일이다. 전족을 한 여자가 더 섹시해 보이듯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더 섹시해 보인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걸그룹은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 킬힐을 신고도, 더 쎅시하게 보이기 위해 하루에 12시간씩 춤과 노래를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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