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열하일기가 열하일기인 이유

by 정영의

중국 청나라의 군기대신(軍機大臣)이란 만인(=만주족)입니다. 비밀리에 처리할 중대사가 있으면, 황제가 부르는 신하입니다. 황제와 군기대신이 함께 높은 누각에 올라가면 밑에서는 사닥다리를 치워 버리지요. 위에서 방울 소리가 난 다음에야 그 사닥다리를 도로 가져다 놓는답니다. 며칠이라도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좌우의 누구도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고 하지요. 이 공중누각 밀실을 일본의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서 써먹더군요. 참 신박한 접근이라고 감탄했는데 알고 보니 수백 년 전에 청나라가 이미 써먹은 수법이었어요. 만화가는 그림만 잘 그리는 게 아니라 역사 공부까지 해야 하는 극한직업이었군요.


군기대신은 늘 황제를 모시고 있다가 황제가 명령을 내리면 그 담당자에게 하달하는 인물입니다. 황제의 출근 시간이 새벽 3~5시이니 군기대신의 출근 시간이 언제였겠어요? 황제도 만만치 않은 직업이었겠지만 군기대신도 그에 못지않았겠습니다. 계급은 낮지만, 황제 곁에 가까이 있으니 다들 ‘대신(大臣)이라고 불렀답니다. 군기대신은 초기에는 한인이 맡았지만, 나중에는 거의 만인이 도맡았다고 합니다. 문무를 겸한 재사이자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을 필수로 장착했을 겁니다. 그만큼 황제권 강화에 필요한 인재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나중에는 횡포를 일삼는 문제적 인물로 변했답니다.

이 군기대신이 조선 사신단의 열하 길에 직접 나섭니다. 길이 어긋나자 밤낮을 헤아리지 않고 달려와 밀운점에서 따라잡아요. 그러고 기껏 하는 말이 '황제가 조선 사신을 고대하고 있으니 반드시 초아흐렛날 아침 일찍 열하에 도착하라'는 재촉이에요. 아랫사람에게 시켜도 무리가 없을 간단한 일을 하려고 몇백 리 길을 손수 말을 달려 왔답니다. 젊으니까 은을 주고 사서 고생을 하나 봅니다. 스물대여섯 살쯤 된 이 젊은이는 키가 거의 한 길쯤이고 허리가 날씬하고 눈매가 가름하여 풍치가 있는 훈남입니다. 부친이 23년차 재상을 역임한 금수저 출신으로, 호부상서 화신과 더불어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오른팔과 왼팔인 복장안(1754-1796)입니다.


조선 사신단이 반선(티벳의 고승)을 방문했을 때 복장안은 반선의 아래에 서 있었어요. 황제를 모실 적에는 누런 옷차림으로 반선을 모실 적에는 승려의 옷차림이에요. 황제와 반선을 똑같이 세심하게 모시니, 황제의 왼팔답습니다. 심지어 반선의 말을 오중(五重)통역하는 와중에도 역관에게만 맡겨두지 않습니다. 반선이 선물로 내려준 불상은 자기의 수건으로 손수 감싸고 다른 선물은 일일이 펼쳐 확인하여 황제에게 보고합니다. 엄청난 중대사를 처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조선 사신이 반선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큰일이었어요? 이거 봐요. 황제 폐하, ’머나먼 조선에서조차 내 생일을 축하하러 왔소‘ 라고 그렇게나 내세우고 싶었소?


1780년의 만수절 조선사신의 사행의 의미는 의외로 컸어요. 부르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와준 조선에 황제는 흡족했지요. 왕들의 축하 행렬이야말로 황제의 위엄의 완성이잖아요? 황제는 조선 사신의 조회 반열을 높여주고 연희에도 부르고 더더욱 뽐내고 싶은 나머지, 반선 알현을 강요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황제가 억지를 부린 덕에 연암은 이 불후의 명작을 쓰게 되었답니다. 천하의 부가 몰려드는 소용돌이인 열하에서 조선 사람 연암은, 두 번 다시 가질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을 겪었습니다. 바로 이 열하가 그만그만한 연행록의 하나에 그칠 뻔한 연암의 연행록을 독보적인 ’열하일기‘로 만들었답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황제의 생일이 1790년에는 또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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