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조율하는 모습을 본 적 있나요? 커다란 피아노 덮개 안에 나무 망치들이 크기별로 줄지어 있어요. 건반을 누르면 망치가 움직여 탁, 치고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이런 면에서는 피아노가 타악기라고 할 수 있답니다. 뭔가가 망가지면 건반을 눌러도 망치가 안 움직이고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조율사를 부르지요. 조율사는 건반을 누르며 망치의 상태를 관찰하고 조율에 들어갑니다.
이전에는 '풍금'이 있었어요. 발로 페달을 밟아 소리를 내는 악기에요. 계속 발로 밟아야 하니까 연주자의 발이 아프답니다. 어지간히 역사가 있는 교회에 가면 100년 된 풍금이라며 구닥다리 풍금을 모셔놨어요. 강화 기독교 기념관에도 백 년 넘는 풍금이 있는데 앞면 덮개를 벗겨 그 내장(?)이 다 들여다보이도록 전시를 해놨어요. 연경 천주당에서 풍금의 제도를 처음 본 홍대용처럼 나도 깜짝 놀랐어요. 연주자는 악기의 구조를 잘 알아야 하니까 덮개를 벗기고 안을 들여다봐 버릇해야 한대요.
이런 건 작은 풍금이에요. 연암이 본 것은 파이프 오르간이죠. 생황 소리가 난다길래, 나는 생황 소리를 검색해 들어봤어요. 생황은 멜로디 단음(單音)만 연주하는 데 비해 파이프 오르간은 복음(複音)이라 썩 비슷하지는 않아요. 내친 김에 다른 국악기 소리도 다 들어보니 그제야 생황을 언급한 이유를 알겠어요. 일단 파이프 오르간 하면 떠오르는 그 축소판 금빛 파이프들 모양새하며 입으로 불어 소리를 내는 관악기의 느낌이 일치하더군요. 이 악기는 서양 선교사인 서일승(1646-1708)의 작품인데 그는 중국의 관복을 입고 중국식 예의범절과 생활방식을 지켜 살았다고 합니다.
홍대용이 말한 금빛, 은빛의 금속제 통이란 '파이프'에요. 풀무질로 바람을 보낸 듯하다니 발로 페달을 밟는 수준이 아니지요. 진짜로 사람이 매달려 그네 타듯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풀무로 바람을 보내었답니다. 당시에 파이프 오르간은 중국 음악, 만주 음악, 몽고 음악을 연주했대요. 시간에 맞춰 인형들이 나와 종을 땡땡 치던 해시계처럼 자동화가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녹음하는 시대가 아니니 누군가가 연주를 했을 텐데 그걸 볼 수 있었다면 진정한 황도(皇都)의 기략(奇略)이 되었을 터입니다.
조선 선비들은 이 악기의 연주보다도 제작에 관심이 더 있었나 봐요. 연암도 홍대용이 말하던 풍금 만드는 방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어요. 잊지 않고 선무문 안 천주당을 찾았지요. 천주당은 높이 일곱 길에 넓이 수백 칸인데 명의 만력 29년(1601년)에 이마두가 방물과 마리아상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대요. 애석하게도 문제의 그 파이프 오르간은 건륭 기축년에 천주당이 헐리는 바람에 없어졌어요. 그림으로 그려 남겼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연암은 홍대용의 풍금 이야기를 서글피 곱씹었어요.
나는 나중에 담양에 갔어요. 그곳의 예술창고 카페에는 세계에 두 개밖에 없는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이 있습니다. 습기에 민감한 목제품이라 유리 벽 안에 잘 모셔놓고, 주말에만 문을 열어 전문 오르가니스트가 연주를 합니다. 딱 30분 동안. 그거라도 보고 듣노라니 답답하던 숨통이 트이더군요.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한 가족이 연주를 감상하러 왔더군요. 커피 향에 청아한 오르간 소리가 녹아들며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이 좋은 문화가 언제까지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