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청나라판 카톡 알람

by 정영의

8월 1일에 연경에 도착한 조선 사신단은 ‘열하까지야 설마 부르리’하며, 보고서를 올려 인사치레를 하고 연경 시내 관광을 즐깁니다. 하지만 황제는 그게 아니었어요. 조선 사신단을 꼭 보고 싶었지요. 보고서 한 장만 달랑 올린 건 직무 태만이라고 호통을 칩니다. 겁먹은 청나라 관리들은 불같이 재촉하고 조선 사신단은 최소한의 인원과 짐을 가지고 만수절 이전에 열하에 도착해야 합니다. 8월 4일의 일입니다.

정확하게는 오후 7~9시 사이에 열하 인원의 인적 상황을 보고하라는 문서가 왔어요. 하루의 노고를 씻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네요. 걷느라 발이 부르튼 사람들이 곯고 병든 말을 타고 일정에 차질을 빚는 연장근무를 무박 나흘로 가야 합니다. 열하로 누가 가고 안 가는지를 논의하고 또 연암을 설득하느라 시간이 흐릅니다. 그 잠깐을 못 참고 자정(밤 12시) 이전에 공문이 또 옵니다. 명단 제출을 채근하는 문서입니다. 아,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청나라 관리들은 잠도 안 자나 봐요! 수렵민족 출신이라 업무 속도가 빠른가요? ‘어쩌면 이렇게 요즘하고 똑같나‘, 혀를 끌끌 차게 됩니다.


8월 5일 오전 9시경에 사람 일흔네 명과 말 쉰다섯 필이 출발합니다. 촉박한 일정에 맞추어 달려요. 만수절 이후에 도착하려면 아예 갈 필요도 없지요. 가다가 죽으면 죽었지 그 이전에 도착해야 합니다. 연암은 밀운성 인근에서 우연히 황제의 조칙을 마주칩니다. ’조선 사신단에게 건장한 말을 내주라‘는 명령서입니다. 연암은 바짝 긴장해요. 날쌘 청나라의 말이 잠깐 사이에 나르는 듯 70리를 달리는 것을 봤거든요. 사정없이 달리다가 지칠 만할 때쯤 역참에서 교대로 바꿔 타는데, 이것이 청나라의 비체법입니다. 여름이면 관리들은 말 안장을 떠날 새 없이 연경에서 열하를 문 앞뜰처럼 나다닌대요. 이틀이면 왕복한다네요. 청나라에서는 애, 어른 가릴 것 없이 말타기가 대물림이에요. 건장한 말을 내어주는 것이 손님 대접이지요.


그런데 조선 사신단은 조선의 말, 과하마를 탑니다. 과하마란 키가 작아 말을 타고서도 과실나무 밑을 지나갈 수 있다는 뜻으로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도 즐겨 탄 말이에요. 품종 개량을 힘쓰지 않아 조선 시대에는 보잘것없는 말이 되었는데, 조선 사람은 그 말을 타도 굳이 견마를 잡힌답니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도 있듯이 견마잡이는 양반이라면 빠질 수 없는 체면치레입니다. 말의 속도로 달릴 수 없는 사람이 말고삐를 잡고 있으면 말을 타나 안 타나 매한가지이지요. 이렇게 어슬렁어슬렁 다니던 이들에게 건장한 말을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황제가 말을 내주면 안 탈 수도 없는데 그 말을 누가 부릴 줄은 아냐고요.


과하마만 타고 다니던 소현세자도 애를 먹었답니다. 하마터면 연암 일행도 청나라의 말을 타느라 몸살을 앓을 뻔했군요. 모처럼의 호의가 헛되어, 길이 어긋나 건장한 말을 못 받은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더구나 연암은 인원을 줄이는 바람에 견마를 잡힐 수 없었어요. 손수 말고삐를 잡습니다. 연암은 말을 믿고 말은 제 발굽을 믿고 말발굽은 땅을 믿고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도 건넙니다. 연암은 조선식 말타기의 문제점을 몸소 체험하고 조선식 말 관리의 허점을 탄식해요. 하지만 내가 탄식하는 것은 연암식(式)의 거시적인 일이 아니라 어떻게 연암이 글을 썼는가, 하는 미시적인 일 때문이에요. 글자 한두어 자만 쓰려고 해도 먹을 갈아야 하는데, 눈뜨고 졸며 행군하며 어떻게 글을 쓰냐구요.


6일에는 밀운성 우두머리가 직접 나와 맞고 9일 이전에 도착하라는 당부가 오고 관리가 직접 채찍을 휘둘러 새치기로 냇물을 건네줍니다. 9일에는 사신단의 현 위치를 확인하러 오고 숙소의 통지가 또 오니, 일 처리 속도가 거의 실시간 업데이트입니다. 혀를 내두를 만큼 빠른 기동력입니다. 오늘날 시도 때도 없이 카톡에 쫓겨 치열하게 달리는 우리는 죄다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해요. 모르는 사이에 청나라 사람의 피가 조선 사람에게 듬뿍 유입되었을 지도 모르니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만수절에 대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리던 속도가 어떻게 우리 일상의 속도란 말입니까. 그대는 아십니까, 연암이여? 카톡 소리에 깜짝 놀라며 알람을 꺼놓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후손들의 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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