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my chaos in Order

by Romantic Eagle

Archive 의 Again 이 들리면서

9월의 새벽 6시 Amager Strandpark 의 새들이

시차를 두고 물가에서 날개를 하나 둘 펴서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두 눈으로 보면서

나는 브뤼셀 거리의 벽돌들의 냄새를 맡았고,

비엔나 카페의 화이트 와인의 향기를 마셨고,

그가 뿌리는 Dior 향을 기억한다.

모든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는 바람에

and 로 잇기에는 시간과 공간이 왜곡되는 감이 있지만

그 찰나를 계기로

나는 다시 런던 거리를 활보하며 old street 의

ozone roasters 입구를 걸어 들어가

매니저와 눈 인사를 하고 flatwhite 를 주문하고

삐죽삐죽 앉을 자리를 찾는 나를 기억한다.


그러고는 Sunday 카페에 버스를 타고 가서는

운 좋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프렌치 토스트와 팬 케이크에 소시지를 추가해서 먹던

나의 순수한 배고픔을 찾아 헤매면서

그렇게 혼자 뭔가를 했던

"감" 과 적당한 대화를 하며


Archive 의 노래가 마무리되는 순간

먹던 크로와상을 다 먹고는,

바람이 잠잠해진 틈을 타

거의 식은 라떼를 물 마시듯이 마신다.


그러고는 걸어갔던 시공간을

rewind 하는 방식으로 6시는 8시가 되고

나는 일어났던 어제의 이부자리로 돌아와서

마치 일어난 적 없듯

아무일도 일어난 적 없듯,

한국에서 여기 이 곳으로 온 적도 기억 안 나는 듯,

일주일 전 세탁한 하얀 시트 위에서

아까 꾸던 꿈을 좇아 잠이


든다.



이어지는 모든 것들이

우연 같지만 절대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나의 의식을 소외시키며

자기들끼리 기억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내가 지금 당근 케이크가 생각났다면,

나는 3년 전 수요일 오후 12시 47 분에 분명

당근 케이크를 먹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문득 소나무 숲에서 아르마니 향수 냄새를

찾아 맡았다면 나는

7년 전 같은 계절에

비슷한 시각을 기점으로 네 목에 코를 대고

들이마신 향수가 아르마니여서일 것이다.


내가 방금 갑자기 비빔면의 소스 향을 맡았다면

수요일 점심 때, 종종 엄마와 비빔국수를 해 먹어서일 것이다.


문득 강을 보다가 울컥하면

그 시각 10 년 전 네가 나를 떠나기로 결심한 날이라서일

가능성이 컸다.



미치겠다가도

잊을만 했다. 모든 것들이.


세세하게 서술을 해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줬다고 착각하고 싶지만

그 누군가가 나에게 할당한 의식의 시간은

방금 들은 이야기를 잊고 살 시공간에 정확하게 반비례하는 방식으로

이진법 기준으로 2분 뒤에

이 이야기를 완전히 잊고는

해야 할 만 한 일들에

하루 의식의 할당량을 사용할 것이다.


내가 방금 한 말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가 방금 쓴 글도

글로 쓰인 순간 화학 변화를 감행하는데,


이렇게 확실한 기준이라는 말은

말에서나 존재하지

존재가 실재하는 시공간은

글이 중력하고 관성하려는 차원보다

훨씬 복합적인 방식으로 아주 정확하게

존재를 유용하게 했다.


이 말의 뜻을 이해해도

그 이해한 것들마저

오해로 처리되고 복잡함. 으로

분류되는 방식으로.


이대로 한국에 가면

한국에 간 대로 살 것이다.


철저하게 환경이 제공하는

이야기의 제물이 되는 방식으로

기억은 개체에게 확실을 확률하기보다

확률을 확실하게 했다.


그립다고 처리되는 너는

나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두뇌에서나 아련하게 처리되지


실제 너를 마주한 나는

네가 차지하는 질량과 저항에 의해

매우 소심해졌다.


내가 사랑한다고 착각한 건 대체 누구여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나는 너를 마주한다는 이유로 널 사랑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에 사로잡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결정하기 전에 유전자가

이미 너를 선택한 건지와

철저하게 무관한 방식으로


앞으로 아주 많은 기간 동안

너를 잊기 위해

나의 하루 하루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벌써부터 두려운 방식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거짓에도 동의할 수 없고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참에도 동의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는

오늘이 막연하게 4월의 첫째날이라는 사실과

타협해야 했다.


어쩌면 이 때 즈음

아주 먼 몇 년 전

누군가를 이런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시간대와

어느 공간대가

실재하는 참이든,

나는


누군가를 막막하게

그리워함으로 인해

존재감을 느끼는 정체성을 가진

개체인지도 모르겠다.


써내려간 글들이 모두

거짓일 가능성이 있는

만우절이라는 표면적인 지표가

나를 이 정도까지 글을 쓰게 한

것을 보면, 내가 의식하는 진실은

어디에 닻을 내린 것인지 알 것도 같은

보통의 수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