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은 없다. 내가 없으니까
어떠한 구체적인 서술로도
절대 타인에게 이해를 요구할 수
없는 점선이 있다.
그리하여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의
1도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가까운 타인을
그리고 가장 먼 타인을
두 눈으로 쳐다보면서
나는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속이 타들어가는 냄새를
맡아야 하는 방식으로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타인을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을
납득해야 했다.
미안하다라는
말이
말 같지 않고,
고맙다는 말이
가끔 얄밉게 느껴지면
나이가 들 만큼 든 것이다.
나 너무 아픈데,
아프다고 말 해버리고 나서
그 말을 대충 듣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삼키고 얽힌
감정이
가슴팍에 자리 잡는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떠난 친구들.
그들의 귓 속에 자리잡은
나의 편했던 목소리가 그립다.
내가 하는 말
한 마디를 놓치지 않던
그 사람의
존재가 간절하다.
그러나, 그립다고 다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간절하다고
손에 쥘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글을 더 쓰고싶은데
글이 해결할 리 없는
이 개체가 처한 상황이
글을 쓸 만큼
안정적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실존하는 맥락이
지나치게
혼란스럽다.
답은
옛날 옛적
내가 태어난 시각과
공간과 정체성이
이미 정해놓았던 방식으로.
못 괜찮은데
그래도 웃을만 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종용하는
내 웃음이
너무 아프다
그렇게 웃어주고나서
빈 방 흰 벽에 둘러쌓이면
어김없이
참아야했던 눈물이
났다.
그들이 불행하기를 바라는 게 아닌데.
문 밖에 놓인
찬란한 그들의 웃음 소리가
왜 아파야하는 지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