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이 자유인만큼
자유는 착각이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단지 단어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때 즈음이면
엄마 아빠의 내리 “사랑”의 정체를
알게 되고,
그리하여 내 “사랑”의 정체를 알게 되면
내가 “사랑한다”하고 내뱉는 그 자신이
사랑스럽지만은 않다.
“깨어나기” 위해
꾸준히 사는 척해봤지만
깨어나도 밤이 되면
잠을 자야 하는 사실이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특권”의
유일한 단점 인지도 몰랐다.
지나치게 오래, 많이 들어서
1분 전까지 질렸던 노래도
내가 가장 외로울 때
그래도 친했던 친구의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나에게
그래도 숨 쉴 틈을 주었고,
몇 년을 본 친구도
꼬 ㅐ 낯설어지는 순간이
반드시 왔다.
시간이 우스운 건
몇 백 시간 후에는
내가 절대적으로 애착하는
상대와 헤어져야 해서이고,
공간이 우스운 건,
공간이 바뀌면 바뀐 대로
살아져야 하는 생명체의
“윤리”가 나를
그래도 살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살아봐서 아는 게 있지만
그리하여 모르는 게 더 많았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은
내 현재가 불안한 데서 오는
일종의 리바운드에 가까웠고,
글이 그래도 살게 하는 현재는
괜찮아야 하는 만큼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결국
괜찮은 척할 필요 없지만
괜찮은 척하는 건
불안한 나를 그래도 잡고 있는 건
“불특정 대상”에게 그래도
덜 미친 것처럼 보여야 하는 강박관념
“덕분”이었고,
그 덕분에
온 세포가 저항하는 현실에서도
멀쩡한 척 살아질 수 있었다.
나 근데
지친다.
그냥 네 눈 앞에서만 살고 싶은데,
대한민국 국민으로
만료된 비자를 손에 쥐고
내 머릿속에 꽉 찬
너와의 이십사 시간을
1초 단위로 무효화해야
그래도 살 수 있을
앞으로의 24 시간이
우습다.
그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면
못 견뎌 낼 시간은
이 세상에 없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