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um)
특정 대상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과, 더 이상 “매일"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큰 맥락의 오차를 남겼다.
“비자" 덕분에 만난 그 사람과의 인연이 “비자"가 만료되는 것과 함께 종료되어야 하는 그 차디 찬 “사실적 상실”은 매우 정당한 방식으로 부당하게 다가오고는 했다. 그렇다고 결혼할 것도 아닌 두 사람이 고집적으로 끌고 갈 “관계"도 아니어야 했던 차가운 “사실" 도 나를 허무하게 하는 건 사실이었다.
물론 허무하다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 단어를 쓰는 방식으로 이 단락을 대충 넘길 생각인지도 몰랐다. 허무하게도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소중하게 안고 있던 시간과 공간과 사람이 한순간에 절대 타인이어야 하는 차원으로 들어선다.
환장하겠다.
그래도 비행기에서는 뭐라도 먹어야 했고, 면세점에서는 그래도 여행 중이라는 나의 ego를 만족시킬 만한 정도의 소비를 해야 했다. 그래도 살아지는 개체의 인생은 이렇게 한 순간에 촉각이 지배하는 황홀에서 벗어나 촉각이 상실한 상대에 대한 “분리 불안증”을 먹어대는 것으로 채우고 있었다.
“사랑한다"라고 입으로 말하면서 발끝은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그녀는 그렇게 그의 품에서 벗어나
애초에 벗어났던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계속할 수 없는 어떤 것은 일어난 적 없는 것과 같음”을 희미하게 깨달으며, 엄마의 침대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잠들고 있었다.
그래도 잠이 와야 하는 내가 싫어야 하는 방식으로, 잠을 자지 않아서 좋을 것도 없는 생명이 제시하는 “답이 정해진 옵션”에 대꾸하기도 귀찮은 나는 그와 듣던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축내려고 해 봐도, 그와 같이 들을 때와 같이 들릴 수 없는 음악을 껐다 틀었다 껐다 틀었다를 반복하다가 새벽 3 시에 “낮잠”이 들고는 했다.
때마침 연락이 닿은 친구는 그녀의 최근에 태어난 아기를 보느라 바빠야 했고,
때마침 부모님 집에 거주하던 내 동생은 지인을 만나러 진주에 갔어야 했고,
부모님은 아침부터 일을 하러 나가셨다.
그리고 나는 2 주 간의 “합법적인 백수 생활”을 시작했다. 코로나 검사도 하고 의무적으로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바람에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범죄자가 되는 2 주간의 “집 생활”이 시작되었다. 덴마크로부터 격리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격리되고, “그래도 돌아가는” 바깥세상으로부터 격리되었다. 나에게 연락이 꾸준하게 오는 상대는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보건소에서의 감시 전화였다.
그렇게 마음과 몸은 여러 차원에 갇혀서 현재를 살아내기도 버거운데, “주민으로 등록되어 있는 한 개체”이기도 해야 하는 나는 이 곳 저곳에서 “이미 존재할 생각이 없는" 나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기를 쓰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들도 개인적으로 내가 누구여야 하는지,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지도 않아야 하는 방식으로 꾸준하게 전화를 걸어야 하는 그 “일"이 되어야 하는 바람에 업무를 이행하는 데, 때마침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어서 이렇게 서술되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나 또한 그들을 이 글에 포함하기 위한 계획을 하지 않았지만, 이 개체가 자기의 현재 위치를 파악해서 살아내기 위해 그들이 개입하겠다는 내 세상에서 그들을 이미 배재할 수 없었음을 알아야 했다.
그리하여 특정 사람들과의 부득이한 지리학적 거리는 가까울수록 서술의 영역에 들어섰고, 멀어질수록 한 개체의 한정된 의식이 살아야 하는 사회적, 생물학적 24 시간이 덜 왜곡되어야 하기에 끝날만 해야 하는 연락이 존재했다.
간간히 확인해야 하는 “생사를 위해 연락처”를 남겨놓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연결되어 있다는 잠정적 도구가 없으면 그건 너무 잔인했다. 그러나 버튼 하나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도, 전화를 걸 마땅한 "면목"이 없음 또한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를 한 순 간에 “일련번호"로 만들기에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었다.
존재의 이중성, 혹은 존재하는 이중성에 대해 혹은 다중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방식으로, 나는 알아야 했다.
그가 그렇게 좋았으면 헤어질 만한 상황을 만들었으면 안 되었다고.
헤어질 줄 알았다면, “그렇게 사랑하는” 척이라도 했었으면 안 되었다고.
그래서 돌아왔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숨 쉬는 그의 인생에 손가락 하나라도 걸치려고 “욕심” 부리면 안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