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pe-Memory Alloy)
제정신은 자기 신용 카드 간수만 잘하면, 물질적으로 잃어버린 게 없으면 자기의 몫을 다 하는 것 같았다.
제 마음 간수를 하지 못해, 깨지고 부서지고 손 끝에서 발끝까지 아린 상실을 감당하고 있는 멈추지 않는 눈물은 신용카드만 한 가치를 못하는 듯, 저토록 (?) 울상 지으며 울면서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펑펑 울면서도 지갑은 꽉 쥐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헤어지면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이상의 아픔을 견디는 방법은 그래도 사용 가능한 카드 한 장을 쥐고 일단은 기분의 혼돈을 감당할 수 있게 커피 한 잔 혹은 맥주 한 잔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힘을 찾고 또 울고 있는 나를 보면서.
물질적으로 보상되는 합리적인 감정적인 상실은 없으며, 비합리적인 감정적 상실은 물질적으로 일시적 보상이 가능한 바람에 견뎌져야 하는 맥락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간이 약이다"라는 문구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 역할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다"가 참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서의 슬픔은 일어나지 않은 순간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타다 남은 재가 자국을 남기든, 가슴 어느 한 구석은 시간을 초월하여 아픈 게,, 내가 얼마나 “행복"에 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재 진행형과 무관하게, 이전의 특정 타인과의 “현재"에서 자국이 난 상처는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이 다른 데로 갔을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와서 두 눈시울을 붉히는 게, 내가 할당받은 행복 질량 보존 법칙의 정도만큼 불행 보존 법칙이 적용되는 듯, 나는 그렇게 “행복에 겨운” 웃음 속에 그만큼의 슬픔을 안고 있는 중이어야 했다.
슬픔에 겨운 눈물을 흘릴 때에는 행복과 연결이 쉽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운다는 것은 그치는 순간을 반드시 만나기 위한 사건이었기에, 결국 울지 않아서 행복했던 추억이 생각나는 것인지, 행복했던 기억이 울음을 그친 것인지 구분할 수는 없는 방식으로 나는 울다가 멈췄다를 반복했다.
두 사람이 그래도 내일 만나야 하는 “맥락"을 빌려서 일정 기간 동안 겨우 맞춰서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던 매일매일의 일과가, 한 사람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그 “맥락"을 벗어나야 하는 바람에 각자는 “자기 형상 기억 합금” 이 자기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듯, 그래 왔던 자신으로 돌아가야 하는 듯 보였다.
모르고 겪는 상실의 아픔은, 어떻게든 타의에 의해서, 그리고 그럴만한 distractors에 의해 그럭저럭 “그래도 살아짐”의 단순한 법칙에 순순하게 수렴되는 듯 보였다. 그렇게 살아지는 나를 경험했으니까.
그리하여 알고 겪는 상실의 아픔은, 마취를 하지 않은 수술을 겪어내듯, 상처의 위치와 이유, 결과가 고스란히 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야 하는 바람에 더 울 수도 없고, 울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갇히게 했다. 그렇다고 울지 않는 것도 아니듯, 그렇다고 해서 살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닌 맥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영화를 보며 잊어보려 해도,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더 말이 안 된다고 여겨지는 상실이 나를 관통할 때에는, 타인의 시나리오만큼 나를 지루한 인간으로 만드는 건 없었다. 차라리 뇌간을 찌그러뜨리며 짜내는 눈물이 나를 더 실감 나게 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러고 있었으니까.
몇 번의 반복을 통해 익숙해진 상실이 슬픔의 정도를 상쇄할 수는 없었다. 웃기게도 어떤 정도의 슬픔을 감당할 수 있는 개인의 상실을 감당하는 능력과는 아주 무관하게, 상실을 감당해야 하는 그 차원의 맥락에서는 두 개체가 감당하고 있다는 단순한 “팩트”로 인해 슬픔은 어느 정도 나눠지는 듯 보였다. 나도 슬"펐"고, 그 또한 슬 “펐"으니까.
그러고 나서 돌아서는 개체가 인간의 모습을 인지하는 방식으로 견뎌내야 하는 슬픔과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어야 하는 듯 보였다. 밥도 먹어야 하고, 너무 울면 눈이 부으니까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폰을 꺼내 자신을 슬픔으로부터 distract 하게 할 것들은 꽤 있었다.
그러고 있다 보면, 갑자기 상실의 아픔으로 인해 울던 자신과 웃고 먹고 넋을 놓고 저녁노을을 바라봤던 방금의 나 사이의 간극에서 심각한 역겨움을 느끼면서, 그래도 웃을 수 있는 내가 진심인지, 그렇게 울던 내가 진짜인지 헷갈리는 바람에 울던 내가 다시 웃던 나를 울리는 방식으로 웃던 내가 울던 나를 웃게 하는 맥락의 반복이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