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ive Dissonance
내 쪽에서 바라는 그와의 상황과, 그가 가능하다 여기는 상황이 다르면 내가 지금 추구하려고 하는 것은 순전히 나를 위한 것일까.
그렇겠지.
모든 건 그렇게 서로가 “자신을 위한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서로에게 기회를, 아니 상대를 경험할 기회를 자신에게 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헷갈려서 숨을 못 쉬겠지만, 숨은 쉬고 있었고, 대체 어떤 의식에 거주해야, 지금 이 그와 함께 하지 못하는 시공간을 버틸 수 있는지, 나는 어디에 조언을 구하기도 말이 안 되고, 혼자 끙끙 앓기에는 너무 많이 울어서, 문법의 구조와 단어 조합을 빌려서 내 의식과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의 premise에서 벗어난 지 15일쯤이 지나니, 그를 기억하는 내 의식이 마음을 놓기도 전에, 몸이 적응하고 있었고, 바이오리듬이 적응할 무렵 즈음되니, 그를 기억하려고 애쓰는 내 의식이 기억을 희미하게 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있었나...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던 그 거리가 이토록 멀어질 수 있다면, 둘 중 어떤 쪽이 고집하는 의식이 진짜여야 하는지 아주 헷갈리는 방식으로 저쪽을 놓기에 아직은 안 되겠고, 이쪽을 놓기에는 쉽게 죽어서 좋을 구조를 선물할 정도로 너그러운 사회도 아니었다.
사실 지금이 이토록 현실로 인지하기 힘든 것이라면, 저쪽이 절대적인 현실임 또한 보장되지 않는 방식으로 두 쪽은 다 사실로 치부될 수 있는 만큼 거짓으로 치부될 수 있었다. 그런 의식의 장난을 떠나서, 인간은 “화학 물질 반응이 직접적으로 가능한 장소”'에 일단은 자신의 “물리적 현실”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1차원에 기생하는 “방정식"을 타고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식으로 “물질세계”에 태어났고, 그런 식으로 이 세상을 산 적 없이 떠나게 될 그 원리대로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한 개체의 의식이 다른 개체를 의식하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특수한 시공간을 만들어내고 그는 절대적 시간과는 별개로 상대적으로 서로의 두뇌에 발자취를 남기는 방식으로 특정 자기장을 허락하지만, 물리적 거리가 떨어지면, 그 자기장이 물리적으로 일단은 깨져야 하는 방식으로 그 속의 개체는 심각한 인지 부조화에 일단은 지배되는 것이 자연법칙인 것이다.
시공간이 뒤틀리고, 그의 눈 앞에 존재하지 않는 내가 인지하는 절대 시간은 아주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방식으로 지금은 8월 8일 하고도 21시 33분을 지나고 있다.
그는 다른 시공간을 보내고 있는 방식으로. ㅎ ㅏ...
이 사건은 꽤 나에게 아픈 시간을 남기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안 그래도 아린 심장을 할퀴는 것만 같잖아.
일어난 일은 일어났다 이미.
지금. 이 잘난 지금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묻고 싶은 이 순간에도 그래, 그 잘난 시간은 지나고 있다는데, 나는 시간이 지난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아도 되는 grid에서 오로지 그의 연락만 나의 “현실"이어야 함을 나에게 증명이라도 하려듯 그와 문자 한 시간이 합해서 하루에 한 시간도 안 되는 조각난 “시각"의 합에서만 나는 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고도 시간은 넘쳤다.
반면에 그 사람은 내 곁에도 내 눈앞에도 없다.
어디인가에 있을 것이라면 내 앞에, 아니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고,
그가 누구와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그 또한 나였으면 좋겠다.
(이럴 거면 오는 사건을 만들면 안 되지. 이 바보야.)
그리고 지금 기록하는 이 공허한 문장들이 무색하게 그와 다시 만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멀리 떨어져서 하는 달콤한 말만큼 문명이 창조한 언어를 모욕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면, 그 관성이 괴롭히는 인지 부조화를 달래줄 유일한 수단이 언어여야 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I’m so trapp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