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이 것이 내 인생만도 아니었다.
화가 나면 손에 술이 들려
있었어야 했고,
때로는 커피,
때로는 많은 음식,
눈물,
지금이야 비교적
편한 고통 속에 살고 있지만,
어린 시절은 그냥
온 정신이 박살이 나는 고통 속에서
하루를 연명했던 것 같다.
고통이 상대적이라고
하지만
비교 대상이 없는
어린 개인이 겪어야 하는
의지할 데 없는
고통은
이 정도 살았으면
극복할 만도 한데
매일 매일 뉴스 업데이트 되듯이
업데이트 되는 고통 및 아픔은
기쁨 및 행복 못지 않게
인생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음이렸다.
때로는 다 아는 것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일년에 딱 하루 정도는
진짜 완벽히 나만을 위한
하루로 느껴지는 방식으로
생일만큼만은
내 편이 아니었다.
가는 마음은
돌아오지 않고,
받는 마음은
양식이 맞지 않아
복사 붙여넣기가 되지 않는다.
엑셀만
나름의 식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옆 사람이랑도
삶의 공식을
미지수 x 이외에는
공유할 수 없었고,
그 x라는 모양 이외의
변수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모두들 아는 척 하느라
바쁜 삶을 사는 듯 보인다.
네가 내 무엇이라서
더 무엇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 이상
서로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덕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래서
그러면
누구를
언제
어떻게
어디서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도 만나지 않아도 되기에
속편한 세상에 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방식으로
없음은 있음을 그리워하고
있음은 없음을 그리워하는 듯 보인다.
더 알기 시작하면
더 피하기 시작하고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의 눈빛이
잿빛으로 변하기 까지의 시간의 공식을
알고 있으면
나를 새롭게 보는 눈빛이
고맙지만 미리 슬플 뿐이다.
젊음은 아마
상처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이었지 싶다.
그런 미치도록 고통스러움에서도
현재의 나를 피웠으니까.
나를 만들어냈으니까.
필연적으로
이 순간에 도달했고,
이 자리의 영광과 무관하게
세상은 바쁘게 돌아갔으며
내가 없어도
잘만 돌아가는 직장은
오늘도 에어컨이 가장 열일을
할 계획이었다.
상처든, 행복이든
혼자 존재하는 무중력에서는
경험할 수 없기에
잃어보는 방식으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내 것이 될 것만 같은 순간에도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안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나한테
필요 없는 것이라고.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살아있기에.
그거면
충분하기에.
사랑을 꿈꾸며
잠들고
사람을 겪고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과 본격적으로 헤어지는 것이
인생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