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무덤.
가지 않기로 되어있던 시간도
갔음이 데려가는 시공간만이
내 생각은 그저
지나가는 것임을 증명함에도
다음 순간
또 어제의 걸음을 반복해서
애정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대답없이
사라진 그대를 원망하지만.
어떤 소식도 들리지 않는
내 앞에 놓인
일련의 것들의 모습은
내 진심을 시험한다.
그렇게 대답을 원하면
죽을 때까지
기다려라는
의도 같잖아...
내가 빠진 사랑에.
그대는
실물이기 이전에 관념이었다.
내가 빠진 그 관념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필요했지만,
그 비용이 바닥나자
내 사랑의 끝은
잔고의 한계와 같은 운명임을 깨닫는다
사랑?
실물을 감당하며 산다는 것과
개념을 감당하며 산다는 것은 무게를 달리한다.
돈의 사라짐이 허무를 경험하게 하지만
실물의 사라짐은
그 또한 허무를 경험하게 하는 방식으로
내가 죽은 이후의 허무함은
내가 격을 수 없는 경험일 뿐이었다.
필요에 의한 연락의 반대편에
사람은 있었지만
필요없어진 대상으로 전락하니
No signal.
어떤 입장에서 보면
누군가에게
ATM 기로 이용되는 것도
소용되고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보면
애정으로 커버할 수 있는
존재의 이유임에도.
나만 다 주고 있는
일방적인 주기.
의 행위의 미덕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내 진심의 계획은
평생 책임지겠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대출을 위한 용도나,
명의가 필요한 이유가 되거나
신용카드 번호로 치환되는 것을 목격하면
그리고 그 가치를 주지
않을 때의
받을 수 없는
'사랑한다'는 말의 메아리는
인간의
어디까지 목격하게 하는지
가늠할 수 없게 하는 방식으로
요즘 나는
조금 웃음을 잃었다
치사하기 싫어서 닫은 입은
속을 태우고
엄마는 나에게
내가 하는 사랑은 불나방같은
일시적인 사랑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내가 사랑을 바친 사람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나를 마음대로 대하는데
이렇게 취급받고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보는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그만하라고 말씀한다.
사랑은
혼자 버틸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둘의 것이었다면.
혼자 증명할 수 있는 사랑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랑 또한
개념이 다양하기에
대화하는 두 사람이
재정의를 하지 않으면
오해의 배를 탄 것이었다 이미.
겁없이 사랑하면
다친다.
다쳤다.
일어나야지.
처음부터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것은
중요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아,
열정으로 사랑한 건
나 혼자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극도의 합리화를 하자면.
내 사랑이었다.
그리고 극도로
혼이 나자면,,
바보같은 사랑이었다.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름다움 이면에는
숱하게 눈물과 핏물로 견딘
고통이 있을 수 있음을 알기에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랑할 수 없어졌을 뿐이다.
그냥 사는 거지.
사는 '거지'
돈이나 벌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