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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Nov 11. 2023

런던 여행 필수품 한 가지

공원이 많은데 놓칠 수 없다

서울보다도 더 큰 규모의 대도시 런던 여행을 준비하며 유난히 눈에 들어왔던 단어, 피크닉. 서울에선 한강 말고는 피크닉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지라 생각지도 못했다.


런던에는 도심 속에서도 자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원이 곳곳에 있고, 몇 곳은 규모도 꽤나 크다. 그래서 유명한 하이드 파크, 리젠트 파크 등에서 돗자리 깔고 시간 보내는 게 런던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되겠다.


여행 시기는 3월, 4월. 연교차는 적지만 연중 기후가 대체로 낮은 영국은 3-4월엔 피크닉 하기에는 조금 추운 시기. 하지만, 공원에서 피크닉 하는 게 유일한 버킷리스트였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피크닉 매트를 챙겼다. 안 가지고 와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영국 여행을 며칠하고 나서 기온에 감이 잡혀 아침마다 기상 예보를 확인했다. 그리고 해가 쨍쨍한 맑은 날이 예보된 어느 날 아침, 피크닉 매트를 챙겨 집을 나섰다. 오늘이다! 패딩을 입고 다니는 따뜻하지 않은 날씨지만 햇빛이 강한 유럽의 특성상 밖에서 충분히 무리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름엔 참 미울 만큼 강한 햇빛이지만, 이럴 땐 또 고마운 존재다.


프림로즈 힐


오늘의 피크닉 장소는 프림로즈 힐. 리젠트파크 위쪽에 붙어있는 언덕이다. 개인적으론 한국의 북촌 한옥마을, 특히 4경 포토존이 생각나게 하는 곳이다. 한국은 구식과 신식 건물이 한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것이 매력이라면, 여긴 자연과 도심이 공존하는 뷰가 매력. 멀리 있는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가시거리가 좋아야하기 때문에 이런 맑은 날씨에 방문하기 최적의 장소다.


(여담으로, 런던에 살고 있는 지금도 날씨만 좋으면 먼저 떠오르는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프림로즈 힐 뷰


사실 이 고층 빌딩들은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기에 가까이서 봤을 때 감흥이 떨어졌다. 반감이 생길 만큼. 여긴 여의도. 여긴 잠실. 한국에도 다 있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영국에 대한 로망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멀리서 보니 영국스럽고 이색적으로 보였다. 영국만의 특유의 녹빛에 한 줄로 길게 나열된 듯 보이는 건물들. 또 낮은 건물들 사이에 높은 특색 있는 건물들을 지어놔서 생긴 높낮이 변화흐름이 딱 조화로웠다.


고요한고 바람만 은은하게 부는 이곳에서 바삐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볼 때의 이 평안함. 이보다 좋은 건 없다.


프림로즈 힐에서 피크닉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여있는 언덕 위까지 올라와 매트를 깔고 자리 잡았다. 부피는 상당히 차지하면서 혼자 눕지도 못하고 두 명이 겨우 엉덩이만 붙이고 앉을 만큼 작은 돗자리. 그렇지만, 어디든 마음껏 앉아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이 매트가 무엇보다도 영국에선 소중했다.


가방에는 들어가지 않아 장바구니에 담아 온 이 커다란 아이를 주섬주섬 꺼내면서 어찌나 흐뭇하던지. 영국 여행의 비장의 무기 같은 느낌이랄까. 여유로운 여행을 선호한다면, 다른 걸 다 두고 와도 영국 올 땐 이 피크닉 매트는 필수다.


벤치에 앉아도 공원을 즐길 수는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 개인적인 공간을 확보해 보다 더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이 느껴진달까.


베이글


피크닉 매트를 챙기면서 상상했던 그림 두 가지가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독서하기 또는 빵 먹기. 이날은 동행이 있으니 화룡점정으로 베이글도 사왔다. 공원 오기 직전에 동행을 만났는데, 보자마자 그 앞에서 사왔다. 영국의 여느 음식처럼 싱거운 속재료 때문에 대단히 맛있는 건 아니었지만, 중요치 않다. 경치가 알아서 간을 맞추어 주는지 자연 속에선 뭘 먹어도 만족스러우니까. 미각보단 시각에 더 집중해서랄까?


프림로즈 힐 놀러온 사람들


언덕 공간이 꽤 넓어서 모두가 거리를 두고 앉았는데, 그들을 둘러보니 돗자리를 가져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와인잔 같은 의외의 물건이 그들의 손에 들려있었다. 외투로 입고 온 패딩이 그들의 돗자리 역할을 대신하고 있더라.


개인적으로 여행을 거듭하며 아무 바닥이나 앉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영국은 비가 자주 오는 특성 때문에 흙바닥에 앉기에는 아직 무리. 당장 버릴 옷이 아니라면 차마 축축한 땅엔 선뜻 앉지 못하겠다.


3월에 기적처럼 피크닉에 성공했지만, 4월에 돌아와보니 이때 날씨운이 꽤나 좋았단 걸 알 수 있었다. 3월에 런던에서 머무는 5일 중 하루 빼곤 날씨가 청명한 파란 하늘에 어여쁜 구름이 있는 게 윈도우 화면 같아 보일 정도로 좋았고, 그 덕에 공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공원에서 가장 바랐던 이상적인 모습엔 물론 피크닉 매트 이외에도 더 필요한 부수적인 것이 있지만, 이 모든 것의 출발은 '피크닉 매트', 돗자리. 이후에 하이드파크에서도 한차례 피크닉을 더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잔잔한 바람 소리 들으며 보내는 그 시간만큼 이 도심에서 즐거운 건 없었다. 런던 아이, 빅벤 등 유명 관광지는 한번으로 충분하지만, 공원들은 몇번이고 다시 가도 좋기에 런던 여행 기간이 꽤 길었던 나에겐 이보다 더 좋은 경험이 없었다.


런던에 살고 있는 지금도 날씨만 좋으면 챙기는 피크닉 매트. 이젠 어떤 나라를 가도 따뜻한 곳에 가면 챙기곤 하지만, 런던에선 더욱 애착이 가는 소중한 물건.


(여유를 사랑한다면 작은 귀찮음을 감수하고 도전해보세요:) 사실 이게 좋아지면 귀찮음도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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