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은 도시, 파리에 산다는 건
해외 살이가 길어지면 그곳이 파리든 뉴욕이든 일상이 되어버린다.
무덤덤하게.
지금 일 하는 샵에는, 일본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온 수습생 플로리스트들이 있다.
꽃일을 시작하기 전, 혹은 샵을 내기 전 한 두 달 꽃일을 도우며 샵의 운영을 엿보기도 하고 직접 참여하기도 하면서 일을 익혀 간다.
물론 이틀간의 휴무를 가지며 여느 직원과 같은 스케줄을 소화한다.
그리고 매번 쉬기 전날이 되면 묻는다.
파리에서 추천하는 곳이 있을까요? 하고.
그리면 나는 구글 지도를 꺼내 즐겨찾기 한 곳을 알려주곤 한다.
그 정보들 중 반 이상은 여느 여행책에서도 있을 법한 곳이지만 나머지는 내가 가보고 좋았던 곳. 혹은 친구들이 데려가 줘서 좋았던 곳들인데 생각해보니 업데이트를 한건 상당히 예전인 거 같다.
5년이나 살면 데이터가 꽤 쌓였을법한데, 파리가 워낙 작은 도시이기도 해서 새로운 곳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렵기도 했거니와 어느 순간부터 나는 파리 탐색을 뜸하게 하고 있는 탓이기도 했다.
때로는 파리로 관광을 오는 지인들의 데이터가 더 신선하여 안내를 받기도 하는 걸 보면 온전히 이 곳은 내 일상이 되었구나 싶다.
휴무날에는 운동을 하고 장을 봐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해 먹는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 편안한 시간을 보내거나 특별전이 있을 때면 전시를 보러 가기도 하고 늘 가던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맛집을 찾아다니고 핫하다는 곳을 골라 다니는 일은 간혹 친구들과의 기분 전환에서나 꺼내 드는 카드일 뿐 파리지엔에게 파리는 언제든, 원하면 그 자리에서 반겨주는 일상인 거다.
파리는 변한 게 없이, 늘 그 자리에 있는 거 같아
일본에 사는 지인이 기분 전환 겸 파리로 놀러 와 떠나기 전 날 밤 해 준 말이다.
몇 년 전 남편과 런던에 살 적에 파리로 잠시 여행을 왔고 이번에는 혼자 시간적 여유가 생겨 시댁에 아이들을 맡겨 두고 온 언니는 자유로이 파리를 산책했다.
관광을 할 이유가 없었으니 보고 싶은 전시들을 보며, 걸고 먹으며 온전히 누구의 엄마, 아내가 아닌 본인만을 위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수많은 수다를 쏟아내며 파리에 대한 감상을 공유했다.
우리가 살던 그 일본에서의 5년의 시간과 맘먹는 세월을 이 곳에서 보낸 나의 감상과 정확히 맞는 그 표현.
파리가, 그래서 다시 오게 만드는 도시구나 하고.
자주 와도, 가끔 와도 좋다.
계절마다 다른 색을 입는 옷들이지만 매 계절이 또다시 그 시간으로 데려가는 것 같은 곳이다.
파리의 건물과 거리 분위기, 그리고 매년 열리는 이벤트들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언니가 남편과 같던 곳들을 다시 돌아다니며 '바뀐 게 없네. 그때 그대로야'라고 해준 말이 딱 그러했다.
어느 영화에서도 그랬다.
파리는 늘 그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릴 거라고.
도시계획이 철저한 파리는 거리의 상권들도 시간이 지나도 그 모습을 지키기 위해 지역구에서 노력한다고 한다. 운영했던 샵이 다른 샵으로 바뀔 때도 가능하면 그 카테고리를 유지하도록, 그리고 그 주변 상권과 어울리도록 주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신경을 쓴다는 말이다.
그러니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뀔 일은 없으며, 간혹 바뀐다고 한들 그 건물 분위기와 주변 상권과 조화를 이루므로 세월이 흘러도 그 색을 띠고 있다.
건물을 다 부셔 새로 짓는 일은 파리 시내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으며 그보다 유지보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 작은 요소들이 모여 우리는 늘 그대로의 파리를 느낄 수 있다.
5년 전, 혹은 10년 전 우리가 느꼈던 그 감흥의 도시 그대로 말이다.
한두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주변 유럽국에 들렀다가 파리로 돌아오는 날이면, 파리는 확연히 파리만의 색을 띠고 있는걸 새삼스레 느낀다.
새로운 것들, 변화를 크게 주지 않으며 옛 정취 그대로를 고집한다.
카페, 테라스, 지하철, 주말 장터, 에펠탑 앞의 상점들,..
바뀌면 편해지고 더 세련될지 모르는 것들을 불편을 감수하며 이어간다.
융통성이 없어 보이는 그 고집스러운 모습들과 서비스는 때로는 혀를 내 두르기도 하지만 그게 파리다.
예전에도 파리스러웠다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파리스러움으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니까.
파리를 떠올리면 기다리는 것들은 늘 공통된다.
그리고 그대로 우리를 반긴다.
그래서 일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바뀌는 맛집과 관광 정보가 흘러나오는 것도 아닌 이 도시의 추천리스트를 매번 업데이트하지 않는 일.
예전에도 맛집이었던 그 집은 여전한 맛과 분위기로 반겨준다.
때론 여전히 더럽기도 한 지하철,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소매치기 사건들은 변함없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파리 구석구석을 발견하는 재미는 여전히 내게 많은 영감을 주는 일들 중 하나이자 걷고 먹고 보는 그 모든 것들은 내 안의 영감으로 자리 잡는다.
오늘 다 보지 못해도 괜찮다. 서둘러 탐색해 내지 않아도 괜찮다.
내일, 그리고 몇 년 뒤에도 파리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