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는 추억이 많으면 그것을 잊을 수도 있고 다시 그 추억이 살아날 때까지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아침에 잠에서 깰때 여기가 어디인지 스치는 수많은 기억들에 깜짝 놀랄때가 있다. 짧지만 강렬했던 여행은 나를 꿈꾸며 살게하지만 기억의 저편으로 물거품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기억력이 나빠서 낙천적인 편이다. 가끔 식당에서 나와 주차장을 못찾고 친했던 얼굴들도 잊을만큼 불편하지만 나쁜 기억도 쉽게 잊는 편이다. 모든 기억들을 다 안고 살면 머리가 터질 것 같지만 금방 잊어버린다는 건 더 슬프다.
다른 건 몰라도 여행은 잊고 싶지 않았다. 만질 수 있는 조각이 있으면 기억이 잘 날 것 같았다. 내가 집에 처음 들고왔던 기념품은 군산 바다에서 주운 돌이었다. 그 이후엔 반짝이는 게 좋아서 세계의 화폐를 모으곤 했었다. 아직도 창고에 앨범은 잘있지만 여행을 갈때마다 한페이지씩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는 가는 곳마다 마그네틱을 사와 현관문 안쪽에 붙여둔다. 비누, 차, 초콜릿, 동물 인형 등을 사다가 나중엔 필요한 일상용품을 사는 게 기념품이 되었다. 칫솔, 겨울 외투, 운동화, 텀블러 등 필요한 건 그때 그때 달라졌고 그게 무엇이든 내가 사는 건 제품이 아니라 그 순간이었다. 돌아와서는 여행 그림을 그려 가방으로 만들어 들고 다니자 매일이 여행같았다. 그렇게 단편적인 여행의 조각들을 내 일상에 퍼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