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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편 Jun 03. 2020

밀리언 딸러의 편지 W2

리암 니슨 등짝때리는 딸아빠들의  감성 메모

‘하루 종일 낯설더라도’ (햇살 아빠)


아내를 사랑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산부인과는 아직도 내게 낯선 곳이다. 남자보다 여자들이 대다수이고, 남성은 경험할 수 없는 출산을 준비하는 곳이고, 아내들이 배 아파 낳은 아기들을 돌보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남편인 나는 마치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그로 인한 어색함은 아내와 있는 병실에만 주로 머무르게끔 나를 압박하곤 한다. 그런데 이런 낯선 감정이 누그러지고 두근대는 가슴으로 발길을 재촉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아기를 데리러 신생아실에 갈 때이다. 하루에 세 번가량 수유 시간을 제외하곤 아이와 모자동실이 가능하다. 예쁜 아기의 모습을 한순간이라도 더 담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 허용될 때마다 우리 병실로 아이를 데려오곤 했는데 그 역할은 온전히 남편의 몫이다. 


몇 번 되지 않는 하루의 그 순간은 무척 소중하다. 신생아실의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기대감에 부푼다. 불투명한 통유리 너머로 아이를 안은 간호사의 모습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리고 곧 강보에 싸여 품에 안긴 아이를 안고 병실로 향한다. 불과 5분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나와 아이가 둘이서만 있는 이 순간이 왠지 모르게 우리만의 비밀같이 소중하다. 곧 소식을 기다리던 아내에게 아이를 건네주면 나는 잠시 내 품에 남아있는 온기와 아기 냄새를 느껴본다. 사랑스럽다. 참으로 사랑스럽다. 그리고 제 침대에 누워 눈을 깜빡이고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이 그저 예쁘다. 아기가 있는 방은 공기가 달라진다. 더 포근하고 부드러워진다.


아쉬움을 부르는 아기를 올려보내라는 전화가 온다. 생이별의 고통도 아니건만 괜히 아쉬움이 남는다. 두꺼운 유리 너머로 아이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이방인의 민망함이 발자국에 남는다. 아내와 둘만 남아 다시 부부로서의 느낌이 살아난다. 아기가 남기고 간 우유 냄새가 우리 대화 속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생후 2주차> (은이 아빠)


엄마 뱃속에서 잠이 부족했는지 세상에 나온 지 수 일이 지나도 아기는 한쪽 눈만 지긋이 뜨고 있다. 하지만 매일 창가에 비치는 햇살과 속삭이는 엄마의 소리에 본격적으로 세상 구경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일까? 드디어 양쪽 눈을 다 뜨기 시작했다. 눈을 뜬 것은 아기인데 마치 나의 눈이 열린 것 같다. 아기의 아빠에게도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구나. 새로운 생명 하나를 얻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하나 얻는 것과 같다. 본격적으로 눈 맞춤을 시작하니 아기가 더욱 더 사랑스러워진다. 


회사에서 퇴근하자 마자 산후조리원을 향한다. 아무리 힘들었던 날이라도 아내와 아기를 보러 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다행히 아빠를 알아보는지 내 손에 안겨도 울지 않는다. 태어났을 때는 피부가 불그레했는데 잘 먹고 잘 자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피부가 하얗고 뽀송뽀송 해진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기의 호흡과 기분에 동조된다. 아기가 숨을 짧게 쉬면 내 숨도 짧아지고, 아기가 숨을 길게 쉬면 아빠의 숨도 길어진다. 아기가 웃으면 나도 웃고, 아기가 울면 아빠도 운다. 우리집 일기예보관이 된 우리 아가.


우리 아기는 누구를 닮았을까? 눈, 코, 귀, 입을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영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포대기 사이로 나온 발가락이 보인다. 놓칠 새라 카메라를 꺼내서 찰칵 찰칵 소리내어 찍어본다. 발가락마저 저리 귀여운데 어느 곳을 찍는다고 밉게 나올까? 뜻하지 않게 건진 사진에 아빠는 혼자 함박 미소를 짓는다.  ‘우리 아기 앞으로 아빠가 멋진 사진 많이 찍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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