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라이프 10화. 나를 지켜줄 수도, 해칠 수도 있는
이틀밤만 지나면 독일에 온지 딱 100일째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기만 하지만 숨을 다시 고르려고 한다. 그간의 일상을 한차례 정리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지. 기록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으나 단 하나의 다짐으로 매듭을 짓겠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아무도 내게 가르쳐준 적 없지만 나는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습관은 제법 근사한 인생을 만들고, 나쁜 습관은 결국 인생을 갉아먹을 만큼 운명을 좌우할 힘이 있다고.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습관이란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을 뜻한다. 독일어로는 'Gewohnheit'라고 한다.
지난 세달 동안 좋은 습관을 많이 길들였다.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하기, 일어나면 이불 정리하기, 아침 챙겨 먹기, 건강한 식재료 장보기, 손수 요리하기, 바로바로 정리하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대청소하기, 매일 독일어 공부하기, 공원에서 햇살멍 즐기기, 텀블러와 유리빨대 사용하기, 내 몸에 필요한 영양소 섭취하기... 남들이 보기엔 참 별것 아닐지라도 나에겐 앞으로의 인생을 지켜줄 무기들이다.
고백하건대 부끄럽게도 나는 한국에서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삶을 영위했다. 매일 새벽 늦게 잠들었고 식사는 늘 밖에서 때우거나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다. 하루종일 끼니를 거르는 일도 허다했다. 나의 이불은 항상 널브러져 있었고 무언가를 포기 않고 꾸준히 배운지도 오래였다. 못난 습관으로 점철돼 있으니 사소한 것들에 쉽게 중심이 흐트러졌다.
몸에 배어있는 습관뿐만이 아니었다. 소리소문 없이 나를 좀먹었던 건 생각의 습관이다. 바꿀 수 없는 과거와 통제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집착은 이따금 올가미처럼 날 죄였다. 어떤 장면들은 저주마냥 뇌세포에 각인돼 자동재생됐다. 나는 내 안에서 자학을 반복했다. 지독하게도 오래 주기적으로. 상실한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되새김질과 스스로를 살려내기 위한 담금질을 오갔다.
그러한 생각들이 고스란히 겉으로 드러났을테니, 모 아니면 아싸리 도로 전락하는 행동 방식을 체득한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애석하게도 안팎으로 오랫동안 되풀이해 저절로 익혀졌으니 말이다. 독일에 와서도 완전하게 끊어내진 못했다. 순간순간 불안함에 잠식되고 도돌이표를 찍는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또다시 마주한 용기 없음과 작은 마음에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존재로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갖고 있던 좋은 습관들은 나를 지탱해줬다. 작은 일에도 큰 행복과 가치를 느끼는 것, 늘 어떤 형태로든 기록하는 것, 귀감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듣는 것, 무엇이 됐든 내게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 잘 해내려는 것, 그리고 모든 나쁜 것들에 대적할 만큼 높은 회복탄력성.
이 토대 위에서 100일이라는 시간은 내게 굳은살을 벗겨내고 새살을 돋아나게 할 기회를 선물해줬다. 감사하게도 부단히 노력하는 만큼 조금씩,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고 있다. '호시우행(虎視牛行)'이라는 사자성어처럼 호랑이의 눈빛을 하고 소의 걸음으로 끈기 있게 나아가야지.
어느덧 올해도 네달 밖에 남지 않았다. 가을이 성큼 찾아왔다. 9월에는 운동도 다시 시작해 몸과 마음의 근력을 키워야겠다. 독일에 온 이후로 너무 뒷전으로 미뤄뒀다. 좋은 습관은 결국 좋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모모야. 그럼 다음 챕터로 넘어가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