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아픔이 비행운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선명하고 긴 흔적도 결국 사라지잖아. 마침내 비행기는 원하는 곳에 도착할 뿐이야. 그곳이 어디든 네가 꿈꾸던 장소의 공항이라고 상상해봐. 꽤 근사하지 않아?
유는 언젠가 석원이 했던 말을 되뇌었다. 하늘 높이 가느다란 꼬리를 남기며 날아가는 비행기에 시선이 가닿았다. 저 사람들은 어디로 떠나는 걸까. 상념에 잠긴 사이 비행운은 희미해지고 있었다.
정말이네. 네 말이 맞네.
그날 구름모텔에서 우린 실컷 웃었다. 창문 틈새로 들어온 나방을 잡느라 식은땀을 흘렸고,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크게 틀고선 우스꽝스러운 블루스를 추었다.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끝내 하지 않았다.
찰칵.
유는 옅어진 비행운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석원에게 보냈다.
'내가 떠나도 괜찮아?'
삼십분 후 답장 두개가 연달아 왔다.
'하늘이 널 닮아서 참 맑고 높다.'
'... 붙잡아도 갈 거면서. 어디로?'
비행운은 공기가 건조할 때는 금세 사라지지만, 습도가 높을 때는 바람을 타고 넓게 퍼지거나 오래도록 남아있대. 이따금 네 마음의 온도가 낮고 습한 날이면 얼어붙은 상처는 더 쉽게 나타나겠지. 하지만 결국엔 사라질 거야.
석원이 내어준 삶을 곱씹을수록 명치가 저려왔다. 유는 터틀넥을 코끝까지 추켜올렸다. 무음으로 해놓은 휴대폰 화면에 부재중 전화 네건이 표시됐다. 최대 세번까지만 연락하는 석원의 철칙이 무너졌음을 알았다.
"여보세요."
"어디로 갈 건데?"
"내가 하늘이라면 넌 바다야. 한없이 가라앉는 나를 품을 수 있는 존재. 나보다 더 깊어서 가능한 거겠지."
"아니, 일단. 지금 어디야?"
이날 유는 깨달았다. 바다도 운다는 사실을. 석원은 고개를 숙여 유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고들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옷깃이 축축하게 젖었다.
"김석원, 너도 알고 있었잖아. 우리가 언젠가는 헤어질 거란 걸... 애써 외면했던 거야 우리 둘 다."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거야?"
"......"
"돌아올 거지?"
"하늘과 바다는 함께일 수 없어. 서로 바라보고 있지만 맞닿을 순 없는 것처럼."
"이대로 끝이라고?"
"응."
오지 않길 바랐던 오늘이 기어코 왔다. 석원은 바스러질 듯 유를 세게 껴안았다. 이미 헤어질 결심을 한 그녀의 몸은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유는 온 힘을 다해 흑목련 꽃잎을 떨구는 중이었다.
"아니야. 유가 어디에 있든 꼭 기억해. 네가 내리는 빗방울, 내리쬐는 햇빛, 새하얗고 먹물진 구름,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그 안에서 빛나는 달빛마저 전부 내가 품고 있을 거야."
"......"
아주 멀리서도 나는 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순간 너를 받아내고 있을 테니, 언제까지나 내가 너를 비칠 테니.
비행운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