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탈리 Jun 10. 2023

왜 휴직하냐 물으신다면

두 번째 휴직을 시작했다

“남 대리는 이제 쉬어서 좋겠네.”


첫번째 휴직을 앞둔 어느 날의 한 장면이다. 팀원들과 둘러앉은 티타임 자리에서 들린 상무님의 한 마디. 기억 속 나는 다급히, 그러나 애써 미소를 유지한 채 대답했다.


“하하, 저 쉬러 가는 것 아니에요.”


상대방의 멋쩍은 표정을 보고서야 아차 싶었다. 생략된 목적어가 ‘일’이라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괜히 뾰족하게 굴었다 싶어 눈 돌릴 곳을 찾았다.

 

거북한 마음이 들었던 건 분명했다. 쉰다는 단어 하나만으로 곧장 두 다리 쭉 펴고 누운 사람이 아른거리는 탓이다. 의도가 아니더라도 출산휴가자와 육아휴직자에게 휴양 이미지가 드리우는 건 억울했다. 가시밭길에 대한 예언이 차고 넘친다. 쉬고 노는 건 언감생심일 테다. 나는 한참이나 말대꾸에 대한 정당성을 곱씹었다. 그러던 중 물음표 하나가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정말 그럴까?

 

당시엔 출발선의 대기자일 뿐이라 소상한 미래를 알 수 없었다. 힘든 이야기가 내게도 적용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렇담 경계를 내려놓고 휴가와 휴직이라는 글자에 먼저 주목해 볼까 싶었다. 순간 볕 좋은 카페의 테라스에서 유모차를 곁에 두고 책을 펼친 내가 보였다.


'백일에는 기적이 온댔으니 필라테스를 등록해야지. 자격증을 따 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겠어.'


9 to 6 출퇴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특별한 성장과 변화의 기회가 올 것 같았다. 어쩌면 이것이 안식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수인계 파일을 정리하며 희망을 꾹꾹 숨겼다. 휴직 전 마지막 출근일, 노트북을 덮는데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타이머가 눌림과 동시에 육아란 무엇 하나 뜻대로 들은 대로 되지 않았다. 종일 안달복달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매일 밤 통잠을 자고도 세 시간 넘게 낮잠드는 아기 덕에 미드를 실컷 본다는 친구 이야기는 내게 공상과학영화와 다름없었다. (여전히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시계가 멈춘 듯했다. 달력은 통째로 삭제됐다. 그 기간 유행한 영화, 드라마, 음악을 지금도 잘 모른다. 제대로 못 자는 날들에 여유와 자기 계발이 웬 말인가. 상무님과의 예전 대화가 떠오른 건 예스맨이던 평소와의 간극 때문만이 아니다. 쉬러 가는 것 아니라는 잘 모르고 한 말이 이처럼 정확한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상대는 일말의 관심도 기억도 없겠지만, 그때 대꾸하길 참 잘했다.


출근이 무거운 남편 마음을 알았다. 제도에 감사하며 내 손으로 아기를 돌보겠다고 선택한 것도 나였다. 워킹맘의 삶이 새로운 전쟁이 될 것 역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일이라도 당장 출근하고 싶었다. 회사 메신저로 주고받던 시시한 대화가 떠올라 목이 탔다.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그곳에 있지 않은가. 이 집 안에 오롯한 내 시간은 없었다.




오랜 공백으로 움츠러든 복직자는 기다려 준 회사가 고마웠다. 도심으로 향하는 인파에 섞이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그것이 벅찬 숨으로 바뀌는 데에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열심히 일했다. 워킹맘이라는 딱지로 손가락질받거나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가족의 희생을 발판으로 하는 야근이란 힘겹게 이어진다한들 머지않아 부러지고 마는 것.


어린아이는 본디 자주 아프다. 나 하나 애쓴다 하여 어찌할 수 없는 벽과 구멍을 시시때때로 마주했다. 붉게 푸르게 변하던 사회인으로서의 나는 점점 더 가라앉았다. 노력과 성과가 반드시 상응하는 평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였다. 힘쓸 때와 뺄 때를 알게 되니 되레 편안해졌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워킹맘의 진짜 위기라는 여덟 살 해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돌봄을 분담하는 가족들의 지친 기색이 엉겨 붙었다. 부부가 달라붙어 하루 열 시간을 나가 있지만 돈은 모이지 않고 커리어도 하향평준화되는 듯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옥 이전 때문에 내 출퇴근 시간은 왕복 세 시간으로 길어졌다. 걸어도 걸어도 길이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궁지에 몰리는 듯했다. 나와 가족을 위한 쉼이 필요했다.


나는 첫번째 휴직에서 육아휴직 가능 일수를 남기지 않고 복직했었다. 매일 출근을 갈망한 앞선 기록과 어울리지 않지만 그때는 한 치 앞을 몰라 '쓸 수 있을 때 써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더 어릴 때 엄마 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휴직 잔여기간이 단 하루라도 있어야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사용할 수 있다는 개정법이 나왔을 때 얼이 빠진 '제외자'가 바로 나다. (실제로 쓸 순 없는 상황이었지만 스스로 선택하여 안 쓰는 것과 대상자가 아니라 못 쓰는 것은 다른 문제니깐.) 며칠의 안도마저 박박 긁어 써 버린 과거의 나는 참 안일했구나. 질병과 퇴사가 아닌 이상 나에게 잠시라도 이 일을 멈출 방법은 없어 보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10년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입사동기가 가득해 좁게 까르륵대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 나는 모르는 후배들 사이에 어색하게 선다. 어느 날, 리프레시 휴직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근속 10년 이상 직원만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 선정 인원이 적어 바늘구멍과 같다며 관심 갖기 어려웠던 그것.


상상을 시작했다. 그 속에서 아이 초등학교 입학은 막상 큰 문제가 아니다. 지난 휴직 때 없었던 시간이 비로소 생길지 모른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이대로라면 평생 시간이 없다는 말만 하고 살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를 미래를 위해 현재 경험을 유예하고 싶지 않다. 진짜 안식년이 필요하다. 잠깐, 이것이야말로 공고에 나온 휴직 지원 동기와 정확히 맞지 않은가?




“팀장님, 시간 되시면 잠시만 면담 좀."


직책자들은 직원의 면담 요청이 가장 무섭다 한다. 퇴사를 닮은 말이라도 들을라 긴장하심을 알기에 옮긴 자리에서 서둘러 말을 꺼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민망함과 죄송함을 포함한 여러 감정이 섞였다.


저 리프레시 휴직을 지원하려 해요.


조심스레 서류를 내밀었다. 지원서는 한 문장 한 문장 고심하여 총 네 장을 썼다. (쪽수가 늘어난 데는 글자 크기 공이 크다.) 역량적 갈증과 지친 에너지를 새로운 자극으로 충전하여 회사에 기여하겠다며 힘을 잔뜩 주었다. 글 속에서 부릅뜬 제 눈 보이시나요, 팀장님.


휴직 활용 계획에 적힌 여러 포인트에서 감탄 너스레를 떠는 팀장님 반응에 비로소 긴장이 풀린다. 올해 만난 팀장님은 수시로 덤덤한 위트를 선보이는 인간적 매력의 소유자.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는 믿음이 있다. 이런 분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은 행운이다.


팀장님은 선정인원이 극소수일 뿐 아니라 강력한 지원동기를 가진 분들이 많아 뽑히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을 덧붙이셨다. 상무님과의 면담에서도 지원서만 열심히 쓴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애매한 핀잔을 들었다. 사유가 제도 본연의 목적에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마쳤다. 이제 인사위원회 결과를 기다리는 일 뿐. 숨소리도 예사로 들리지 않는 연말평가 시즌이다. 나는 이 시기에 감히 휴직을 지원해 제 살을 깎는 용감한 멍청이 중 하나다.




며칠 뒤 뜬 발령문서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1월 1일 자로 적용. 될 것을 확신할 수 없기에 미리 계획할 수 없었던 낯선 휴직. 일주일 뒤 바로 시작되는 두 번째 휴직.


다시 인수인계 파일을 쓰며 히죽거리기는 하지만, 겪어 봤기에 마냥 낭만적이거나 생산적이지 않다는 걸 안다. 1년이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도 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이라 재미있다. 기차를 간신히 세웠고 비상식량은 딱 1년치다. 감독이자 배우가 되어 이야기를 만들어야지. 심장이 뛴다.


나에게 육아휴직이 아닌, 진짜 휴직이 생겼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