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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리 Sep 13. 2023

육아를 쓰고 싶지 않았다

<애 하나 낳고 오만 생각>을 맺으며

두 번째 휴직이 시작되니 마음이 조급했다. 미리 계획하지 못했던 것이라 더 그랬다. 12개월의 보석 같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후회하지 않을까.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늘 '시간에 쫓기지 않은 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고민할 것 없이 우선은 이와 관련된 모임이나 강좌부터 찾기로 했다.


조건이 명확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오전이나 오후 초반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야 했다. 집에서 너무 먼 거리도 부담스러웠다. 마침 지하철 몇 정거장 거리에서 2주 후부터 시작한다는 '엄마들의 글쓰기' 모임을 찾았다. 명확한 수강생 정의가 있었기에 속이 곱절로 편안해졌다. 엄마들 대상의 수업은 다른 수업보다 출석 자체가 산만할 것이 분명했다. 아이가 아파서, 오늘따라 어린이집에 안 들어가겠다고 울어서, 간밤에 열 보초를 서느라 글을 못 써서. 독립적인 한 명의 성인으로서는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며 혀를 내두를 일들도, 어떤 상황인지 서로 잘 알기에 용인되고 양해될 것이다. 질책을 받을 일도, 죄책감에 아예 포기해 버릴 가능성도 조금은 낮아진다.


처음으로 내가 쓰고 싶은 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았다. 개강 전 기획안을 써내야 해서 그랬다. (역시 사람에게는 숙제와 마감이 있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독자가 듣고 싶을 이야기의 접점을 상상했다. 대강의 목차를 구성한 후 첫 수업에 들어갔다. 각자의 계획을 발표하는 시간.


저는 육아 에세이를 쓰고 싶지 않아요.
'육아'라는 단어를 쓰자마자 진부해지는 것 같아서요.

말을 하면서도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역시나 강의를 이끌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세상에 육아 에세이가 넘쳐도 모두 다른 말을 하고 있어요. 동일한 소재가 많다고 피하면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나만의 것이에요. 그러니 억지로 소재를 피하려고 하지 마시라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본인이 하고 싶고 쓰고 싶은 이야기부터 솔직하게 시작하시길 바라요."


목차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나를 '엄마'로 지칭하고 싶지 않아 에둘러 표현하고, 그 정체성만큼은 빼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현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임에도 말이다. 그러나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해도 결국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아이를 통해 새로 알게 된 세상' 에 관한 것이었다. 흔하니까, 육아라는 말만 들어가도 지루해 등돌릴 가상의 독자까지 붙잡겠다는 나의 거만하며 기만적인 계획은 단번에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 묵혀둔 단상의 주머니를 털어내고, 정제되지 않은 채 뭉뚱그려진 실타래를 풀어내기 위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며 몰랐던 세계의 문이 연거푸 열리는 과정, '내가 이거 꼭 쓰고 만다.' 했던 것, 지나온 시간과 잊었던 마음들. 모든 것이 폰 메모장과 SNS, 다이어리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다. 서랍 한 편에서 불쑥, 출근길 지하철 역 의자에서 번뜩, 그때의 조각들이 내 주변을 에웠다. 주워 모아 가지런히 이름표를 붙이고 한 뭉치로 묶어내고 싶었다. 나쁜 의미만은 아닌 일종의 '독기'를 쭉 빼내면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워 넣고 인생의 다음 스테이지로 시원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길게는 8년 전에 가까운 일을 과거형으로 써 내려가다 보니 가끔은 흥이 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순서상 이게 맞다 여기며, 그 시간을 다른 눈으로 관찰하며 끌어안기로 했다. 덕분에 잊고 있다 떠오른 생각들이 지금 다시 돌아와 은은한 격려와 평화가 되기도 했다.


아이는 정말이지 너무나 빨리 큰다. 언제 크나 했더니 어느덧 혼자 학교에 간다. 젊다못해 어렸던 나와 남편이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불과 몇 년 전이라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 서 있는 우리를 종종 발견한다. 그런 점에서, 영유아기를 함께 한 아등바등의 기록만큼은 앞으로의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글자로 남아주리라는 기대가 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꽤 오래 표정을 잃는 시간이 온다는데, 그 시간마저 온전히 감내할 수 있도록. 맘 놓고 묵혀두어도 될 땅 속의 시간과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또, 나와 비슷한 이들에게 이런 나와 이런 육아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해답은 여전히 잘 모른다. 육아가 쉬운 사람도, 어려운 사람도 있다. 아이 둘셋이 있는 지인들을 봐도 돌봄 난이도가 각자 다르다. 육아라는 큰 공통점 속에서도 각자의 경험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처음에 '이게 맞나', '왜 나만 어렵나' 싶은 마음이 드는 과거의 나 같은 이들에게 '이게 맞다' 또는 '맞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사실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는 선배들의 말이 하등 쓸모없었던 지난 시절의 나만 떠올려도, 말보다 직접 안아주고 손을 보태고 싶지만 어쩌겠는가. 조금은 비슷한 경험의 기록이 누구에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공감과 힘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2개월 여의 '엄마들의 글쓰기' 모임은 다행히 결석 없이 수료했다. 제법 손을 덜 타는 나이의 아이를 둔 휴직자 신분이었던 덕분이다. 끝나고도 그때의 시작 덕분에 글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처음 썼던 목차와는 전혀 다른 글들을 때마다 내키는 대로 썼다. 가장 쓰고 싶은 글을 먼저 쓰라는 당시의 조언 덕분이다. 글 쓰는 여러 동료들을 만나가며 작은 마무리까지 지을 수 있음에 벅차고 기쁘다.


막상 순수한 과거만이 아니고 수차례 현재와 맞닿은 이야기가 되었지만, 말했듯이 이쯤에서 한번 엮어두고 새로이 현재의 이야기를 쓰러 가려한다. 오해로 가득했던 나의 육아가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이, 가족에게, 어느 이름 모를 양육자들에게 천천히 스며드는 편안이 되었으면 한다. 이제 나는 발 밑을 꾹꾹 다지고 몸을 돌려 앞으로 갈 것이다. 다시 또 신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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