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라도 레벨업 했을지 모른다는 착각
인간이라면 식욕 정도는 조절할 수 있다 믿었다. 나를 옭아매는, 바로 내 일이 되기 전까지 말이다. 임신 기간 느꼈던 배고픔이란 전에 없던 종류의 것이었다. 구역질을 참아보려 신맛 나는 사탕이나 담백한 크래커를 닥치는 대로 입에 무는 시기를 지나고 나니 먹고도 먹지 않은 양 허기가 지는 때가 찾아왔다. 참아볼라치면 머리가 핑 돌며 쓰러질 것 같기를 수차례. 결국 나는 근무시간 전 구내식당 조식 코너에 출근도장을 찍는 사람이 되었다. 이토록 공복감을 참기 어려운 스스로가 낯설었다. 의지나 인내력의 차이로 여겨 쉽게 타인을 판단했던 때가 떠올랐다. 오만했다.
마트 계산대 옆 바닥에 누워 발버둥 치는 네댓 살 아이를 본 적이 있다. 부모는 한 발 물러나 포기인지 경고인지 뜻 모를 시선만 던졌다. 순간 지나친 방관이나 단호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라면 당장 아이를 들어 올려 상황을 정리할 텐데. 그런데 실은 말이다. 만약 그 부모가 실제로 내가 생각한 행동을 단박에 했다면 나는 그들을 지나치게 무른 부모라 느꼈을지도 모른다. 상황을 알 필요도 없이 평가하기 참 쉬운 것이 제삼자의 속 편한 특권 아니던가. 당나귀를 타고 가도 업고 가도 반드시 한소리 듣고야 마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솝 우화를 떠올린다.
어린이의 고집 세계를 알아버린 이제는 확실히 다르다. 공공장소에서 육아 소동을 비슷하게 맞닥뜨릴 때면, 분명 그 가족들만이 아는 역사와 사정이 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짐짓 태연해 보이는 부모의 속이 사실 새까맣게 타고 있으리라는 것도.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얼른 곁을 피해 주는 것이다. 마음으로 혀를 쯧쯧 내차기 전에, 처음 보는 그네들이 이 돌발적인 훈육 전쟁에서 아름다운 결말을 맺길 응원할 뿐이다.
친구가 한 말도 떠올린다. 미혼일 때는 애 키우던 선배들이 서둘러 퇴근하는 것이 일에 책임감 없어 보여서 그렇게 싫었다고. 지금의 생각이 180도 다르단 건 덧붙이지 않아도 안다. 남편이든 아내든 육아 파트너의 신속한 퇴근이 가정의 평화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상상 이상이기에. 나의 남편은 비교적 20대가 많은 현재 회사의 동료들이 아마 자기를 그렇게 생각할 거라 웃으며 말한다. 나는 일찍 퇴근하는 선배들을 싫어한 적은 없지만 (일이 없는데 늦게까지 앉아있던 선배들이 더 싫었다.) 시설이 별로 좋지 않은 회사 휴양시설을 성심껏 신청한다거나 자리에 자녀들의 사진을 붙여두실 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정도를 생각했던 것 같다. 역시 이제는 모든 것들이 이해된다. 선배들의 입장에 선다는 것. 유치하게도 '너희도 내가 되어봐라.' 생각하는 것 외엔 도리가 없는 것. 이렇게 하릴없이 꼰대가 되었다.
이렇다 보니 나는 이제 '그럴 수도 있지'를 바탕으로 하는 이해의 기술을 반의 반 정도는 터득했다 싶다. 무엇이 되었든 그 너머의 사정을 조금은 짐작하고 너그러워져 보려 애쓴다. 겪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 자꾸만 생겨나니 어쩌겠는가.
'그럴 수도 있지' 기술은 육아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수만 가지 경험 중 마침 육아를 통해 관련된 일부를 느꼈을 뿐이다. 그러니 응당 출산이나 육아를 경험해 봐야 한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모른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는 않길 바란다. 게다가 경험이 이해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세상에는 겪지 못하는 일이 훨씬 더 많으니 말이다. 사람은 책이나 영화를 통해 또는 타인의 눈을 보며, 보고 겪지 않아도 헤아리는 법, 말과 말 사이 여백을 읽는 법을 시나브로 배워나간다. 심지어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타인을 100%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저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정도로 생각하려 한다.
작은 그릇이 쉽게 커지는 것도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지' 기술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력만으로도 마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나의 바닥을 보는 일, 내가 얼마나 별로인 사람인지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과정이라 했다. 변함없이 동감하지만 어차피 바닥을 찍은 이상 이것 말고도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는지 곱씹어 보고 싶다.
우선, 전에 의식하지 못했던 무례와 예의를 구별하여 알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모르는 이의 '양말 신겨라' 와 '벗겨라', '쌀뻥은 영양가가 없는데 왜 애한테 그런 것을 먹이냐.' 같은 말은 결코 도움이나 관심이 아니라는 것. 문 잡아주기와 기다려주기와 같은 사소한 동작이 특히 유모차에게는 친절함 이상의 절대적 필요인 것. 유모차나 휠체어를 앞질러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내게도 이전에는 그것이 잘 안 보였을지 모름을 부끄러워 하게 된 것. 비어있거나 회사에 지각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있거나 무거운 짐을 질 때가 아닌 이상 지하철 역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겠다고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 "이 팀은 나 대리같이 어린 애 키우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으면 곤란해." 또는 "여직원들이 결혼하면 그다음에 언제 임신했다는 말을 할까 싶어 무서워. 잘하던 직원들도 결혼하고 애 낳고 오면 살짝 이상해지더라구." 따위의 말을 듣고도 화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 것.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듣고만 있지 않겠다는 것.
아이의 세계에 딱 붙어 지내는 동안, 가르치는 것 이상을 배우고 있다는 점도 들 수 있다. 장르는 그때그때 달라져 예측이 불가하다. 아이들은 꾸밈없는 말과 반짝이는 생각으로 준비없이 머리를 땡 치고 마음을 땡땡 울리고 간다. 어디로 튈지 모를 질문과 현명한 답변들 속에서 같이 살아가려면 반드시 더 나은 어른으로서의 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살 세상이 꼭 더 좋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졌다.
그러니 확대해석이나 근거불충분 긍정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엄마가 된 후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고 믿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다. 0.1%라도 레벨업했을지 모른다는 착각으로 오늘도 마음에 슬쩍 힘을 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