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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호흡 : 어머니와 유아 사이의 권력관계

투사적 동일시 

사람은 일평생 자신의 존재기원을 품고 산다.

존재기원의 시점에 있었던 일을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한다. 

누구나 유아 초기의 정서를 바탕으로 현실을 살아간다. 

자신을 아는 지혜는 바로 이러한 관계를 자각하는 중에 나온다. 

현실에 처한 절망을 타개하는 방법이 바로 유아 초기 어머니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유아 초기에 발달하지 못한 채 상처로 남거나 존재 구멍으로 남긴 결핍이 생기거나 하면, 그런 흔적을 가지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핍과 상처, 증상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일평생 동안 몸부림치게 된다. 


아기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첫 1년 동안 어머니와 유아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일종의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어머니가 아기를 보는 관점이 어떠냐에 따라 권력관계가 달라진다.

어머니가 아기를 보면서,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엽우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러한 존재라 할지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기의 존재에 대한 존중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권력관계가 경직되기도 하고 유연해지기도 한다.

어머니와 아기는 존재론적 위계질서가 엄연히 있어 수직적 관계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수직저 관계라고 해서 어머니가 아기를 함부로 대하거나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 

아기의 존재에 대한 존중이 어떠하냐가 중요하다. 

어머니가 아기를 볼 때, 


   첫째, 마치 거룩한 성전을 섬기듯이 다루어야 한다.

   둘째, 아기는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태어났으며, 평생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다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아기를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 줘야 한다.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권력관계

어머니와 아기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투사적 동일시가 작동한다. 

아기는 커다란 리비도(삶의 에너지)를 가지고 나오는데, 이 리비도에는 사랑과 공격성이 뒤섞여 있다. 

아기가 가지고 있는 공격성이 9라면, 사랑은 1이다. 

아기 때의 공격성은 일단 <나쁨>이고, 사랑은 <좋음>이라고 표현하면 사태의 복잡함을 면할 수 있다. 


이것만 보면 성악설이 맞을 수 있다.

그렇지만 성악설이 성선설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유아의 어머니에 대한 권력행사 

공격성(나쁨)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사랑(좋음)을 보호하기 위해 일단 분열을 시켜 놓는다. 

그래서 아기가 어머니를 자신의 상태로 인식한다. 

나쁜 어머니가 있고 좋은 어머니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나쁨>의 조각을 어머니에게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좋음>을 보호한다. 

아기는 한편으로는 나쁨을 끊임없이 어머니에게 투사하고, 어머니의 좋음의 부분을 내사(안으로 들임)한다. 

이 과정에서 투사적 동일시(투사를 한 후 대상을 동일시함, 정서적 호흡)가 일어난다.

이때 아기는 자신 안에 있는 <나쁨>을 어머니에게 투사하지만, 그 결과 아기는 어머니를 통제하고 다스리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어머니와 아기 사이에 최초의 권력관계가 성립한다. 

그런데 이러한 아기의 공격성과 권력가 생애 초기를 지배하지만,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미해결점들을 남기게 되면, 그 미해결점은 일평생 동안 작동하는 투사적 동일시의 형태로 작동된다. 

(이상 Erol GÖKA, Fatih Volkan YÜKSEL, F. Sevinç GÖRAL, Türk Psikiyatri Dergisi 2006; 17(1),Turkish Journal of Psychiatry  에서 참조함)


어머니의 유아에 대한 권력행사

어머니가 아기가 지닌 잠재력, 존재에 대한 존중을 하지 못한 결과, 아기는 한갓 3kg에 불과한 고깃덩어리를 가진 존재로만 본다면, 존재론적 이해가 잘못된 결과, 어머니와 유아 관계가 수직적으로 경직된다.

이러한 경직은 아기로 하여금 어머니의 권력에 짓눌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아기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며, 어머니가 돌보는 만큼 자라고, 가르치는 만큼 배우고, 경험하는 만큼 알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경험론자의 이론을 신봉하는 것이다. 


어떤 개인인 인간이 태어날 때에는 정신적인 어떠한 기제도 미리 갖추지 않고 마음이 '빈' 백지와도 같은 상태로 태어나며 출생 이후에 외부 세상의 감각적인 지각활동과 경험에 의해 서서히 마음이 형성되어 전체적인 지적 능력이 형성된다는 개념이다.(위키 백과)


이때 어머니는 유아에 대해 전능자 위치에 서게 되며, 아기는 어머니에 의해 압도된다. 


그 외에도 어머니의 부재, 따뜻한 품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경우, 상처를 주거나 결핍을 느끼게 하는 등 아기가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은 모두 아이로 하여금 어머니의 권력에 압도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수직적 관계는 자녀로 하여금 일평생 투사적 동일시를 작동하게 만들 뿐 아니라, 조직의 권력구조에서 갑의 위치와 을의 위치가 규정된다. 

이런 심리적 구조 속에서 자란 자녀는 성인이 되어도 힘 있는 자에게 갑질당하고, 힘이 있을 때 갑질하는 순환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관계는 향후 여러 형태의 전이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정신기제로서 <투사적 동일시>를 일평생 일으키며 살아가게 만든다.

이러한 투사적 동일시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정신기제이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임상적 적용


내담자 A는 상담자에게 매우 의존적이면서 고분고분하다. 

상담자는 A는 공격성이 너무 부족하여 억압된 '공격성'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 A는 상담실에 도착했지만 상담실 문은 잠겨 있었고 상담자에게 전화를 하니 10분 이내에 도착할 예정이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다.

A는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A는 핸드폰을 열어서 시간을 보고 있었다. 

10분이 지나도 상담자가 나타나질 않는 것이었다. 

11분이 지나자 자신 안에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15분이 되어서야 상담자는 나타났다.

게다가 상담자는 A에게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상담이 시작되었지만 처음에는 태연한 척 노력했지만, 평소 화를 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상담자는 A의 얼굴에 화가 났다는 표식을 벌써부터 읽고 있었다.

상담자가 물었다.


  "제가 늦어서 화가 많이 나셨나 봐요."


그 순간, A는 그동안 참아 왔던 분노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분노는 그날 상담자의 지각뿐 아니라, 그동안 하지 못했던, 사소하게 상담자에게 서운했던 말들을 다 쏟아내게 되었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났다. 

A는 유아기 때 자신의 권력자였던 어머니의 위치에서 어머니가 자신을 통제하던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고 A는 상담자를 자신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유아의 위치로 몰아넣었다. 


상담자가 보기에 A는 매우 통쾌해했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당하는 입장이었지만, 자신이 목표하는 지점에 A가 도달했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동안 억압되었던 공격성이 올라왔고,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하여 초기 어머니와의 관계를 재현했다.  

상담자는 미안하는 말만 하였을 뿐,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의 상담은 끝났다. 


A가 상담실을 나가는 발걸음은 가벼워졌고, 상담자의 마음은 매우 무거워졌다. 

A가 발현한 투사적 동일시가 효과를 제대로 내기 위해 상담자가 자기 몫을 감당해야 할 차례다.

상담자의 마음이 A에 의해 체한 듯이 답답하고, 그날 저녁에 밥을 먹은 후 설사를 쏟아냈다. 

A가 일으킨 투사적 동일시가 상담자의 내면에서도 안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상담자는 A가 넣어 준 상태를 소화해 내고 내면화해야만 했다.

그래서 상담자는 답답함을 느꼈고 설사를 쏟아낸 것이다. 

상담자는 그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야 정상적인 상황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 A가 다시 상담을 왔을 때,  예전의 A가 더 이상 아니었다. 

매우 활기차 있었고, 얼굴에는 에너지가 충만해 보였고, 늘 우울했던 얼굴에 웃음이 가득 차 있었다. 

상담자는 지난 세션 상담에 대해 A에게 해석해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A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A는 유아 초기 어머니와 유아인 자신과의 권력관계가 그동안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생각하면서 여러 상황들을 진술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스토리 텔링은 A를 더욱 자유롭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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