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적 거인과 유리 몸의 불균형을 가진 유치원생 아들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몸의 돌봄’이라는 사랑의 기술


일곱 살 아이가 있다. 세상에 막 발을 디딘 이 아이는 또래를 압도하는 어휘력과 언어 감각을 지녔다. 사자성어와 속담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어른들을 놀라게 하고, 여섯 살에는 이미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지능을 검증받았다. 그의 정신은 빠르게, 그리고 너무나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마치 단단한 기초 없이 위로만 솟아오르는 건물처럼 불안정한 속도다.

하지만 그의 몸은 위태롭다. 체중은 또래의 10%도 되지 않고, 키는 30%대를 겨우 유지한다. 잠을 거부하고, 식사는 고통이며, 작은 접촉에도 피부가 예민하게 반응한다. 한의사는 이 아이가 체력이 바닥나면 ADHD를 거쳐 공황장애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단순한 식습관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내면에 있는 지적인 거인과 유리 같은 몸 사이의 극심한 불균형, 즉 정신과 신체의 분리 위기를 알리는 붉은 신호다.


외할머니의 지적 애정, 그리고 엄마가 놓친 몸 애착


이 불균형은 아이의 외부 환경, 특히 돌봄의 질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이의 지적 성장은 외할머니의 영향 아래에서 강화되었다. 외할머니는 칭찬에 후했고, 아이의 언어 능력과 지적 우월성을 아낌없이 인정해 주었다. 외할머니가 여러 편의 소설을 출간한 문학가이자 지식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영향은 더욱 강력했을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주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놓쳤는가에 있다. 아이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는 엄마와의 애착의 질을 반영한다. 밥을 거부하는 행동은 단순히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무의식적 표현일 수 있다.

조부모의 돌봄은 정신적 보상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칭찬과 인정은 풍부하지만, 규율과 통제가 필요한 신체 돌봄은 종종 놓친다. 아이는 몸의 불안정함을 보상받기 위해 지적 능력에 더욱 몰두한다. 그 결과, 정신은 앞서 나가지만 몸은 텅 빈 채로 남는다. 이는 매우 위험한 발달 경로다.

Whisk_ebd98bcf76d4ead927a463ae5f5d14c6dr.jpeg

몸에서 도피하는 정신, 이인증의 그림자


몸과 정신의 불균형이 극단에 달하면, 이인증이라는 심리적 위기가 찾아온다. 한의사는 아이의 상태를 보고 예측하기를 공황장애를 언급하였지만, 상담자로서 나의 판단은 몸과 정신의 분리에서 오는 이인증의 소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이나 스트레스 앞에 있는 정신이 위기를 당하면, 몸이 잡아줘야 한다. 그런데 이 아이의 정신은 이미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지적 영역에 머무르며, 약한 몸과의 연결을 끊으려 한다.

새벽까지 놀거나 만화책 줄글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행동은 현실과의 연결을 끊고 특정 대상에 도피하려는 성향이다. 이는 게임 중독과 유사한 메커니즘이다. 게임중독이란, 정신은 화면 속으로 들어가고, 몸은 방치되는 것을 말한다. 방치된 몸은 더 이상 생리작용을 하지 않게 되면서, 2~3일 동안 게임에 몰입하여도 잠을 안 자도 되고, 밥도 안 먹어도 되며, 화장실도 안 가도 되는 상태, 즉 한갓 고깃덩어리에 불과하게 된다.

사자성어와 속담으로 어른들을 압도하는 언어는 약한 몸을 대신해 자신을 방어하는 지적인 무기다. 몸이 나약할수록 정신력과 언어 능력에 의존하게 되고, 이 의존은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아이는 현실감을 상실하고, 몸과 정신이 분리된 채 살아가게 된다. 공황장애라는 진단은 이인증의 초기 징후가 신체화된 형태로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Whisk_fe707303ff385c5b8764f6fc751af8bbdr.jpeg

생생함을 회복하는 길, 공부 금지와 몸의 돌봄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단 하나, 엄마의 주체적인 개입과 몸의 돌봄이다.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돌봄은 정신이 아닌 몸에서 시작된다.


첫째, 지적 활동의 중단과 에너지 회수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 놀이다. 초등학교 시기에는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놔두는 것이 중요하다. 지적 자극을 최소화하고, 억압되었던 생생한 감각을 끌어내야 한다.


둘째, 몸과 정신의 통합이다. 엄마가 주도하여 식습관을 개선하고, 유치원 하원을 책임지며 조부모와의 정서적·물리적 의존도를 낮춘 것은 긍정적인 시작이다. 엄마와 아이의 리듬을 맞추는 것이 애착 관계를 재구축하는 첫걸음이다.


셋째, 온몸을 사용하는 놀이가 필요하다. 태권도, 축구, 악기, 미술 등 몸과 감각을 동시에 사용하는 활동은 몸과 정신의 결합을 촉진한다. 이 과정은 아이가 ‘몸이 살아있다’는 생생함을 느끼게 하고, 정신이 도피하려던 몸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이 아이뿐 아니라, AI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아이들은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국영수가 아니라, 음미체 중심의 몸 놀이가 필수적이다.


어머니의 책임, 불안과 현실의 분리


어머니는 아이의 약한 모습에서 남편의 과거 고통을 투사하며, ‘내가 지켜줘야 한다’는 과도한 불안을 느낀다. 그러나 이 아이는 남편의 과거가 아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손재주와 차분함이라는 몸의 긍정적 감각을 지닌 사람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불안 대신 아버지의 몸의 힘을 아이에게 연결해 주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신체적 발달이다. 외할머니의 지적 애정보다 엄마의 품과 돌봄이 아이의 몸을 단단하게 만든다. 지적 우월감이 아닌 건강한 자존감이 아이를 지탱한다. 아이가 몸으로 생생함을 회복할 때, 그의 뛰어난 지능은 땅에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처럼 성장할 수 있다. 위태로운 지적 거인이 아닌, 균형 잡힌 주체로 자라날 수 있다.



마무리: 몸을 통해 다시 시작되는 생명의 이야기


아이의 지적인 속도는 이미 먼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지금-여기에서 숨을 고르며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더욱 복잡해지고, 더욱 빠르게 변화하며, 점점 더 정신적 능력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정신의 능력은 몸의 생생함을 통해서만 안전하게 확장된다. 몸이 존재의 집이며, 모든 지능은 그 집 위에서만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지금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다.

정신이 몸을 버리고 추상의 세계로 도피하느냐, 아니면 몸이 정신을 다시 품어 생명을 되찾느냐의 길목에서.


이 지점에서 어머니의 돌봄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가장 실제적이며 결정적인 사랑의 기술이다.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고, 리듬을 맞추고, 함께 움직이고, 작은 접촉 안에서 아이의 긴장된 피부를 진정시키는 그 돌봄은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사랑의 행위, 사랑의 몸짓이다.


그리고 바로 이 신체적 사랑이 아이의 존재를 다시 통합한다. 몸이 안정되면 정신은 다시 ‘돌아올 자리’를 발견한다. 몸이 안전해지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현실과 연결된다. 몸이 생생함을 회복할 때, 아이는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몸의 돌봄은 단순한 양육 방식이 아니라, 아이의 생명을 되살리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본질적인 사랑의 기술이라는 것을.


이 아이는 이제 다시 시작할 것이다. 몸으로 살아 있는 생생함을 회복하며, 그 생생함 위에서 자신만의 빛을 잃지 않은 채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지능이 아니라 몸의 힘이 그 아이를 끝까지 지켜낼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I 시대 자녀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