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랑이 Apr 03. 2020

나의 맹세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나의 맹세




  대한민국 경찰관들의 요람, 중앙경찰학교에 가면 이런 문구가 있다.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

  중앙경찰학교의 슬로건과 같은 이 문구는, 이전에는 운동장에서 바라본 건물에 있었는데 최근에는 입구에 LED로 멋지게 새겨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중앙경찰학교에는 이보다 중요한 문구가 있다. 정문을 지나면 보이는 어느 비(碑)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나는 맡은 바 일에 억울한 사람이 한 명도 없도록 하여 정말 존경받는 경찰이 된다.]

  이를 아는 사람은 경찰관들 중에도 그리 많지 않다. 이 비의 이름은 ‘나의 맹세’다.   



    





  한여름 이었지만 조용한 월요일 밤이었다. 자정을 넘기기 전, 정적을 깨고 신고가 접수됐다.


  [술집에서 손님과 업주 사이의 시비가 있다는 신고입니다. 관할 순찰차는 출동 바랍니다.]


  현장은 작은 술집이었다. 무더운 여름밤이다 보니 대부분의 손님들은 야외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중 남성 두 명이 자리한 테이블에서 어느 한 남성이 소리를 지르며 업주로 보이는 부부와 다투고 있었다.


  “이게 손님 대하는 태도야? 장사 잘 되나 봐? 어디 가게 망하는 꼴 한 번 볼까!”


  “다른 손님들은 다 지켜주시는데 왜 손님만 그러시는 겁니까?”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 안주 시켜 먹지 말라는 법이 있냐고! 내가 내 돈 내고 먹겠다는데!”


  “저희도 안주로 음식을 파는데… 이건 조금 너무하신 것 같습니다 손님.”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듣게 된 몇 마디 대화로 대략적인 개요가 파악되었다. 가게 업주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신고자인 손님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어디까지나 도의적인 문제일 뿐, 엄밀히 말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은 아니었다. 경찰관들을 보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큰 소리를 치는 손님을 보며 업주는 우리에게 사정하다시피 말했다.  


  “경찰관님, 한 번 생각을 해보세요. 저희도 엄연히 음식을 파는데, 두 분이서 소주 1병 시키시고 안주는 배달해서 드신다니… 이게 말이 되나요? 심지어 손님들이 배달시킨 음식, 저희도 메뉴에 있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돌아가신 손님들도 있는데…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아니 이봐, 사장이면 다야? 전에 먹어 봤는데 당신네 술집 안주가 맛이 없으니까 우리가 배달을 시키는 거 아니야? 그게 뭐 잘못됐어? 그러면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오던가!”


  우리는 일단 말을 아꼈다. 경찰관은 현장을 판단할 때 무엇보다 법률적 구성요건의 검토가 전제되어야 한다. 주관적인 판단, 보통사람의 상식, 도의적인 기준 등은 법률적 타당성을 검토한 뒤에 고려해야 할 부수적인 사안들이다. 물론 사안에 따라 법적 요건의 검토보다 사람의 감정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 때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이 결코 원칙의 위에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제복을 입고 현장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중립을 지켜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경찰관님, 대답 좀 해주세요! 저희가 손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건가요?”


  업주 중 남편은 우리가 자신들의 손을 잡아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당연히 사장님의 말씀이 무리한 요구는 아닙니다. 사장님의 심정 또한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손님에게 업소에서 정한 규정에 따르도록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혹시 말씀하신 것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손님이 가게 영업을 방해한 것이 있나요?”


  “저 손님도 언성을 높인 것 외에 딱히 별다른 영업방해 같은 건 없었어요.”


  업주 중 아내가 대답했다. 충분히 화가 날법한 상황이었음에도 감정을 다스리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은 달랐다. 그는 거침없이 언성을 높이며 자신의 정당함을 만인에게 선포하고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또 다른 남성은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자 자신들의 행위가 떳떳하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점점 목청이 커지고 행동도 과격해졌다. 보다 못한 선배 경찰관이 남성 손님을 진정시켰다. 


  “선생님. 여긴 업소이고 다른 손님들도 계시니 좀 자중하시죠.”


  “아, 예예. 경찰관님 말씀 잘 들어야죠. 저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입니다. 충!성!”


  짐짓 유쾌한 척 하는 그의 언행은 비아냥거림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그의 행동이 너무 얄미웠지만 개인감정을 앞세워 공권력을 남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건 전후 과정에 따른 법적 요건들을 모두 검토해보아도 그의 얄미운 행동들이 업무방해죄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물론 법적 요건을 배제하면 손님의 행위가 억지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경우 양측 의사를 들어보고 현장에서 원만하게 화해하도록 조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사실 화해에는 절대 50:50이 없다. 애석하게도 화해라는 것은 언제나 어느 일방의 용기와 양보가 필요하다. 우리는 다시 업주 내외의 진술을 청취했다.


  “저희는 손님들께 가게 음식을 주문해달라고 요청했을 뿐이에요. 당연히 처벌 같은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다 드신 것 같은데 다른 손님들께 피해가 없도록 이제 그만 가주셨으면 해요.”


  결코 어려운 요구가 아니었다. 테이블을 보니 두 명의 남성 손님들은 이미 술과 다른 식당에서 배달한 안주를 모두 비운 상태였고, 우리가 왔을 때 주섬주섬 짐들을 챙기는 걸로 보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인 듯 했다. 이제 남은 건 손님들의 의사였다. 우리는 업주 내외와 입씨름을 하던 남성 손님에게 말했다.


  “선생님들도 이제 다 드신 것 같은데 자리를 옮기시는 것이 어떨까요?”


  “갈 거예요. 안주도 더럽게 맛없는데 술이라도 팔아주는걸 고맙게 생각해야지.”


  그는 짐을 챙기고 일어날 준비를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혀 끝에 칼을 품었다. 울컥하는 마음이 들킬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곳에는 업주 내외가 서 있었다. 부부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다른 손님들은 마치 연극을 관람하듯 흥미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지켜보며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좋은 안주거리가 생긴 셈이었다. 여러모로 불편한 이 현장을 되도록 빨리 정리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경험상 이런 현장은 시간이 지체될수록 단순한 시비가 사건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손님들이 완전히 자리에서 떠나야 우리도 철수할 수가 있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알고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쉬울 것 없는 손님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보란 듯이 어기적거리며 늦장을 부렸다. 느긋하게 짐을 챙기면서 업소에 대한 불만을 한두 마디씩 툭툭 뱉어가며 빈정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업주 내외와 언쟁을 하던 손님의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결국 도화선에 불을 지피고 말았다.


  “잠깐, 근데 야외에 테이블 까는 거… 이거 불법 아니에요?”


  신고자는 계산까지 마치고 겉옷을 챙겨 입은 채 툭 하고 한 마디를 뱉었다. 그 순간 판도는 바뀌었다. 아무 문제없이 끝날 수 있었던 일에 문제가 생기고 만 것이다.


  “어어! 맞네 이거! 그 뭐냐, 식품위생법 위반! 그거 아냐? 전에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이거 불법이잖아요? 저 이거 신고할게요. 지금 당장 처벌해 주세요.”


  내내 잠자코 있던 남성의 일행이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허가된 영업장 외에 신고 되지 않은 면적에서 영업행위를 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과태료 처분 대상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야외에서의 음주행위가 법적으로 규제된 것도 아니었고, 여름에는 야외 테이블에서 음주를 하는 경우가 많기에 사회상규 상 큰 문제가 없는 한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무분별한 단속은 지양하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를 신고한 이상, 공공기관에서는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업주의 영업 행위는 큰 문제가 될 만한 범죄 행위가 아니었으나, 과태료 처분이나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되면 업주 입장에서 실형선고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우리는 누구도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 법을 몰라서도, 처리를 할 수 없어서도 아니었다.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고, 법을 집행할 때는 공명정대 해야 한다. 하지만 경찰관도 사람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느끼고, 법적인 부정함 뿐만 아니라 도의적인 부당함에도 분노할 줄 아는 보통 사람이다. 그런 보통 사람들이 망설이고 있을 때, 업주 남편이 담배를 꺼내 물더니 말했다.


  “여보… 손님도 많고 계속 바쁠 거예요. 가게는 내가 볼 테니 당신이 천천히 다녀와요.”


  “도대체 우리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


  결국 업주의 아내는 눈물을 보였다. 고작 4,000원 짜리 소주 한 병을 팔며 그 모진 수모를 겪고도 꾹 참았던 서러움이 터지고 말았다. 남성 손님은 현장에서 진술서 한 장을 작성한 후 귀가하였고, 우리는 여성 업주와 함께 지구대로 돌아왔다. 지구대에 도착한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연신 눈물을 훔치느라 손에 쥐고 있던 휴지가 다 젖어버렸다. 너덜너덜해진 휴지를 받아 쓰레기통에 넣으려는 순간, 문득 그 휴지 조각들이 그녀의 찢겨진 마음처럼 느껴져 버리기가 망설여졌다. 우리는 사건 처리를 마친 후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지구대 문을 열었다. 지구대에 도착한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던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최대의 호의를 베풀 뿐이었다.


  “다시 가게로 돌아가실 거죠? 마침 긴급신고가 없으니 순찰차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그냥 택시 타고 갈게요.”


  우리에게는 작은 호의를 베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녀가 말한 ‘너무 한 것’, 그녀의 가슴에 가장 큰 생채기를 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만인 앞에 평등하지 못한 법, 공명정대한 판단을 하지 못한 경찰관, 가진 것 없는 약자들이 피해보는 세상, 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갑을관계… ….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이날 겪은 부조리함에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누구보다 서럽게 울었다.


  이후 지방자치단체 담당자로부터 업주 내외의 행정처분은 경고 조치로 끝나게 되었고, 실질적으로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식을 듣고 우리들 중 누군가는 다행이라며 기분 좋게 웃었지만, 업주 내외 못지않게 무거운 마음이었던 나는 그 ‘희소식’이 딱히 위로로 다가오지 않았다. 당사자도 아닌 내 심정마저 그러했으니, 당신들은 오죽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실체 없이 가슴을 옥죄는 응어리를 떨쳐버리려 한 동안 애를 썼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야간 근무 중 그 술집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문득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만약 업주를 처벌하지 않고, 손님의 위법 행위에 대한 고발을 묵과한 채 만인 앞에서 손님의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 계도하였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했더라면, 업주 내외는 몰라도 그가 느끼는 억울함은 없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그 문구가 떠올랐다.


  [나의 맹세 - 나는 맡은 바 일에 억울한 사람이 한 명도 없도록 하여 정말 존경받는 경찰이 된다.]


  억울한 사람이 한 명도 없도록 한다는 말. 정당하게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말. 거창하게 맹세까지 하지 않더라도 실천하기에 딱히 어려울 것 같지도 않던 말. 그토록 당연하고 쉬워 보였던 그 말을, 왜 대한민국 경찰관들의 요람인 중앙경찰학교 비에 새겨 두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기게 한 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깨지지 않는 얼음은 어루만져주면 녹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