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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잔 Oct 24. 2021

삶은 쓰여져야 견딘다.

<글쓰기의 최전선> 성호의 편지

안녕하세요? 동지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일종의 동지로 생각하는지 동지란 말이 절로 나오네요. 아주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지난번 모임에 좋아하는 것(라나, 혜정)을 더 좋아하게 해달란 말도 안 되는 고백을 했는데요. 모임 이후 여러분에게 어떤 생각과 감정이 피어났을지 궁금합니다. 보고 싶구요. 또 고백을 시도 때도 없이 하네요.      

가을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공기에 어깨를 움츠리고 대낮엔 따가운 볕에 깜짝 놀라서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며 혀를 끌끌 찹니다.

변덕스러운 날씨만큼이나 제 마음의 갈피도 오락가락합니다. 

혼자 남겨진 시간에 음악을 자주 틉니다. 그 때 내 무드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 틀어놓는 일을 매일 하고 있어요. 어제는 자려고 누웠는데 적막한 공기와 방구석이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익숙해졌구나 싶었어요.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번 근황 토크가 길어집니다. <글쓰기의 최전선>을 논하기 시작하면 하고픈 말이 더더욱 길텐데 말예요. 우리가 사랑하는 ‘은유 작가’ 가 쓴 글쓰기 책을 이제야 읽다니요! <글쓰기의 최전선> 을 읽으며 어찌나 좋은지 영광에서 하는 책 모임 여자들에게도 선물을 했습니다.      

은유 작가가 길어 올린 문장들이 다 주옥같아서 제 책은 밑줄과 네모와 동그라미로 가득 찼습니다. 마음에 새겨두고 그렇게 살고 싶어지는 문장이 장마다 넘쳐나서 행복하고 불쾌했습니다. 내가 쓴 문장들이 어찌나 비루하게 느껴지는지, 은유 작가가 얼마나 부러운지요.     

 “나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더 못 쓸 수도 없다”

 “글을 보면 삶이 보인다.”

 “글은 삶의 거울이다. 글은 삶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것이 글 쓰는 사람에게는 좌절의 지점    이기도 하고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배껴 쓴 이 문장들은 저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내가 곧 글이고, 삶이 글로 탄생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잊은 듯 살고 있거든요. 글을 쓰고 싶어 하면서 인생은 막장으로 달려가니까요. 

내가 쓴 글을 과연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내보일 수 있을까? 가명 뒤에 숨고 싶은 이유는 삶에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오래 간직해 왔습니다. 첫 소설의 제목도 정해 놨어요. 내용이 구성되지 않은 채 제목이라니,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자의 사고방식입니다. 제목은 <거짓말> 입니다. 살면서 해온 거짓말의 역사를 이야기로 서술해 보고 싶단 막연한 욕구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어느 곳이나 진실에 민감하고, 진실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길 하고 싶어요. 

소설을 쓰고 싶다가 아니라 써야겠군요. 쓰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 되겠어요.     

제 삶을 수필로 쓰기보단 허구성이 전제된 소설에 맡기는 편이 덜 부끄러울 거라는 계산도 있었겠지요. 부끄러움을 느끼는 걸 보면 제가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는 아닌가 봅니다. 

어쩌면 두 분은 저를 보면서 쟤는 어떻게 저런 얘기를 마구 해댈까 생각하셨을 수도 있어요. 부끄러움도 모르나봐 하며. 하지만 저는 부끄러워요. 제가 살아온 나날들 대부분이 부끄러워요. 부끄러운 일도 말과 글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끄러움을 모르는게 더 부끄러운거니까요. 부끄럽다는 단어의 어감이 참 부끄한 느낌이네요. 말장난만큼 재미진 것도 없지요ㅎ라나라면 분명 몇 가지를 더 보태 말장난에, 말장난을 즐겼을 테지요.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는 제 취향은 아마도 부끄러움과 익살에 관련이 깊지 싶어요.     

 “자기 이해를 전문가에게 의탁하기보다 스스로 성찰하고 풀어가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며    그중 가장 손쉬운 하나가 내 생각에는 글쓰기다. (중략) 자기 안에 솟구치는 그것에 대해 알   아채는 감각, 자기 욕망과 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감성적 역량, 세상을 읽어나가   는 지식과 시선 등을 갖춰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삶의 장인이 될 수도 있고 아니될 수도 있   지만 더 망가지지 않고 살아갈 수는 있다. ‘망가지지 않는다’는 말이 얼핏 소극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에는 무척 섬세한 감수성과 인지성이 들어 있다.”      

“글쓰는 일이 작가나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소수의 권력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보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 선택하는 최소한의 권리이길 바란다.”      

아이와 남편을 두고 혼자 살림을 꾸리면서도 매일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내가 읽고 쓸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토록 꾸리고 싶어 이룬 가정을 깨고 왜 도망쳐야만 했는지, 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건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어떤 상태로 치달았는지, 왜 그렇게 된건지 읽고 쓰기를 수없이 했어요. 정혜신 박사가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라고 말할 때는 내가 처한 상황과 망가진 모습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했고, 완전한 행복을 읽으면서는 내가 원하는 행복이란 게 누군가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떠올리게 했어요. 

잠들기 전,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그 어느 때나 노트에 적었어요.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의 파편들. 글로 정리되는 만큼 나 스스로를 이해했고, 매일의 일상이 굴러갔어요. 자책과 비참한 감정에 잠수하지 않고, 물 밖으로 떠올라 출근 준비를 했어요. 세수하고 옷을 예쁘게 입고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어요. 그렇게 일년반이 흘렀어요.     

앞으로는 함께 읽고 함께 써 보려고 해요. 삶을 돌아보고 매일을 잘 견디며 살아가는 방법을 나 혼자만이 알고 있긴 아까워서 사람들과 같이 하고 싶어요. 자신의 언어가 필요한 사람들, 슬픔에 잠긴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려고 합니다. 책모임에 이어 글쓰기 모임을 시작해보자고 다짐을 해버렸어요. 그 에너지가 쌓여 시작하는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요.      

모임을 또 벌리냐며 걱정들을 하시겠지만, 책 읽는 동지들은 조금더 늘어나도 괜찮습니다.

언니와 라나는 어떤 일요일 밤을 보내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오늘은 여기서 줄여야 겠습니다.      

매일 일과 일상을 간신히 굴리는 성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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