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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Sep 02. 2024

술이 줄고 커피가 늘었어요.

©공혜균/파리 “레 뒤 마고“에서 커피를 마시는 안승준

나름 애주가라 자부하는 나의 요즘 고민 중 하나는 급격히 줄어 버린 주량이다. 술자리를 자주 가지지는 않아도 어느 자리에서든 취하는 걱정 같은 것은 해 본 적이 없는데 최근 몇몇 자리에서는 심각하게 취기가 오르는 것을 경험했다. '다른 사람이 취하기 전에 내가 어떻게 될 리가 있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정도는 가지고 있었는데 몇 번의 경험 뒤로는 잔을 드는 속도도 횟수도 긴장하고 조절하게 되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럼 안 마시면 되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애주가 타이틀 달고 20여 년간 맺어온 인간관계들은 이따금의 술자리 없이는 유지되기가 곤란한 부분이 있다.

'이게 나이 들어가는 건가?'라고 생각하기엔 나보다 훨씬 연배가 높으신 분들의 모습이 나 같지 않음에 타당함이 떨어진다. '몸이 많이 약해진 건가?'라고 단정 짓기엔 아직 여러 지표가 여전히 술 잘 먹는 또래들에 비해 나쁘지 않다. 혹시 '컨디션이 극도로 안 좋은 날과 나의 술자리가 우연히 겹쳐진 건가?'하는 생각으로 굳이 늦은 밤에 술장에 있는 위스키 몇 잔을 따라 마셔보는데 역시나 그 반응은 며칠 전 그때처럼 빠르게 온몸을 휘감는다.

술 먹는 실력 조금 줄어든 것이 인생 전체로 따져보면 그다지 큰 것을 잃은 것도 아니겠지만 그냥 뭔가 손에 쥐고 있던 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없어진 것처럼 허탈한 마음이 쓸데없는 고민으로 맴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괜스레 '왜 그럴까?'가 문득문득 머리를 스치는데 갑자기 번쩍하며 든 생각 하나가 제법 그럴듯한 근거로 나를 설득해 냈다. 아내와 만남을 시작하고 결혼하는 최근 3년 정도의 시간 동안 나의 술자리 횟수는 확연히 줄었다. 다른 누구와 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아내와의 시간에 술을 먹는 일은 거의 없다. 내가 술 먹는 것을 뭐라고 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부터 술을 즐기지도 마시지도 않는 아내에게 굳이 술을 강요하거나 가르칠 마음 같은 건 없다.

그녀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있는 것이 최근 나의 일상 중 한 조각을 차지하고 있지만, 나를 오랫동안 만나온 친구들에게 이 장면은 너무나 낯설다. 가족들도 동료들도 커피잔 들고 있는 나의 사진을 연출이라고 믿으려 하지 않지만, 어느 때부턴가 난 커피의 향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한 잔에 5천 원쯤 하는 커피를 들고 한 두 시간 까페에 앉아 있는 것 보다 소주 한잔에 삼겹살 한 조각 나누는 것이 인간적이고 생산적이라고 굳게 믿었던 내겐 괄목할 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어느 날에는 진한 에스프레소를, 또 어떤 날엔 크림 가득한 아인슈페너를, 때로는 달콤한 캐러멜 마키아토나 아포가토까지 주문하는 나를 여전히 사람들은 어색한 의심으로 바라보지만 이젠 제법 원두에 따라 다른 커피 향과 산미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커피 실력이 내게 탑재되었다.  

주량이 줄었지만 그만큼 커피가 늘었다. 내가 비워낸 만큼 그 자리를 아내로 채웠다. 서로가 다른 부분을 고집으로 채웠다면 우리 사이는 원만해지기보다 부딪힘과 다툼으로 가득 찼을 것이 분명하다. 주량이 줄었다는 고민은 어느새 커피가 늘었다는 기쁨이 되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역대급의 더위라고 호들갑 떨던 기상캐스터들의 옷차림도 어느새 가을을 입고 있다. 계절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반팔과 반바지를 고집할 수는 없다. 우리는 뜨거운 햇볕과의 시간을 내려놓고 선선한 바람을 받아들여야 또 한 계절을 살아낼 수 있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또 하나를 내려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리는 또 다른 무언가로 채워진다. 그것이 서로 다른 이들이 원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변화이다. 이제 며칠 있으면 우리에게 또 다른 다름이 새 식구로 찾아온다. 우리 가족의 삶에서 술에 이어 커피까지 줄어들지도 모르지만, 그 향기 대신 또 다른 향기가 내 삶을 기쁘게 채울 것이라 기대하고 믿는다.

술이 줄고 커피가 늘었다. 이젠 또 다른 채움을 위해 또 다른 무언가를 내려놓을 설렘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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