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xels/햇살이 가득한 숲의 풀밭
세상에 태어나서 40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맺어 온 인연은 얼마나 될까? 지금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언제라도 연락 정도는 닿을 수 있는 이들과 스치듯이 흐려져 버린 인연까지 합친다면 수천을 넘어 족히 수만 단위는 될 것 같다. 가족을 만나고 이웃을 사귀고 친구와 동료를 알게 되고 또 하나의 가정을 꾸릴 때마다 처음은 언제나 설레고 떨렸지만 한편 두렵고 어색하고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처음 학교에 입학하던 아주 오래된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너무도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런 감정들이 오묘하게 뒤섞여 내 몸에 특별한 긴장감으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태어나던 순간이 내게 기억날 리 없지만 어쩌면 그때 내가 터뜨렸던 큰 울음은 새로운 만남에 대한 복잡한 감정의 첫 번째 표출이었을지 모르겠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호흡법을 익히는 것이 버겁기도 했겠지만 나보다 몇 배는 커다란 어른들의 격앙된 반가움의 표출은 나에게 있어 신기함임 동시에 무서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젖을 주는 사람은 엄마이고 목말을 태워주는 좀 더 큰 어른은 아빠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들은 내게 절대적인 호의를 가진 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될 즘 난 '엄마' '아빠'라고 하는 사람들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따라 두 발로 걷고 숟가락을 들어보면서 다름을 닮음으로 옮기는 첫 경험을 시도했다.
친구를 알고 또래를 사귀게 되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것이지만 우리는 모두 달랐다. 활발한 녀석도 있고 소극적인 아이도 있었다. 착실하게 공부를 잘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틈만 나면 까불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있었다. 어떤 날엔 친구 따라 책을 보다가 칭찬을 받고, 또 어떤 날엔 동네 형을 따라 뜻도 모르는 욕을 하다가 혼나기도 했다. 다투기도 하고 따라 하기도 하면서 내게 처음 성격과 성향이라는 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는 것이 있고 잘하지 못하는 게 있는 것도, 매력적인 면과 비호감의 면이 있는 것도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나온 작은 특성보다는 내가 만나고 나를 지나간 많은 사람들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장애를 알고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된 것은 내가 시각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장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친구들을 만난 덕분이었고, 나의 관계들과 사회생활이 그나마 원만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만난 친구들과 동료들에게서 배운 다름의 덕분임을 안다.
수천수만의 소중한 인연들 덕분으로 살아가는 난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렸고 이제 또 한 번의 새로운 만남을 준비한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만나는 날 처음으로 느꼈을 그때 그 감정은 이전에 내가 경험한 것들과는 그 크기도 복잡함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나서 바라볼 사람이 나라는 존재라는 것에 난 한 없이 벅차오름을 끼지만 또 한 편 전에 느끼지 못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날 닮은 모습으로 태어날 아가는 언젠가의 나처럼 복잡한 감정의 첫울음을 터뜨리겠지만 이내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서 나를 닮아갈 것이다. 조금 더 나은 모습의 어른으로 조금 더 나은 닮음들을 선물하고 싶을수록 스스로가 작아 보이는 큰 아쉬움을 느끼지만 그럴수록 부풀어 오르는 벅찬 가슴으로 좋은 어른이 되기로 다짐한다.
내게 삶을 선물해 주시고 지금이 있기까지 가장 많은 닮음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오늘이다. 아울러 내가 좋은 가정에서 괜찮은 남편으로 보일 수 있도록 좋은 다름을 내어주고 열 달의 인내로 우리를 닮은 세상 최고의 닮음을 선물해 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햇살이가 아빠를 닮은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아빠를 닮은 것이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도록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 내 목표를 조금 상향 조정한다. 8월 29일은 내 생애에 있어 가장 햇살이 눈 부신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