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ㅣ 아이와 도심을 여행하는 또 다른 방법
런던을 방문한 경험은 가까스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정도다. 한편 누군가 나에게 여행하기 좋은 도시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런던도 있다.
런던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 전면에 동그란 명패가 붙어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단한 눈썰미가 아니어도 도처에서 목격되는 파란색 그것, 블루 플라크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인물 혹은 장소를 선정하여 해당 건물에 부착하는 공식적인 표식을 부르는 말이다.
무심하게 지나쳤던 코발트빛 플라크가 나를 멈춰 세웠던 것은 런던을 두어 번 방문한 이후였을 것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내게도 손바닥보다 크게 접은 딱지를 앞세워 동네 딱지를 깡그리 접수하던 때가 있었다. 집 밖은 비비드한 세상 자체였으며, 온통 놀거리로 가득 찬 곳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학원은 고사하고 놀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세월을 멀리 돌아 런던의 거리에서 나를 멈춰 세웠던 플라크는 내게 있어 또 다른 딱지를 거머쥐기 직전에 마주한 일단 멈춤 표지판이었다. 그리고 두둑한 꾸러미에 또 하나의 딱지를 더하는 것이 기쁨의 원천이었던,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마중물이기도 했다.
몇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는 도시라면 전작에서 이른바 ‘랜드마크 도장 깨기’라는 미션은 일찌감치 끝냈을 공산이 크다. 관광객 무리에 기꺼이 끼어서 재차 방문하고 싶은 마음 설레는 곳도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목적지가 없는 이상 걸음이 빨라질 이유는 없지
거리를 어슬렁거리면서 나눴던 대화의 상당 부분은 어느새 우리 눈에 들어온 명패 주인공들에 관한 것이 되었다. 얕은 지식에 하찮은 경험이나마 애써 끄집어내어 방금 전 마주친 그들을 감히 입에 올려가며 계속 걸어 나가는 것이다.
거리를 배회하다 문득 올려다본 건물에 적힌 이름이 애거서 크리스티였고, 알프레드 히치콕이었다. 한편 기분에 따라 발길을 옮기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된 프레디 머큐리, 에이미 와인하우스 그리고 존 레넌과 같이 익숙함을 넘어 애정해 마지않는 이들의 플라크는 뜻밖의 큰 선물과도 같았다.
예고 없는 우연은 반가움을 배가시킨다
모퉁이를 돌자 예고 없이 맞닥뜨린 플라크는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며 다짜고짜 멈춰 세웠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건물이 아르튀르 랭보 혹은 존 키츠가 런던에서 빛나는 한때를 보냈던 장소였다고 슬슬 운을 떼는 것이다.
아침 운동을 하러 숙소 밖을 나와 슬슬 피치를 올려보려는 내 앞에 연이어 등장한 버지니아 울프와 찰스 디킨스의 흔적 또한 달리던 나를 멈춰 세우고 숨부터 고르라며 기다려 주었다.
플라크를 향한 호기심은 반가움이었다가
결국엔 즐거운 탐험이 되었다.
자신만의 영역에서 한 획을 거하게 긋고, 시대와 장소의 경계를 넘어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물의 지난 흔적을 마주하는 순간 내가 있는 거리의 공기가 뒤바뀐 듯한 느낌을 받는다.
런던 거리만 해도 900개가 넘는 블루 플라크가 달려있다고 한다. 별도의 심사위원회를 두고 해마다 정해진 소수에게만 차례가 돌아가는 블루 플라크의 선정 기준은 만만치가 않다.
18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바이런의 생가에 처음으로 달린 이래 세월의 부침에 따라 관리 주체에도 몇 차례 손 바뀜이 있었다. 한때 폐지되기도 했었는데 1986년 이후에는 영국의 문화유산 단체인 잉글리시 헤리티지에서 운영하고 있다.
파란색이 아닌 갈색의, 원형이 아닌 사각형 혹은 타원형의 플라크도 왕왕 눈에 띄는데 이처럼 디자인이 다른 명패들이 혼재하는 이유는 과거 운영 주체별로 형태를 달리 한 데에 기인한다. 하지만 멀리에서도 단번에 나의 시선을 붙드는 것은 역시 반짝이는 코발트빛을 발하는 세라믹 타입 플라크이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음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세월의 부침을 견뎌내고 건물 전면에 흔적만 남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오래된 블루 플라크는 외벽의 일부처럼 자연스럽다.
동그란 딱지에 홀린 나머지 마음속에 하나씩 주워 담게 된 시작점에는 센트럴시티에서 멀지 않은 블룸스 버리라는 지역이 있었다. 접근성이 좋아 개인적으로 런던에 오면 숙소를 정할 때 일 순위로 고려하는 블룸스 버리는 예로부터 지성의 거리라 불리며 대학 캠퍼스들이 모여 있는 대표적인 런던의 대학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파리의 소르본 대학을 위시한 많은 대학들이 모여 있는 라틴쿼터 지역과 같은 활기를 기대하고 왔다가는 조용하다 못해 썰렁한 동네 분위기가 생경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왁자지껄한 술집이 늘어선 분위기도 아니며, 학생을 상대하는 문턱이 낮은 식당들이 즐비한 모습도 보기 힘들다.
블룸스 버리에서 본격 딱지 줍기는 한적한 이른 아침이 제격이다. 운동을 하기 위해 거리에 나서면 형광색 조끼 차림의 청소원이나 반려견과 산책을 나선 동네 사람들만 간간이 오고 갈 뿐이었다.
말끔해진 이른 아침의 거리에서는
눈에 드는 모든 것들이 선명하다.
숙소로 사용했던 대학 기숙사 건물을 끼고 모퉁이를 돌자 첫 플라크와 눈이 맞닿았다. 큰 수고 없이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현재는 기숙사로 사용되는 건물 한편이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문학잡지가 창간된 곳이라는 것을 플라크는 알려주었다. 전시 상황이었음에도 당대의 내로라는 작가, 사상가 그리고 예술가들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해온 잡지에 관여한 인물로 스펜더 경과 더불어 조지 오웰의 이름도 쓰여 있었다.
조지 오웰. 그의 흔적이라면 영국의 문학사에서 그가 남긴 명성에 걸맞게 노팅힐과 함께 런던 북동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내가 묵었던 건물에도 그의 궤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만일 당신이 조지 오웰에 대해 각별한 애정이 있다면 런던에서 그가 생전에 거처로 사용했던 집들 혹은 일했던 서점 등을 순차적으로 엮어서 따라가 보는 것도 큰 재미이자 의미일 것이다. 물론 이 경우 길라잡이 역할을 기꺼이 맡아줄 존재는 블루 플라크가 될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숙소 건물에만 몇 개의 다른 플라크가 눈에 띠었다. 이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인데 런던대에 속한 건물에만 20개 가까운 플라크가 걸려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대학가이면서 예로부터 대표적인 런던 지성의 거리로 불렸던 블룸스 버리 인근에는 생전에 개척자로서의 삶을 영위하다 생을 마감한 이들을 기리는 플라크가 붙은 건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편 숙소 반경에는 스퀘어 혹은 스퀘어 가든이라 불리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그중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브런즈윅 스퀘어 가든스라는 이름의 공원에 가면 런던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나무라는 불변의 타이틀을 지닌 채 양 팔을 한껏 벌리고 서 있는 플라타너스도 만나볼 수 있다. 런던의 위대한 나무 중 하나로 선정된 특별한 플라타너스를 보기 위해 공원을 찾는 이들이 과연 있기라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영국인들 특유의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150여 년 전에 블루 플라크를 만들어 시대적인 가치와 의미를 지닌 인물 혹은 장소를 기념하는 한편, 그들은 런던 어딘가에서 묵묵히 이 도시를 받들고 있는 또 다른 대상들에 대한 관심도 각별했던 것 같다.
오래된 고목을 보존, 관리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덧입혀 구체적으로 대상화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도시를 풍성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레퍼토리가 더해지는 것이다. 이야기꾼들이 모여 사는 영국인들 다운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로 셰익스피어의 후예들다웠다.
세상 조용한 이 공원은 이미 여러 차례 드라마 혹은 영화화되었던 제인 오스틴의 소설 '엠마'에서도 짧게 언급된 적이 있다. 그로부터 약 한 세기 후 피터팬을 세상에 내놓은 세기의 작가 제임스 베리 경이 쓴 소설에서는 피터팬이 이 정원 위를 가로질러 웬디의 집으로 향하는 장면을 묘사한 구절이 나온다.
생의 절정이었던 20대의 제임스 베리의 안식처는 이 아름다운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돌출형 창문이 달린 코너 하우스는 실제로 소설 속 웬디의 집에 영감을 주었다.
다리를 쉬기 위해 들렀던 공원을 빠져나와 블루 플라크가 달린 공원 앞 모퉁이 집 앞에 섰다. 그리고 웬디의, 아니 과거 제임스 베리가 살았던 집의 예쁜 창을 올려다보았다.
작가의 경험은 그의 결과물 속에서 가상의 현실로 구현되고, 독자는 그가 창조한 세계와 현실을 넘나들며 또 다른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플라크는 그저 조용한 거리 한편에 평범한 공원과 더불어 이 동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보따리를 기꺼이 펼쳐 보이는 역할을 맡는다. 만일 품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걸음을 멈추고 블루 플라크가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평범한 어느 공원과 블루 플라크에 얽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브런즈윅 스퀘어 가든스에 온 이상 아주 특별한 그들을 꼭 만나 보아야 한다. 19세기 초 영국의 지식인과 예술가 모임인 블룸스 버리 그룹이 그것이다.
공원 입구에 서면 당대 런던 지성의 상징이자 산실이었던 블룸스 버리 그룹의 주요 멤버들을 포함하여 한때 이곳에 살았거나 중요한 흔적을 남긴 예술가와 비평가, 학자들과 유명인사들을 소개하는 안내문을 확인할 수 있다.
웬디의 집 앞에서부터 피터팬이 공중에서 가로질렀던 그 공원을 터벅터벅 걸어서 반대편 출구로 나오면 블룸스 버리 그룹이 태동한 곳임을 알려주는 플라크가 먼저 눈에 띈다. 지금은 약학 대학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블룸스 버리 그룹의 구성원들은 한때 이 건물에 층별로 흩어져 함께 거주했다고 한다. 작가와 비평가가 주를 이루었던 예술가 집단의 일원 중 경제학자인 케인스가 있다는 것이 의외였는데, 던컨 그랜트와 같은 화가는 물론 의학자의 이름도 발견할 수 있었다. 분야는 달라도 그들에겐 하나같이 자신의 영역에서 개척자의 삶을 살다 간 공통점이 있다.
블룸스 버리 그룹을 말할 때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예민함에서 발현된 우아함의 대명사인 우리의 버지니아 울프 여사일 것이다. 그녀는 레너드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줄곧 그녀를 괴롭혔던 우울증이 악화되면서 약물을 복용하기에 이르렀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던 위험한 일화도 이 건물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블룸스 버리 그룹이란 게 대체 뭐죠?"
처음 들어보는 명칭이 아들에겐 별 감흥 없는 아이돌 그룹이라도 되는 줄 알았나 보다. 건조하게 묻는 아들 녀석의 물음에 대해 녀석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이 필요했다.
“블룸스 버리 클럽은 지금부터 100년도 더 전에 이 동네에 모여 살았던 영국 최고 핵인싸 친구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지”
실제로 이해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아들 녀석은 단박에 감이 온다고 응수해 주었다.
울프 부부를 위시한 블룸스 버리 그룹에 속한 구성원들의 흔적은 블룸스 버리 전역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러셀 스퀘어와 영국 박물관에 닿는다.
별다른 목적지가 없는 날 영국박물관을 중심에 두고 반경을 돌아다녀 본다면 발견할 수 있는 플라크의 개수만 해도 서른 개가 족히 넘을 것이다. 버트란드 러셀이 한때 잠시 동안 머물렀다는 플랏도, 찰스 다윈이 젊은 시절을 보낸 적이 있는 그의 옛집도 그 안에 있다.
영국 박물관 주변에는 많은 의학자, 소설가, 작가, 예술가, 세상을 바꾼 개혁가, 건축가, 비평가, 사회운동가, 정치인 등 다양한 인사들의 블루 플라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 짚으며 찾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그저 길거리로 나와 걷기만 하면 된다.
흥미가 생겼다면 조금 더 반경을 넓혀봐도 좋다. 다윈의 집에서 왼쪽으로 걸음을 조금만 옮기면 마주하게 되는 피츠로이 스퀘어에도 버지니아 울프의 또 다른 흔적이 남아 있다.
실제 마주할 일은 없었겠지만 20년이 흐른 뒤 버지니아 울프가 머물렀던 해당 주거용 건물에는 그녀 자신은 끝내 인연이 닿지 못했던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한 인물이 이사를 오게 된다. 울프에 견줄만한 세기의 작가가 궁금하다면 사이좋게 걸린 두 개의 플라크를 확인해보면 된다.
하나는 울프 여사의 것이고, 다른 하나에 적힌 이름은 조지 버나드 쇼이다.
플라크를 따라가다 보면 시대와 무관하게 어떠한 연결고리를 매개로 서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인연을 발견하게 되는 때가 있다.
이를테면 아일랜드에서 런던으로 건너온 버나드 쇼가 이 근처에서 10년 남짓 머물렀던 것은 당시 젊은 버나드 쇼를 사로잡았던 마르크스나 다윈이 생전에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린 버나드 쇼는 이 근처에 살면서 마르크스가 그랬던 것처럼 대영박물관의 도서실을 일종의 안식처로 인식했던 것 같다.
플라크를 따르다 그 사이의 접점을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이란
온전히 그것을 찾는 사람의 몫이다.
그런 이유로 때때로 이 도시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초대형 직소퍼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촘촘한 퍼즐판을 앞에 놓고 손에 들려있는 퍼즐 조각이 제 위치에 딱 들어맞았을 때 느끼는 희열과 다르지 않다.
이번에는 블룸스 버리 그룹의 본거지에서 홀본 쪽으로 내려와 보았다. 도티 스트리트로 접어드는 초입에 찾고 있던 이정표가 보였다.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넘어 어떤 이들은 그를 일컬어 런던을 창조한 사람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정표가 가리킨 것은 찰스 디킨스의 뮤지엄이었다.
아들에게 디킨스를 설명할 때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던가 「두 도시 이야기」와 같은 책 이야기로는 충분하지 않은 듯해 나름의 수사를 보태야만 했다.
“디킨스라는 인물은 그가 살았던 1800년대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셀럽이자 엄청난 파워 인플루언서였다고 하면 틀리지 않을 거야. 만렙의 글쓰기 스킬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 그는 어떤 일이든 잘해 냈으며, 더욱이 그 모든 대단한 일들을 혼자서 다 해버렸던 만능 엔터테이너였다고 생각해”
라며 아들 맞춤 버전의 장황한 소개를 늘어놓았다.
찰스 디킨스가 런던에서 살던 집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뮤지엄으로 용도가 바뀐 이곳뿐이다. 차츰 명성을 얻기 시작할 무렵 이곳으로 이사 와서 두 딸아이를 얻고 「올리버 트위스트」를 탈고했다고 전해진다. 더 오래전 방문한 적이 있는 뮤지엄 내부는 빅토리안 스타일의 전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 중 상당수가 그의 집에서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점도 새삼 흥미로웠다. 실제로 뮤지엄 주변 거리에는 눈을 즐겁게 하는 예쁜 상점도 많지만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품은 역사적인 장소들도 곳곳에 숨어 있어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알려진 대로 산책을 광적으로 좋아했던 인물이니 만큼 거리 어딘가에서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를 대 문호의 기운을 느낄 수 있지는 않을까 싶어 마음이 설레었다.
숙소 주변은 언급한 대로 지역의 특성상 작가, 비평가, 사상가, 철학자 등 특정 분야에 편중된 플라크가 압도했다면 센트럴 런던 지역의 특성과 분위기는 이와는 달랐다.
하루는 런던의 대표 번화가 중 하나인 리젠트 스트리트와 하이드 파크 사이에 위치한 메이페어 지역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아한 커브의 도로를 따라 늘어선 석조 건물이 운치를 더하긴 하지만 리젠트 스트리트를 가득 메운 인파를 피하고 싶다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비교적 덜한 뉴 본드 스트리트를 찾아들어 간다.
뉴 본드 스트리트 상점가는 길지 않다. 그러나 런던에서 가장 힙한 매장들 위주로 포진해 있는 유행에 민감한 거리이다. 그런 이유로 이 곳에 오면 런던의 트렌드를 단시간에 파악할 수 있다.
리젠트 스트리트에서 뉴 본드 스트리트 쪽으로 가기 위해 버버리 매장을 끼고돌면 영화로 인한 유명세가 여전한 상점, Huntsman&Sons을 만날 수 있다. 아들의 호기심 버튼을 잠재우기 위해 일부러 들른 이 건물에도 알 수 없는 이의 이름과 그의 이력이 담긴 플라크가 걸려 있었다.
메이페어 지역의 일부만 걸었을 뿐인데 거리 곳곳에 플라크가 걸린 건물이 매우 많았다.
선정 기준이 상당히 까다롭다더니 실제로는 남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트집을 잡다가도 이 나라의 특수한 역사에서 온 지난 시절의 족적은 차치하고라도 시대와 장소를 넘어, 분야를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 인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은 부정을 못 하겠다.
킹스맨 촬영 장소였던 양복점을 오른쪽에 두고 본드 스트리트 방향으로 조금 걷다 보면 유명 캐주얼 브랜드의 키즈용 매장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없는 브랜드지만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춰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올려다본 플라크에 낯익은 이름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비틀스는 이 건물 지하에 각 멤버들의 작업실과 스튜디오를 두고 있었다고 한다. 알려진 대로 그들은 해체 선언을 앞두고 팬들을 위해서 건물의 루프탑에서 전 세계 헤드라인 뉴스를 장식했던 그 유명한 비공식 콘서트를 감행했었다. 지금부터 50년 전에 일이었다.
역사에 남을 그들의 라스트 콘서트에 관해 언젠가 티브이에서 당시 실황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영상 끝에 사전 허가 없이 콘서트를 강행했던 그들을 제지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던 경찰들의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았었다.
세상을 뒤흔들었던 이들의 역사적인 공연의 클립 중 하나인 Don't let me down의 조회수는 지금도 수억 뷰에 달한다.
고개를 치켜올려 루프탑을 바라보다 이번에는 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적당한 인물을 찾아보니 5분 거리에 아이작 뉴턴의 흔적이 있었다. 물리학, 천문학, 수학 중 어느 하나라도 흥미 있는 분야가 있었더라면 파란색 플라크 앞에서 그 어떤 교감이라도 나눌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늘 그렇듯 아들 녀석의 다음 행동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그는 일말의 주저함 없이 걸음을 옮겼다.
뉴턴의 집 지척에는 쇼팽이 잠시 살았던 건물도 있었다. 참고로 외국인이라도 그 나라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거나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인물에게도 블루 플라크의 문은 열려 있다. 우리가 본 건물 전면에는 쇼팽이 런던을 방문했을 당시 머물렀던 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폴란드 출신 비운의 음악가는 시간이 갈수록 건강이 악화되는 상황이었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런던으로 건너와 연주회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 곳에 머물며 마지막 공연을 끝내자마자 파리로 떠났으며, 이듬해 가을 사망하였다.
빨리 꺼져버린 불꽃처럼 짧은 순간 치열하게 피어오르려다 쫓기듯 삶의 여정을 마무리한 이는 멀지 않은 곳에 또 있었다. 선명하게 새겨진 찰스 롤스라는 이름은 아들의 매의 눈에 먼저 포착되었다. 자동차라는 발명품을 단순히 ‘탈 것’ 이상의 가치 있는 무엇으로 여긴 적 없는 나의 눈은 결코 몰라보았을 것이다.
롤스로이스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찰스 롤스가 생전에 사무실로 사용했던 건물도 알고 보니 본드 스트리트 가까이에 있었다.
영국의 자동차 및 항공분야 선구자로 일컬어지던 인물은 안타깝게도 동력 항공기에 의해 사망사고를 당한 최초의 영국인이라는 족적을 남긴 채 32세에 생을 마감했다. 플라크를 바라보며 나의 아이는 곰곰 되짚어보더니 이 건물은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그가 머물렀던 곳이라는 추론을 보태어 주었다.
입 밖으로 쉽사리 내뱉을 수 있는 차종은 아니지만 롤스로이스 얘기를 하다 보니 에든버러에서 야간 슬리퍼를 이용해 런던으로 왔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런던에서의 첫 번째 아침이었지만 생각해둔 일정이 없었던 우리는 오전 나절을 셜록 홈스 뮤지엄에서 보내기로 했다.
기차역에서 빠져나와 베이커 스트리트를 향해 걸어가다 보면 드라마 셜록 홈스의 실제 촬영지였던 speedy's sandwich bar를 지나게 된다. 드라마 셜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곳이다.
하지만 아들 녀석은 나와는 다른 이유로 행복한 아침이었을 것이다. 셜록 홈스 뮤지엄 옆 골목에는 누군가에겐 설렘을 유발하는 로고가 표시된 플라크를 볼 수 있는 건물이 있었는데 이곳은 여행 전부터 아이가 꼭 가보고 싶다고 했던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자동차를 향한 애정이라니,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홈즈 뮤지엄에서 몇 걸음 안 떨어진 곳이라 함께 움직여 주었다. 외형은 주거용 건물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곳은 월터 벤틀리에 의해 1호 벤틀리가 태어났던 곳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3·1 운동이 일어났던 해였다.
밤새 덜컹이는 야간열차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는 이날 아침 평범하기 그지없는 어느 낯설고 조용한 골목에 섰다. 좀 전까지 지난밤의 고단한 잠자리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던 녀석은 아마도 100년 전으로 돌아가 명차 탄생의 순간을 그려보는 행복감으로 피곤함이 말끔히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이는 한동안 동그란 명패 앞을 떠나지 못한 채 무수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메이페어 지역의 극히 일부분만 다녔음에도 꽤 많은 인물들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난 이들 중 나란히 자리한 건물에 살았던 적이 있는 두 명의 음악인도 인상적이었다. 찰스 롤스의 플라크를 만난 곳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브룩 스트리트에 가면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음악 교과서를 통해 초상화로 처음 접했던 퍼루크를 착용한 채 표정만은 근엄했던 헨델은 어린 나에겐 기괴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인상을 심어 주었다. 난해한 헤어스타일만큼이나 그의 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므로 ‘음악의 어머니’라는 단순한 주입식 정보를 멋대로 조합한 나머지 한동안 나는 음악가 헨델을 여성 음악가로 오인하였다.
나의 무지함이 낳은 어처구니없음에 대해 뒤늦은 사과의 말이라도 전할 생각이라면 먼저 그의 이름과 더불어 마지막 숨을 거둔 장소임을 나타내는 플라크가 붙은 건물을 찾아가야 했다. 그렇게 닿은 곳에서 또 다른 플라크 하나가 더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헨델이 생을 마감했던 생가 옆집은 지미 핸드릭스가 반짝반짝하게 살다가 의문의 죽음으로 짧은 생을 마치기 전 잠시 머물렀던 곳이었다. 그를 잃은 비통함에 괴로워하던 빅팬들이라면 브룩 스트리트에 있는 그의 플랏으로 누구보다 먼저 다녀갔을 것이다.
2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음악사에 족적을 남긴 두 거장이 머물렀던 건물이니 예사로운 건물은 아닐 듯싶다. 누군가는 이러한 우연을 그냥 두지 않았을 거라는 예상은 했다. 해당 건물에는 음악의 어머니와 기타의 신을 버무려놓은 뮤지엄이 그들을 흠모하는 사람들과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런던을 향한 그들의 애정 어린 관심이 없었다면 블루 플라크의 시작도 없었을 것이다.
이야기꾼들의 후예답게 그들은 미래 세대에 전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가려내어 스토리를 입혔다. 이것은 도시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유형 혹은 무형의 자산이자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이런 성과는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원칙을 세우고 지켜나가려는 관리 체계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의 결과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시는 그 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같은 런던의 블루 플라크는 영국은 물론 전 세계 몇몇 도시에서 시행하는 유사한 제도가 영감을 주고 있다고 한다.
런던은 당신에게 심심할 틈을 결코 주지 않을 테지만 만에 하나 당신이 런던에서 이렇다 할 목적지 없이 하루를 보내게 되더라도 낙담은 금물이다. 런던 전역에 산재해 있는 플라크를 따라 거리를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와 당신 사이의 간극은 몰라보게 좁아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플라크에 적힌 인물과 그들의 삶의 궤적을 쫓다 보면 그들의 인생, 나아가 나에 대한 이해의 지평도 차츰 넓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며, 그 과정에서 모르고 있던, 혹은 잊고 지내던 나의 취향을 재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편 아이들을 도심 여행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적인 면에서도 블루 플라크는 훌륭한 역할을 수행해낼 준비가 되어 있다. 조금 큰 아이들과 동반할 경우 지역을 특정하여 놀이를 하듯 블루 플라크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플라크에 적힌 이름과 한정된 정보가 아쉽다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추가적인 정보를 그 자리에서 얻을 수도 있다.
나아가 문학, 철학, 예술, 의학, 정치 등 분야를 특정해 보는 것도 시도할 수 있다. 자녀 혹은 가족들의 관심 분야 혹은 평소 좋아하는 인물이 구체적일 경우에는 우리들만의 동선으로 유일무이한 런던 투어를 계획하고 실행할 수도 있다. 이 또한 블루 플라크가 가능하게 도와줄 것이다.
런던이라는 도시에 대한 이해의 폭은 물론 나의 인문학적 소양을 묻는 다면 앞서 언급한 대로 하염없이 얕고도 하찮다. 다만 실내 전시관이나 박물관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세상 번잡스러운 아들 녀석과 함께 도심 여행을 하면서 마냥 걸을 수 없었으므로 일종의 액티비티로 블루 플라크를 이용한 것뿐이었다. 이것은 블루 플라크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특별한 도시인 런던이기에 가능한 놀이였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대부분의 플라크는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훌쩍 큰 아이가 지난 시절 가족들과 함께 동그랗고 파란 명패를 가리키며 거닐던 숱한 거리를 다시 마주했을 때 함께 했던 추억을 잠시라도 기억해준다면 행복할 것 같다.
여행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혹자는 이해를 못할 수 도 있겠지만 이렇다 할 목적지나 빽빽하게 채워진 일정표가 없어도 다채롭고 풍성한 도심 여행은 가능하다.
걷기 여행이 수월한 도시에서는 별다른 목적지가 없어도 느린 걸음으로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