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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빅 Jan 25. 2019

놀이터 갔다가 놀이터를 간 다음,  놀이터로 간 이야기

런던ㅣ아이들이 낯선 세상과 '트는' 방법

아이들은 놀이터를 찾아내는 능력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 분명하다. 신통방통한 능력은 집을 떠난 낯선 길 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가 있는 곳이 도심 한가운데 건, 작은 시골 마을이건 간에 그들의 출중한 능력은 어김없이 발현된다. 덕분에 나는 녀석과 함께 한 여행길에서 무수한 랜드마크들을 사뿐히 뛰어넘은 후 서너 발자국쯤 떨어진 놀이터 벤치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아이 손을 맞잡고 떠난 길 위에서는 마음을 비우고 일정표 곳곳에 ‘빈칸’을 적지 않게 만들어 놓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이 처음인 아들이 가장 먼저 만났던 도시는 런던이었다. 나는 사전에 캠든 지구 블룸즈버리 인근의 대학가에 위치한 기숙사 한 곳을 숙소로 정해두었다. 블룸즈버리는 개인적으로 애정해 마지않는 동네이기도 하다.


숙소 주변에는 산책하기 좋은 공원들이 차고 넘쳤다. 스퀘어 혹은 스퀘어 가든이라 불리는 영국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그것이다. 말 그대로 단순한 네모 모양의 이 평범한 공원들 중에는 생전에 찰스 디킨스가 자주 산책한 것으로 알려진 곳도 있고, 버지니아 울프의 책 구절에 등장하기도 했던 그녀의 집 앞에 있는 조용한 스퀘어도 포함되어 있다.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 소설에서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던 스퀘어 또한 몇 걸음 만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여행에선 그것들 중 한 곳도 가볼 수 없었다.


 




내게 허락된 공원이라곤 숙소였던 런던대학교 기숙사 건너에 있던 어린이 공원이 유일했다. 코람즈 필즈라는 이름의 공원은 런던 중심가에서 있는 꽤나 넓은 부지의 공원이긴 하나 현대적 시설을 갖춘 말끔한 공원과는 거리가 있었다.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진 어린이 특화 공원이었다.






공원 곳곳에는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흩어져 있었다. 나의 손을 잡아끌고 공원 입구에 들어선 아이는 망설임 없이 미끄럼틀을 향해 질주했다. 미끄럼을 쉼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애써 땀부터 내는 것이다. 그 다음 행동은 불보듯 뻔했다. 그네에 몸을 맡긴 채 숨을 고르며 얼마간 쾌속 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이 마저 심드렁해지면 이번엔 공원 한쪽에 있는 동물 사육장을 기웃거린다. 공원 관리 아저씨께서 동물들에게 먹이 주는 광경이라도 눈에 들어오면 아저씨의 의사와 상관없이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반 참견반 거든다.


그 끝은 늘 비둘기 골려주기였다. 아저씨 손에서 흩뿌려진 모이를 쪼아대던 비둘기들은 짓궂고 성가신 침입자의 출현으로 혼비백산하며 흩어지기 일쑤였다.


곳곳을 탐색하며 놀잇감과 탈것들을 두루 섭렵한 아이가 유독 오래 머물렀던 놀이기구는 단연 플라이어였다.


"나랑 삼세판 어때?"

"뭐, 좋아!"


플라이어에 도통한 듯한 동네 꼬마가 기세 좋게 내기를 제안했다. 꼬마는 이제 막 낯선 땅에 발을 디딘 또래 친구에게 일말의 양보 따위를 베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놀이터를 종횡무진하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니 비로소 가을이 내려앉은 런던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부잡스러운 여행 파트너 덕분에 차 한잔 들고 켜켜이 쌓인 낙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른 한쪽에선 숨바꼭질 놀이에 한창인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귀여운 소녀는 분명히 보았다. 휴지통 뒤에 감쪽같이 숨어있는 아빠와 엄마를. 힐끗 쳐다보고도 능청스럽게 눈길을 피하던 소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콧잔등을 찡긋해 보였다.


플라이어 2차전의 상대는 공원에서 홀본 거리에 살고 있다던 이 소녀였는데 눈치 없게도 녀석은 기어이 소녀를 이겨먹고 말았다. 게다가 좀 전에 치러진 1차전의 설욕을 만회한 것에 대해 뿌듯해하며 어깨를 한껏 추켜 세웠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녀석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바로 옆에 있는 축구장이었다. 유니폼을 맞춰 입은 아빠와 아들이 자못 진지한 자세로 기술 전수가 한창이었다. 


당시 아들 녀석 또래의 남자아이들에게도 축구는 진리요, 모든 것. 아이가 발끝에 공을 대고 싶어 안달하는 것을 본다면 운동장을 누비는 이들에게 함께 할 수 있는지 예의 있게 청해볼 것을 권해도 좋다. 좋아하는 일 앞에서는 낯가림도 이겨내는 용기를 끄러 낼 줄 아는 아이의 모습을 볼 가능성이 크다.


아이와 동행할 경우엔 어디서든 먼저 호의를 베풀어주는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된다. 특히나 친절한 사람들이 많았던 런던이 첫 도시라는 것은 다행이었다.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가볍게 몸을 풀 요량으로 들른 놀이터에서 녀석은 매번 양껏 그리고 제대로 한판 놀아재낀 후 잔뜩 상기된 볼을 하고서야 공원을 벗어났다. 한나절이 찰나와 같이 지나갔다.


파리에서는 놀이터에 더하여 공원과 곳곳에서 만난 광장이 주요 공략 대상이었다. 6구에 있던 우리의 숙소를 빠져나오면 남쪽의 뤽상부르 공원까지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었다.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탁 트인 시야를 보며 숨 고르기를 한 다음 한편에 있는 나무숲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커다란 나무숲길에서 몇 걸음 떼다 보면 마음속 초침도 우리의 걸음처럼 느릿느릿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파리에 머문 지 서너 날쯤의 어느 날, 나는 녀석을 데리고 자못 비장한 각오로 퐁피두를 찾았다. 앞선 날에는 마레지구, 특히 보주 광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느라 예정했던 루브르를 단념해야 했다. 이어진 다음날은 오르세 야간 관람이 가능한 날이어서 밤의 오르세를 보여주고 싶었으나 녀석은 일몰 후에 애써 성사시킨 인상주의 화가들과의 조우는 단칼에 거부했다. 대신 오르세 근처에 있는 갈빗살 스테이크를 내어주는 레스토랑을 선택했다.


루브르와 오르세는 아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당시 퐁피두에서는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전시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꺼낼 일이 없었던 뮤지엄 패스까지 챙겨서 나서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빗나갔다. 아이는 퐁피두 입구로 이끄는 나의 손을 뿌리친 다음 광장의 군중 속에 섞여 미동도 않은 채 프리스타일 풋볼 퍼포먼스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간이 날때면 산책처럼, 여행처럼 크고 작은 전시관을 찾았다. 밀폐된 공간을 답답해하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들어선 전시관에서 단 한 점 만을 눈에 담고 돌아 나오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초등 중학년쯤 되자 비로소 아이는 관심이 가는 전시의 경우 전시 내용에 몰입하며 관람을 스스로 끌고 가는 힘이 생기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들 무슨 소용인가. 그간의 노력이 무색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퐁피두 광장의 풋볼 퍼포먼서가 아이에겐 우선이었다. 지금도 나는 강한 자기력으로 아이를 당기는 모든 것들은 죄다 미술관 밖 세상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왕왕 잊어버리는 실수를 범한다.  


퐁피두는 입밖에 내지도 못하고 녀석을 따라 파리 이곳저곳을 휘적휘적 옮겨 다녔다. 걷다 보니 옛 모습 그대로라 정겨웠던 몽토게이 거리였고, 돌아 나오니 프렌치 비스트로와 예쁜 카페가 즐비한 레알의 골목, 골목들이었다.


이어 다다른 곳은 인근에 있던 레알 역 앞 광장이었다. 그곳은 어렴풋이 떠오른 나의 기억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넬슨 만델라 정원>이라는 명패가 붙은 정원이 조성된 지 몇 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정원 한쪽에 멋진 놀이터도 있었으나 정비 중임을 알리는 팻말과 함께 닫힌 채였다. 놀이터 앞에서 서운함을 표시하는 것도 잠시, 아이는 어느새 공원을 노니는 새들과 함께 였다. 넬슨 만델라 정원에는 포럼 데 알에 쇼핑하러 들른 10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리를 쉬어 가기도 했으며, 편한 차림으로 외출한 가족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정원과 광장을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은 어느새 무리가 되어 같은 방향으로 우르르 움직이고 있었다. '새들 골탕 먹이기'이라는 공통분모로 의기투합한 듯 합심하여 애꿎은 새들을 뒤쫓고 있었다. 무리를 지어 날아오르다 내려 앉기를 반복하는 광장의 새들과 그들을 쫓는 것인지 함께 뛰어다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인지 알 수 없는 아이들이 똑 같아 보였다. 


한편에 오도카니 앉아 눈으로 아이들을 좇고 있는 나 옆에는 나란히 앉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던 부부가 있었다.


"파리 살아요?"

"아뇨, 아들과 여행 중이에요. 파리가 처음인 아이는 이곳이 마음에 드나 봐요."


두 시간 째 콘크리트 벤치에 앉아 벌서고 있는 나를, 집 앞 마트에 나온 행색이라면 모를까 어디 하나 여행자라는 힌트를 얻기 힘들었을 나의 차림을 보고 던진 물음이었을까. 그들은 미 동부와 파리를 오가며 지내다 최근 파리에 정착했다는 미국인 부부였다. 그들의 아이들 역시 나의 아들 처럼 광장을 헤집고 다니던 한 무리에 아이들에 섞여 있었나 보다.  

 





공원을 쏘다니던 아이들은 이윽고 방향을 틀어 공원 끄트머리에 자리한 조각상으로 몰려갔다. 조각상 위로 기어오르는 아이 뒤에는 여행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압도적인 외양을 한 성당이 버티고 있었다. 고딕과 르네상스가 조화를 이루었다고 쓰여 있었으나 웅장한 외관에 덧입혀진 다소 과한 치장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좀 전에 벤치에서 얘기를 나눴던 부부도 어느새 아이들을 따라 성당 앞에 와 있었다. 목을 빼고 성당을 올려다보는 내게 아이의 엄마는 앞에 있던 생 뙤스타슈 성당에 대한 정보를 풀어주었다. 일요일까지 파리에 머물 예정이라면 해지기 전에 들러 근사한 오르간 연주 듣는 것을 시도해보라는 얘기를 내게 건넸다. 오르간 소리가 가히 환상적이라고 했다.


"성당 안 어느 곳에 키스 해링의 작품이 있다면 믿겠어요?"


머릿속으로 성당 내부를 휘감는 오르간 소리를 상상하고 있던 내게 키스 해링이라는 이름이 날아와 꽂혔다. 그녀는 내게 16세기에 지어진 성당 안에 팝 아티스트의 흔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흠 글쎄... 마티스나 샤갈이라면 모를까... "


반문하는 내게 웃으며 아이와 함께 나중에 찾아보라 일렀다. 


성당 밖에서 노는데 정신이 팔린 아이 손을 잡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실제로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바로 앞에 있던 생 슐피스 성당은 영화화되기도 한 베스트셀러인 다빈치 코드에서 이야기 초반에 결정적인 증거물을 보관한 장소로 등장하여 유명세를 탄 곳이기도 하다. 기대와 설레임으로 성당안을 들어가 볼 기회만 엿보고 있었지만 아들 녀석과 함께 성당 앞 광장에 무수한 족적만을 남긴 채 마찬가지 이유로 가볼 수 없었던 것이다.


조각상 꼭대기에 오르려는 아이들의 발짓에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고 있는 성당 앞 조각상은 강렬했다. 머리와 그 머리를 받치고 있는 손을 표현한 앙리 드 밀레의 조각상은 묵묵히 그 자리에서 관광객들의 인증샷 배경이 되어주고 있었다.


종일 거리의 공원과 광장에서 시간을 보낸 아이와 나는 기울어지는 해를 등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부은 다리를 두드리며 잠을 청했던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놀이터를 논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모든 액티비티가 총망라된 스위스를 빼놓을 수 없다. 피르스트를 향하던 날, 정상에서 플라이어로 이동한 후 얼마간 트레킹을 하며 내려오다 보니 기다렸다는 듯 고지대 중턱에 놀이터가 나타났다. 알프스 고봉을 눈앞에 두고 그네를 타는 기분이란 피르스트 정상에서 플라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찰나의 짜릿함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아이거 북벽의 파노라마 속으로 빨려 들 듯 가까이 갔다가 뒤로 물러가기를 반복하던 아이는 내내 탁 트인 공간 속을 날고 있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알프스의 파노라마 뷰를 가장 멋진 방법으로 감상할 줄 아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놀이터 패거리는 그린델발트와 가까운 보트 역에서도 급하게 결성되었다. 통성명 따위 보다는 그들만의 놀이 규칙을 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진지하고 열렬하게 놀이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넘실대던 보트 역의 레스토랑에 마음을 빼앗겼던 나와는 달리 녀석은 재미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놀이터가 더 끌렸던 것이다.   


판을 깨긴 싫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더 늦는다면 아랫동네까지 트로티라 부르는 무동력 바이크를 이용해 내려가기로 한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은 후에야 녀석은 자리를 털고 다시 길 위에 섰다.


아이들은 탁 트인 놀이터에서 혹은 초록의 공원에서 숨이 목 끝까지 차도록 깔깔대며 뛰어다니며 감각을 일깨운다.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들만의 규칙도 만들 줄 안다. 놀이를 하면서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함께 하는 법도 배운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이긴 친구에게 박수를 보내는 아량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는 한편 속상해하는 친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는 법도 익힌다.


그뿐만이 아니다. 낯선 공기를 폐부 가득 들여보내면서, 처음 밟아보는 땅 위에서 수없이 발돋움을 하면서 둘러싸인 낯선 환경에서 오는 불편함과 어색함을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깨뜨린다. 


이것이 아이들 만의 방식으로 여행길에 만난 새로운 세상과 '트는' 방법인 것이다.






여행길에 방향을 틀어 놀이터로 질주하는 아이를 애써 만류할 필요는 없다. 한편에 앉아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하마터면 놓칠뻔한 포인트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도 여행길에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란 없다. 사방에 웃음을 뿌리면서 놀이터를 가로지르는 아이의 벅찬 들숨 날숨은 먼 훗날 여행지에서의 좋은 기억으로 마음속 어딘가에 분명 들어차 있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어렸던 그때의 내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주던, 놀이터에서 노는데 열중하느라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나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나의 아빠 혹은 엄마도 함께 떠올려주지 않을까.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날 문득,  한순간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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