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홍 Sep 25. 2020

편안함의 필요충분조건을 구하시오.

 (4점)

잠시 지쳐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휴지기를 갖는 동안 특별히 많은 것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긴장을 놓고 편안해지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힘을 쭉 풀어두고 싶었을 뿐인데 휴식조차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달려가다가 지쳤으니 잠깐 숨을 고르자는 지극히 단순한 의도로 시작한 계획조차 완전히 어그러졌다. 그 끝에 남은 나는 그냥 무기력하고 우울한 사람일 뿐이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모양이 겉보기에 고요해 보였을지 몰라도 속시끄러운 마음은 전혀 고요하지 못했다. 안녕하지도 못했다. 차라리 공사가 다망하고 약간의 긴장을 유지하고 지냈던 때가 더 활력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편안함의 본질이 이런 것이었을까.








다름 아닌 그저 균형을 원했다. 마음과 몸이 ‘안녕’할 만큼의 딱 적정한 농도로 배합된 긴장과 이완 그 사이 어딘가의 상태를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그 균형이라는 것을 찾고 유지하기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몇 년을 노력해도 아직 그 무게중심을 찾지 못했다. 삼각형의 한 꼭짓점과 그 대변의 중점을 이은 세 개의 선분이 만나는 지점을 찾으시오. 짚어보려 했던 그 점이 있는 곳은 하나의 좌표로 특정되지 못했고 여전히 근사치로만 느끼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무게중심 주변일 어느 지점 아래에서 그것을 지탱하는 날카로운 바늘 같은 지지대가 조금만 흔들려도 그 위에 놓인 얄팍한 삼각형은 금세 바닥으로 와장창 떨어져 버리고 만다.






편안해지자, 힘을 빼자, 눈을 감고 셋만 세자, 모든 걱정과 불안을 잊어버리고 마치 아무 근심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굴어보자... 그 끝에 무엇이 남을지 작은 실험을 해 보았는데 결국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끝도 없이 침잠하는 몸과 마음뿐이었다. 몸은 힘이 빠져 자꾸만 누우려고 하고 마음은 그 무엇도 생각하고 느끼려 하지 않았다. 한시에 한 번은 꼭 움직이고 가만히 늘어지는 것을 싫어하던 몸은 네가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부지런 떠는 사람이었냐는 듯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늘 다음 할 일을 계획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며 어제와 다른 궁금증을 내놓고 또 그것을 바지런히 해결해 오던 마음은 제멋대로 병가를 내고 퇴근해버렸다. 몸과 마음이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면 그대로 더할 나위 없는 안식이 찾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가 편안함이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편안해지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왜냐하면 마음이 평소에 하던 중요하고 또 재밌는 일을 모두 멈추는 대신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답 없는 질문들만 내어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거 잘 안 되는데 이유가 뭐야? 지금 네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네가 부진한 이유가 너 때문이야, 상황 때문이야?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합리화하는 게 너한테 도움이 될까? 이거 왜 시작한 거야? 계속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네 인생에서 이게 빠지면 뭐가 남아? 그대로의 너도 괜찮은 것 같아? 아니라면 네가 괜찮을 수 있는 다른 근거는 뭐야?... 그 질문의 끝에 도달해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질문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도 나는 내가 왜 종전처럼 열심히 몸을 쓰고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 대답하지 못했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작은 실험을 마치고 나니 이렇게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질문 형태의 결론이 도출되었고 이내 몸과 마음을 쓰는 일을 포기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해야 할 것도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파업을 하고 대자로 드러누웠다.






한참을 맥없이 있다가 몸을 일으켜 청계천을 따라 오래, 아주 오래 걸었다. 마음먹고 걷기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걷다 보니 하나의 도전이 되어 끝까지 걸었다. 걷고 있는 내 몸이 느껴졌다. 점점 아파오는 발바닥과 뻐근해지는 다리의 감각을 바라봤다. 한강이 보일 때까지. 시야가 하늘색에서 파란색으로, 장미꽃잎 띄운 홍차 색으로, 물 탄 듯 연한 남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다 가느다란 초승달을 만날 때까지. 이제 막 피어난 얇은 달조각은 금세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왼편 하늘에는 아주 밝은 별이 떴다. 저 별을 보라고 말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건 인공위성 아니냐고 했을 정도로 밝은 별이었다. 그게 진짜로 뭐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 날 토성과 목성을 본건 확실했다. 별이 잘 보이는 곳에 살고 있는 이에게 지금 토성과 목성이 떴다고 연락했다. 그는 맞는 것 같다고 대답하며 같이 남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와 같이 있으면서 따로 있었다. 긴 걸음을 조금 빠르게 걸으며 누구도 만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쳤다. 다들 혼자이거나 둘셋이었고 걷거나 뛰고 있었고 아무 생각도 안 하거나 어떤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렇게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아무렇게나 섞여서 흘러가는 대로 걸으면서 근 며칠간의 작은 실험에 물음표가 아닌 온점을 찍었다. 그리고 피곤한 탓인지 그날 밤은 팔다리를 꼼지락대며 대자로 만들어 시위 대열을 짜기도 전에 깊은 잠에 빠졌다.

그렇게 일찍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은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하늘은 어제보다 맑았고 아침 공기는 아주 조금 더 차졌다. 무언가에 홀린 듯 다시 밖에 나가 어제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었다. 어떤 것은 어제와 같았다. 또 어떤 것은 어제와 너무 달랐다.






좋은 실험설계를 하려면 질문을 잘 던져야 한다. 그래야 연구자의 궁금증을 제대로 해소할 수 있다. 편안함의 조건이 무엇일까라는 틀린 질문으로 시작한 실험은 며칠간 나를 실패자로 만들었다. 편안함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찾다 보니 내가 놓인 그 어떤 삶과 상황도 편안함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일단 눈을 뜨면 문 밖으로 나서서 강변을 걷는 저 사람들 속에 섞여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앞으로의 시간들이 그저 반복되는 끔찍한 날들의 연속에 불과하더라도 그 속에서 어떤 변화와 또 어떤 한결같음을 동시에 발견하고 느낄 수 있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 의심의 병리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