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비생산적인 시간의 기록
퇴사를 했다. 브런치 피드를 5분 정도만 둘러보아도 퇴사한 작가들이 남긴 소회와 욕지기와 후련함이 담긴 글 몇 편을 만나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무실로 출근해서 업무 보다가 중간 중간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면 브런치 피드를 기웃거리곤 했는데 꽤나 자주 퇴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눈에 띄었던 기억이 난다. 퇴사에 대한 글을 볼 때마다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면서도 그것이 곧 나에게 닥칠 현실이 되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직장생활 경험이 그리 많거나 길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입/퇴사는 늘 정확히 내가 계획하고 예상한 타이밍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미리 생각해 둔 시점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예기치 못하게 1년 정도 빨리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어서 여러가지로 복잡한 마음이 든다.
출근 없이 맞이하는 첫날 아침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내가 지금 조금 평소와 다른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집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 와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아니면 오늘이 새해의 두 번째 날이라서 그렇다거나. 혹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사실이 어쩐지 이상하고 적응이 안 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뭔가 평소같지 않은 이 느낌이 무엇일지 알아내고 수용하려 애써본 결과 오늘은 어쩌다 하루 휴가를 쓴 날과 같은거야, 지금 이 느낌은 그런 거랑 비슷한거야, 라고 스스로를 이해시킬 수 있었다. 언제나의 휴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끝이 없다는거였다. 휴가는 언젠가 끝나지만 헤어짐은 끝이 없으니까.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잘 보내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이야길 많이 듣는다. 그것은 내 주변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다가 떠나고야 마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상담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일에 있어서도 그렇다. 사무실에서 매일 만나지만 특별히 속이야기를 꺼내어 나누지는 않았던 그저 그런 관계들에 있어서도 잘 만나고, 잘 헤어지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것은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하고 있던 업무와 하루 일과와도 작별을 해야 한다. 아마도 다시는 그와 같은 일상을 보내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하게 되더라도 다른 장소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주 다른 경험이 될테니까. 그래서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이런 식'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도 이번이 이 마지막일거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아쉬워진다. 힘들때는 그렇게나 버거워했으면서. 매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각도로 움직이는게 미치도록 지겨울 때면 어떻게 이 일상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을지 그렇게 고민했으면서. 사람 마음은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쩌면 조금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는 어느 슬로건처럼 내가 하는 일이 나를 만들어 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일을 하지 않는 나는 적어도 어느 정도는 내가 아닌 것이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는 나, 주어진 상담을 해 내는 나, 누군가가 일을 못 하게 되었을 때 그 일을 대신 해 주곤 하던 나, 무언가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나. 나는 몇몇 순간에는 적어도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찾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요구에 응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건 꽤나 무기력해지는 일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매일의 관성에 내 몸과 마음을 맡긴 채 하루 하루 흘려보내더라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대로 움직이더라도 나는 쓰임새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적극적으로 찾지는 않더라도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모든 의무를 내려놓았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나는 적어도 어떤 측면에서는 하나도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런 한편 놀라울만치 빠른 속도로 나의 무쓸모에 적응해 가는 내 모습을 만나기도 한다. 지금도 봐, 퇴사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아간다는 바닷가로 달려와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이 한다는 행동은 하나씩 다 해보고 있다. 기차를 타고 동해바다로 와서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대충 패딩 점퍼만 걸쳐 입고 일출을 구경하러 해변으로 나갔다. 먼바다에 아주 진한 구름이 잔뜩 껴서 꼭 산마루에서 해가 솟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구름 탓에 햇빛은 원래 일출 예정이었던 시간보다 오 분 가량 늦게 터져나왔다. 일출을 보고 도로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을 샀다. 주인 아주머니는 오늘 구름이 많아 해가 잘 안 떠오르지 않았냐며, 구름이 그리 두껍게 끼지 않는 날이면 해가 아주 예쁘게 떠오른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매일같이 지겹도록 일출을 볼텐데도 예쁜 구석이 남았나, 속으로 혼자 생각하는데 이런 내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날이 좋을 때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정말 아름답다고 거듭한다. 마치 단지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뾱! 하고 해가 올라온다고. 아주머니의 마음 속에 있는 '단지'는 어떤 단지인지 잠시 상상해보았다. 꿀단지일까? 꿀단지에서 투명하면서 노오란 꿀을 수저로 푹 퍼올릴 때 그려지는 곡선, 밑으로 뚝, 뚝 떨어지는 달콤함 같이 퍼지는 장밋빛 햇살 같은 것들을 눈 앞에 그려본다. 정말 그렇겠어요. 다음에 오면 꼭 그걸 보고 싶어요. 돌아오는 길에는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 자리를 잡고 앉을 카페를 물색해 보았다. 아침식사가 되는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미리 봐둔 카페의 바다 바로 앞 명당 자리를 차지했다. 꼭 파도가 높아지기만 하는 곳을 곁눈질하면서 파도가 하얀 황소처럼 몰아친다는 생각도 반복한다. 혹시 황소 말고 더 나은 비유는 없을까? 해가 뜰 때부터 눈을 뜨고 있었는데 떠오르던 해는 어느샌가 머리 뒤편으로 사라지고 눈 앞의 그림자는 점점 더 길어진다. 그런데 아무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 내가 하는 것들은 전혀 생산적이지가 않다. 매섭고 퍼런 겨울 바다를 아무 의미 없이 쳐다보며 거기에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이런 저런 심상들을 마음대로 투영시킨다. 바다는 거친 짐승이었다가 묵직한 산이었다가 포근한 침대였다가 한다. 나처럼 그 바다를 자기들 마음대로 즐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구경한다. 강아지를 데리고 해변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정신없이 누비는 견주, 여자친구를 안아 올린 채 한참을 놓지 않고 베스트 샷이 찍히기를 기다리는 남자친구, 삼각대를 세우고 바다를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는 사람, 가만히 앉아 아마도 같은 곳일지 모르는 어떤 지점을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들. 내가 나의 쓸모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쓸모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떤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도 바로 내 눈 앞에서, 나만 모른 채로. 내가 앉아 있는 이 곳의 그림자는 내 발밑에서 시작되어 모래사장을 지나 바닷물에까지 뻗어간다. 그림자는 점점 더 길어진다. 바다가 그림자를 완전히 삼키는 순간 오늘 하루도 저물 것이다. 거기엔 어떠한 의무도 합당한 이유도 없다. 내가 그냥 지금 여기까지 어찌저찌 밀려들어와서 파도와 그런 파도에 홀린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게 된 것에도 그리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이제 해가 떴던 자리 바로 위로 하얀 달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