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위스 여행 01. 떠나자

Switzerland Tour

by okayjjang

스위스, 가자


시작은 가벼웠다.


지난가을인가 겨울 즈음, 오랜만에 만나 함께 저녁 먹다가 두두둑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여행 가고 싶다.'

'가면 되지.'

'어디?'

'어디든!'

'텐트 밖은 유럽 봤어?'

'나 유럽 가고 싶어.'

'툰호수 멋지더라.'

등등.

그렇게 여행지는 스위스가 되었다.

기간은 열흘에서 보름 정도, 출발 날짜는 각자의 일정을 조율한 다음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인터라켄 아레 강: The Aare at Interaken

사과 과수원 일이 조금은 한가할 때, 꽃집의 연중 두 번째 피크 타임이 지나고 세 번째가 오기 전에, 여러모로 집안일로부터 손을 잠깐 놓을 수 있을 때, 아이들이 엄마를 덜 찾을 때,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을 때 등 각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날짜는 6월 20일경 출발로 정했다. 단, 6월 30일까지는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 하에.


설이 지나고, 바쁜 일이 정리가 좀 되어 갈 즈음, 구글 맵에서 스위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스위스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취리히 공항, 체르마트, 마터호른이 전부였다. 2007년 7월 첫 해외 원정 산행지가 몽블랑과 마터호른이었다.


몽블랑, 2007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취리히 공항으로 들어가 프랑스 샤모니로 이동했다가 스위스 체르마트로 갔다. 당시 몽블랑 등정 후, 가능하면 마터호른도 올라보자고 으쌰으쌰 했으나, 산 친구들 모두 체력이 바닥난 터라 회른리 산장까지만 가볍게 산책을 다녀오는 것으로 산행을 마무리했다. 보름 남짓 일정에 사천 미터 급 산 두 개를 등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터호른, 2007


그때 세 번째로 유럽을 오면 렌터카로 두루 돌아보고 싶다는 얕은 결심을 했다. 첫 번째는 동유럽 5개국 버스 투어였다. 목적지까지 차에 실려 다니기보다는 언제든 마음대로 핸들을 꺾고, 어디든 브레이크를 밟아 하늘을, 산을, 그네들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풍광을 구경하고 싶었다. 얕았던 생각이 단단한 결실을 맺기까지 15년이 걸렸다.


스위스 알프스(Switzerland Alps) 아펜첼, 2023


여행 멤버 확정


인원은 다섯 명, 위아래 대충 계산하면 평균 연령 50세.

예산은 항공권 포함 1인당 500만 원 선.

아, 5자가 많았군. 오~ 멋진 여행이 되려나 봄.


다섯을 나이 순으로 펼치면 희, 선, 현, 수, 은(성과 이름 중 겹침이 없는 가운데 글자를 고름). 관계는 수를 기준으로 오라버니 친구의 형수 희, 오라버니의 아내(올케 언니) 선, 나이 터울 많지 않은 막내 삼촌의 아내(막내 숙모) 현, 막내삼촌 친구의 아내 은. 모두 같은 고등학교 출신 선후배인 셈. 다만, 그 시절엔 이렇게 같이 밥 먹고, 여행 다니는 사이가 될 줄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먼 타인이었다. 이제는 어느새 제법 가까운 지인.


여행 동반자 캐릭터 고르기: 순서대로 은, 현, 수, 선, 희


항공권 예약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자유 여행을 전제로 했으니 알아봐야 할 것들이 많았다. 우선은 항공권을 고르고, 그다음은 렌터카를 정하고, 그다음은 대략적인 여행 일정을 짜고 그에 맞춰 호텔을 예약해야 했다.


우선 비행기는 대한항공으로 정했다. 목적지까지 한방에 날아가고 싶었고, 예약 시점이 출발 시점보다 3개월 이상 앞선 터라, 경유나 직항이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다. 대한항공의 스위스 취리히 직항은 매일 있지 않았다. 화, 목, 토 일주일에 세 편이 있었다. 그리하여 여행 출발일자는 6월 20일 화요일로 확정되었다. 돌아오는 날짜 또한 항공편에 맞춰 29일 토요일 스위스 출발, 30일 인천공항 도착으로 정해졌다.


렌터카 예약과 국제면허증 준비


날짜를 정했으니, 다음 순서는 렌터카 고르기였다. 항공 회사 사이트에서도, 여러 여행 사이트에서도 호텔, 항공, 렌트 예약을 병행하였으나 렌트는 전문 사이트를 이용했다. 몇 개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예전에 일본 홋카이도 여행에 이용했던 rentals.com 사이트에서 차를 골랐다.


사람이 다섯 명이고, 각자 열흘 동안 사용할 짐이 있으니 큰 캐리어는 하나씩 챙길 터, 일단 5인승 이상의 SUV이면서 카고가 넓어야 했다. 후보군은 아우디 Q7 or Q8, 볼보 XC60 or XC90, BMW X5 or X7, 폭스바겐 투아렉이었다. 렌터카 사이트에서 큰 차로 보여주는 익숙하지 않은 브랜드 차량은 제외했다.


후보군을 정해 놓고선, 시내외 운전할 때마다 눈에 띄는 SUV들의 카고 크기에 눈을 떼지 못했다. 5명의 캐리어가 다 들어가는 차가 과연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일본 여행할 때는 6명이 7인승을 렌트했는데, 카고에 캐리어가 3개밖에 들어가지 않아 차 안으로 캐리어를 넣는 바람에 이동할 때마다 불편했던 기억이 있었다. 여러 날 여행을 할 거라 짐 때문에 차에 앉는 자리가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커다란 밴을 몰고 다니는 것도 입맛에 맞지 않았다.


캐리어는 28인치 3개, 26인치 1개, 20인치 1개였고, 노트북용 백팩 1개였다. 각 캐리어별 실제 사이즈를 재서 차량별 카고 사이즈에 맞춰 그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엉뚱한 일에 기운 빼는 짓 같아 포기하고, 실제 가져갈 캐리어 2개를 제네시스 GV80에 넣어 보고, 나머지 캐리어들이 들어갈 여유공간이 충분할 것 같다는 가늠 치를 가지고, 제네시스보다 카고 사이즈가 큰 SUV를 골랐다. carsized.com 사이트에서 후보군 차량들을 입력하게 카고가 제일 큰 폭스바겐 투아렉으로 결정했다.


carsized.com: Touareg vs. Genesis GV80
carsized.com: Touareg vs. Genesis GV80 Rear View


사실은 최종 선택을 하기 전에 폭스바겐 매장에 가서 실제로 캐리어가 들어갈지 가늠해 보고 싶었지만, 과한 것 같아 참았다. 예전에는 도로에서 가끔 투아렉을 본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도 자취를 감추어 실제로 사이즈를 확인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티구안은 많이 보이는데 투아렉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렌터카를 정하는데 우선 고려한 것은 카고 사이즈였지만, 기어는 자동이어야 했다. 면허는 수동으로 땄지만 실제 운전은 자동으로만 해서 수동은 자신이 없었다. 산길을 가다 덜컹 차가 서 버리는 일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반클러치의 두려움은 운전면허 시험장의 경험으로 충분했다. 현실화는 사양했다. 렌터카의 가격도 중요했다. 제네시스는 없었고, BMW나 벤츠, 볼보는 폭스바겐에 비해 몇 십만 원이 비쌌다. 폭스바겐 투아렉은 상대적으로 적정한 가격(보험 포함 165만 원)과 넉넉한 카고 사이즈, 그리고 자동 기어라는 조건을 만족했다.


아, 렌터카를 예약했으니 잊지 말고 만들어야 하는 한 가지, 국제면허증. 세 번째 발급이었다. 앞의 두 번은 일본 여행용이었다. 오랜만에 증명사진 찍고, 경찰서 가서 번호표 뽑고 기다렸다가 국제면허증을 받았다. 조카들이 생애 첫 면허증을 영문 면허증 겸용으로 받는 것은 봤으나, 그 면허증이 어느 나라에서 사용 가능한 지는 확인한 적이 없었다. 스위스는 영문 면허증만으로 통용이 되는 나라였다. 하지만 주변국들은 조건부였다. 지도를 펼쳐 놓고 스위스를 찾으면 동쪽으로는 독일, 오스트리아가 있고, 그 아래인 남쪽에는 이탈리아, 쪽에는 프랑스가 있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운전할 때는 국제면허증이 꼭 필요하고, 독일의 경우 특이하게 한국의 운전면허증, 여권, 국제면허증을 꼭 지참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경찰서에 안내하는 국제면허증 사용 가능 국가, 영문 면허증 사용 가능 국가에서 독일은 빠져 있어 내심 궁금했다.


외교부 주프랑크푸르트 대한민국 총영사관 - 정보마당 - 안전 여행정보

※ 우리 국민이 독일 내에서 국제 운전 면허증만으로 운전하는 것은 불가하나, 우리 국민이 국내 정식 국제운전면허증 발급기관에서 발급받은 국제운전면허증, 우리나라 운전면허증 원본, 여권을 모두 소지한 경우, 6개월 동안 독일 내에서 운전 가능 (단, 이 경우 국제운전면허증상 영문이름 스펠링 및 서명과 여권상의 영문이름 스펠링 및 서명이 일치해야 함)



국제면허증을 발급받고 보니, 한국 면허증 자체의 적성검사 기간도 몇 달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도통 면허증을 들어다 볼 일이 없다 보니. 해외 나갈 땐 여권도 사용기한이 6개월 이상 남아야 한다고 하니, 면허증도 유효기간을 늘리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 여행 전에 면허증도 갱신하기로 했다. 이참에 영문 면허증으로. 집 근처 병원에서 시력 검사를 포함한 면허 갱신용 적성 검사를 받고 결과지를 들고 경찰서 민원실로 가서 면허증 갱신 신청했더니, 이번에는 즉시 발급이 아니었다. 기존 면허증은 신분증으로서의 기능을 잃었고, 보름 정도 후에 새 면허증을 받을 수 있으며, 경찰서에 새 면허증이 도착하면 문자로 연락을 준다고 했다. 운전과 관련된 준비는 이로써 끝.


아, 렌터카 예약은 rentals.com 사이트에서 투아렉을 6월 20일 17시 30분에 빌려서, 6월 29일 17시 30분에 반납하는 조건으로 계약하고, 보험도 보장성이 좋은 것으로 가입하고 비용은 카드로 결제. 혼자 열흘 동안 운전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는 멤버들의 만류로, 나이로 막내인 은이 함께 운전하기로 하고 국제면허증과 영문 면허증을 발급받았다.


렌터카 회사에서는 추가 운전자 및 내비게이션 비용 등은 현지에서 렌트 시점에 결제를 하라고 했다. 또 한 가지, 여행까지 3개월 이상 남아서인지, 두 번째 거래여서인지, 본래 렌터카 정책인지 여하튼 렌트할 차량을 폭스바겐 투아렉으로 고르고 견적을 받았더니, 매니저로부터 전화와 메일로 연락이 와서 최초 견적가에서 할인된 재견적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여러 렌터카 사이트의 방황을 멈출 수 있었다.


I think...


글로 풀고 보니 렌터카를 결정하는 과정이 나이스해 보이지만, 한동안 꿈 좀 꾸었더랬다. 밤이면 밤마다 온갖 차에 캐리어 싣고 내리느라 힘 좀 썼더랬다. 꿈에선 왜 늘 공간이 부족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