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zerland Tour
수줍게 정상을 드러낸 융프라우, 신기한 천연 미스트를 날리는 슈타우프바흐 폭포, 툰호수와 브리엔츠호수를 한눈에 담아낸 하더 쿨름 그리고 아레강의 물멍을 한 편의 수채화로 남기고 마터호른(Matterhorn)으로 향한다. 또 다른 그림을 기대한다. 스위스 여행하면 융프라우가 대명사처럼 쓰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매력 넘치는 산이 바로 마터호른!
마터호른을 만나기 위해 인터라켄을 떠나면서 1차 목적지는 타쉬 역에 있는 주차장이다. 최종 목적지는 체르마트(Zermatt)!
렌터카로 갈 수 있는 곳은 타쉬(Tasch)까지, 거기서부터 체르마트는 기차로 이동해야 한다. 체르마트는 마터호른의 발치에 있다고 소개(Zermatt lies at the foot of the Matterhorn)하는 마을이다.
https://www.myswitzerland.com/ko/destinations/zermatt
그 마을은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마을을 고유하게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싶은 마음의 발로이다. 호텔 예약은 비싸기도 하고 5명이 함께 들어갈 곳을 찾기도 어려워,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정했다. 숙소를 예약함에 있어서도 다른 지역보다 요구사항이 많았다. 체르마트로 와서 잠을 잘 사람에 대한 이름, 연락처 등 개인 정보를 미리 보내고서야 예약 확정이 결정되었다.
인터라켄도 산, 체르마트도 산 동네이다 보니 두 동네를 옮겨 갈 때도 줄곧 산길을 달린다. 오른발이 브레이크와 엑셀 사이를 오가느라 바쁘다. 굽이진 산길을 달릴 때는 핸들을 잡은 드라이버만이 느낄 수 있는 쫄깃한 긴장의 연속이다.
구글 네비와 렌터카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잘 달리다 차가 길게 늘어선 줄을 만난다. 그 줄에 따라 서려하니 돈을 내라고 한다. CHF 29.50이라 적힌 영수증을 받아 들지만 무슨 의미인 줄 모른다.
줄 선 자동차 옆으로는 운전자와 동승자들이 나와서 수다를 떨고 있다. 낯선 광경이다.
받아 든 설명서를 보고서야, 기차를 타야 한다는 걸 느낀다.
여행을 다녀오고 두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곳이 칸더슈테크(Kandersteg) 역임을 안다.
그리고 종착역이 고펜슈타인(Goppenstein)역인 것을 안다. 이제는 그 갓길의 분위기도 이해한다.
네비가 주문하는 대로 들어가 줄을 섰는데, 오른쪽 두 차선에 차가 너무 많다 느껴, 줄이 짤은 오른쪽애서 세 번째 차선에 섰다. 짧은 줄이 반가운 것은 잠깐이었다. 줄을 서는 순간에도 기분이 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가 들어왔고, 오른쪽 두 차선의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 차선은 다른 곳을 가야 하나 보다. 차 안에서 눈동자 열 개가 요동을 친다. 비상등을 켜자마자 조수석과 뒷 좌석에서 오른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든다.
우리를 바라보던 수많은 눈들이 이방인에게 너그러이 길을 열어준다.
좁다란 통로 안으로 차들이 줄지어 들어간다. 기어는 파킹으로 두고, 에어컨을 끄기에는 덥고 답답하니, 시동은 켠 상태로 전조등은 끈다.
덜컹, 곧 기차가 출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는 컴컴하고 긴 터널로 들어간다. 차에 앉은 채 타는 기차는 난생처음이다. 루트를 정한 사람으로서 아는 척할 수도 있겠으나, 사양한다. 진짜 몰랐다.
여행을 다녀오고서야 안 사실 하나 더! bls.ch/autoverlad 사이트에서는 티켓을 예약할 수 있다.
칸더슈테크역에서 고펜슈타인역까지는 평일은 CHR 25, 금요일 포함 주말과 휴일은 CHF 28 에 예약 가능하다.
인터라켄을 벗어나 체르마트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이 달라진다. 분위기가 초록에서 잿빛으로 넘어가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나무와 풀은 적어지고 거칠어지면서 낙차 큰 절벽과 돌이 많아지는 것 같다. 기차에서 내린 뒤부터는 그 변화가 분명해진다. 시멘트 공장이 많아진 것도 같다. 단순한 느낌인지 실제 그러한 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chatGPT도 이번에는 명확하게 그 느낌이 맞다고 답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는 수준의 답만을 준다.
구글 맵에서는 타쉬(Tasch)에서 체르마트(Zermatt)까지는 차로 갈 수 없다는 것을 하얀 점선으로 보여준다. 타쉬 역 주차장에 차를 넣고, 각자 짐을 모두 꺼내 체르마트행 기차를 타러 간다.
타쉬 역에서 매표소에서 Tasch - Zermatt 왕복 티켓을 5장 산다.
2023년 티켓과 15년 전인 2007년도 티켓을 보면, 사진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양쪽 다 마터호른 사진을 포기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아래에 굵게 찍힌 2023-07-23은 티켓의 유효기간. 들어간 날을 기준으로 한 달까지 사용 가능한 왕복 티켓이다.
왕복 티켓인 만큼 개인별로 잘 챙겨두라고 당부한다.
우리보다 앞서 도착한 팀이 빨간 재킷을 맞춰 입은 대규모 단체 학생들인지라, 기차를 탈 때도 기차 안에서도 북적북적 정신이 없다. 청춘의 에너지는 가끔 상상 이상이다.
기차 안의 인구밀도가 높아 짐칸에 가방을 몰아넣어 놓고, 사람은 흩어져 자리를 잡는다.
의자에 앉아 갈 형편은 못 되고, 그나마 간섭이 덜한 문쪽에 선다. 사람도 기차도 햇살을 가르며 체르마트로 간다.
15년 전이나 후나 기찻길은 그다지 변한 게 없다.
2007년 몽블랑을 등정하고, 체르마트로 건너와서 마터호른을 오른 적이 있다. 가볍게 회른리 산장까지 하이킹을 한 것이지만, 바라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 마터호른을 오르긴 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체르마트와 프랑스 샤모니를 넣은 것은 15년이라는 시간의 결을 느껴 보고픈 마음이 진했다. 물론 멤버들에게 체르마트라는 멋진 동네를 꼭 맛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점심시간 전에 체르마트에 도착한 우리는, 각자 짐을 끌고 숙소를 찾았다. 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 딱 좋았다. 사실은 길을 모를 땐 5분, 알고 나면 2분 30초도 가능하다.
체크인 시간보다 서너 시간은 빨리 도착한 터라, 숙소 창고에 짐을 맡긴다. 우리 가방이 좀 무겁고 창고는 계단으로 내려가는 지하 1층인 덕분에 힘 좀 썼다. 덕분에 배가 좀 빨리 고파진 효과는 있다고 본다. 하이킹을 할 수 있는 가벼운 복장을 주문한다. 반드시 운동화를 신고, 작은 배낭 하나씩은 챙기시오~
어느 루트로 가서 마터호른을 볼까를 정하기 전에, 먼저 체리마트 역에서 북동쪽으로 5분 이내 거리에 있는 캠핑장으로 간다.
15년 전, 텐트 치고 야영했던 캠핑장이 그대로 있다.
야영장 입구도 야영장 안도 별다른 차이를 못 느낀다. 15년 전에는 12명이 서너 동의 텐트에서 함께 야영을 했는데, 이번에는 바깥에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 시절엔, 잔디 위에 그라운드시트 깔고 밥하고, 된장국 끓이고, 고기도 굽고 저녁을 먹었더랬다.
해 질 녘엔 커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그날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땐, 몽블랑 정상을 다녀온 터라 개인당 짐이 최소한 카고백 하나는 거뜬했다. 저 노란 카고백이 어딘가 있긴 할 것인데, 안 본 지 꽤 오래되었다.
생각대로 체르마트에 왔다. 추억이 깃든 장소도 찾아봤다. 그다음은? 마터호른(Matterhorn)을 보러 가자! 건데, 알고 있는 루트는 마터호른 등정을 위한 베이스캠프 식으로 찾는 회른리 산장(Hörnli Hut)으로 가는 길이 전부다. 그 길 밖에 안 가봤다.
체르마트로 오는 내내 어디로 올라가 볼까 고민했다. 도착해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건 마찬가지.
볼거리 많은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전망대를 갈까, 뷰가 멋진 레스토랑에서 여유롭게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블라우헤르드(Blauherd)를 가볼까 하는 갈등은 진행 중.
이번에는 밥부터 먹자는 마음에 블라우헤르드로 정한다. 내 맘대로. 고르너그라트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움직이고 싶어 간다면 새벽 첫 차로 움직여 봐도 된다 싶어 남겨 둔다. 간 적 없는 루트인지라 어떤 광경을 만날지 설레기도 한다. 혹시나 모를 변수가 있을까 하는 불안이 가슴 한켠을 지그시 누른다.
체르마트 시내에서는 건물이 가려지지 않으면 어디서든 마터호른(Matterhorn)이 보인다,
산을 오르는 기차 또는 케이블카를 타는 곳을 찾아 동네를 빙빙 돈다. 구글 네비가 알려주는 곳으로 갔는데, 역이거나 티켓이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괜시리 마음이 급해진다. 모르는 건 당연하고 모르고 싶지 않은 건 욕심인 줄 알면서도 스스로 부아를 채운다.
이럴 땐 감을 따른다. 어쩜 여기일지도 모른다는 그 감을 따라 대책 없이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건물로 들어가 계단으로 내려간다. 그랬더니 매표소가 있다. 오르막 중간에서 갑자기 사라진 셈. 매표소 앞에서 고갯마루를 걸어 내려오는 멤버들을 보고 손을 흔든다.
Sunnegga Blauherd Rothhorn Funnicular And Cable Car Station에서 표를 산다. 키오스크도 있고, 매표소도 있다. 처음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거의 없는 키오스크 앞에서 도전해 본다. 하지만, Sunegga(수네가)까지 갈지, 블라우헤르드(Blauherd)까지 갈지 편도가 좋을지, 왕복이 좋을지 결정을 못한 데다가, 특별하지 않은 키오스크의 메뉴가 어쩜 그리도 낯설게 느껴지던지, 이내 포기한다. 아, 덥다. 오늘도 혼자 쇼를 한다.
매표소 긴 줄 뒤에 선다. 그러면서 티켓의 종류를 한참 살핀다. 편도 + 편도보다 왕복 티켓이 몇 프랑이고 싼 건 맞지만, 무슨 용감인지 일단 편도로 5장을 산다. 수네가 + 블라우헤르드까지.
체르마트에서 슈네가 까지는 기차로, 수네가에서 블라우헤르드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체르마트에서 수네가를 거쳐, 블라우헤르드까지 편도는 CHF 33.
표를 손에 넣었으니, 이제 오르자.
이 정도 경사는 익숙하다. 이제 평평한 철도에 놓인 기차는 우리 입맛에 안 맞지 싶다. 쿠쿠 쿠쿠 기차가 내려온다.
철도의 경사가 기차 안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앞 칸과의 높이 차이가 여실히 보인다. 자,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이 기차는 어디로 가는지 찾아봅시다!
체르마트의 겨울은 아주 멋진 스키장으로 변신한다. 저 높은 산에 마을까지 슬로프가 이어진다. 스키를 신고 호텔까지 올 수도 있다. 스키어에게 겨울 알프스는 진짜로 멋진 놀이터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새삼 스키를 배워서 겨울에 달려와야겠다까지 발전하지는 않는다.
수네가(Sunegga)에서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블라우헤르드(Blauherd)에서 하차.
블라우헤르드 라운지(Blauherd Lounge)에서 푹신한 소파를 찾아 자리 잡는다.
우리는 밥부터 먹기로 한다.
쨍한 햇빛 아래, 한껏 심각하다. 지금은 메뉴 고르는 중! 그 배경은 마터호른.
음료는 맥주와 코크. 우리의 테이블 번호는 '34'
차려진 밥상이 예쁘다. 샌드위치도 올리브도 맛있고, 치즈도 타코도 싹싹 비운다.
배를 채워가면서, 마터호른을 탐한다.
어떻게 담아돈 멋진 사진이 된다.
그냥 바라만 봐도 좋다. 파란 하늘도, 눈앞에 우뚝 선 마터호른도, 산을 두른 하얀 띠도, 그 아래의 초록도,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있음을 자랑스럽게 만든다. 또수채화 한편을 담는다.
마터호른을 배경으로 자기만의 사진을 만들어 본다.
점심을 먹는 동안, 다음 루트를 가늠해 본다. 밥도 먹었고, 다들 얼마든지 걸을 수 있다고 하니, 걷자!
무턱대고 걸으면 곤란하니깐, 우리 5-seenweg 루트로 가자!!
https://www.myswitzerland.com/ko/experiences/6-5
블라우헤르드에서 수네가로 내려가는 동안 5개의 호수가 있고, 그 호수를 따라 걷는 길이 다섯 개 호수길, 5-Seen-Wanderung이다.
https://www.myswitzerland.com/ko/experiences/route/5-seenweg-zermatt
우리는 자전거가 없는 관계로, 두 발로 걸어서 내려간다. 중간에 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올라오는 이들을 만나곤 한다.
마터호른을 바라보며 걷는 다섯 호수는 슈텔리 호수(Stellisee), 그린드예 호수(Grindjess), 그뤼엔 호수(Grünsee), 무스이예 호수(Moosjesee) 그리고 라이 호수(Leisee). 소요 시간은 2시간 정도.
위성사진에서도 보이듯, 그늘은 없다. 구름이 햇살을 가려주지 않는 한, 온몸으로 직사광선을 받아낸다.
인적으로 다져진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서, 때때로 나타나는 이정표를 보면서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한다.
블라우헤르드를 출발해서 슈텔리 호수(Stellisee)를 향한다. 앞으로 걸어야 하는데 뒤돌아 배경이 된 마터호른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먼데 있는 산, 길가의 풀과 꽃을 사진으로 담느라 발걸음 자연스레 늦어진다. 얼마나 가야 호수가 있는지, 길의 난이도가 있을지 없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 혼자 서둘러 걷는다. 혹시나 조심해야 할 부분은 없나 살핀다.
다행히 루트는 평이하다. 작렬하는 태양 외엔 크게 염려할 요소는 없다. 그래도, 사진 찍다 넘어질까 봐 자꾸 눈길이 간다. 여기서 누구든 다리라도 접질리거나 다치면 대안이 없다. 약도 부목도 챙겨 오지 않았다. 조심 좀 해 주라, 제발!
첫 번째 호수, 슈텔리 호수에 도착한다. 맑은 빙하 호수에 마터호른이 그대로 비친다. 너 진짜 멋지다.
호수 주변으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경치를 즐긴다.
아무리 역광이라도, 인증 샷을 거부할 순 없다.
호수에 손도 담가 보고, 발 담그는 사람 구경도 하고, 툴툴 털고 일어난다. 두 번째 호수로 가자!
호수를 벗어나 위로 오르다 갈림길을 만난다. 계속 올라가도 되고, 내려가도 된다. 사람의 수는 오르막을 오르는 쪽이 많고, 두 번째 호수의 위치는 아래쪽이다. 우리는 과감하게 꺾는다.
슈텔리 호수를 오른쪽에 두고 아래로 내려간다. 이제 마터호른을 정면에 두고 걷는다.
눈이 시려서 선글라스는 기본이다. 산의 색깔을 있는 그대로 만끽하고픈 마음에 가끔씩 선글라스를 벗어 머리 위에 얹기도 한다.
시원한 물소리를 담다, 발을 헛디디기도 한다. 남 걱정 전에 본인부터 조심해야 함.
길에서 엉겅퀴 닮은 풀을 보고서, 배경으로 마터호른을 넣어 본다. 풀 한 포기도 예사롭지 않다.
이정표 따라, 사람 따라 걷는다. 혹여나 무릎 아픈 사람 없나 체크한다. 작은 크로스백에 무릎보호대는 들어 있다. 사실 스스로를 제일 의심한다. 하산길에 무릎 고장 날 1인을 뽑자면 자수할 수밖에 없다. 십여 년의 클라이밍과 해외 큰 산 원정길에서 얻은 고질병이지만, 일상생활에는 문제없다. 이번 하이킹엔 짐 된다고 스틱도 안 챙겼고, 사실은 많이 조심스럽다.
햇살 아래 산길을 걷는 것 자체를 즐거워한다. 모두 산골 출신인 덕분에 기본 정서가 비슷한가?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것도 영향이 없지는 않다고 본다.
중간쯤 내려오니, 이정표는 5-Seenweg 표시가 위아래를 가리킨다. 우린 아래로 간다.
두 번째 호수인 그린드예 호수(Grindjess)은 입구와 출구가 헷갈려 스치듯 지나가고, 세 번째 호수인 그뤼엔 호수(Grünsee)는 생략한다. 네 번째 호수, 무스이예 호수(Moosjesee)가 가까워진다. 내려올수록 나무가 보인다. 나무 그늘이 반갑기 그지없다.
무스이예 호수는 에머릴드 빛이다.
호수 주변 나무 그늘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린 뙤약볕 아래서 사진 찍고, 물 한 모금씩 나눠 마신다.
우리보다 훨씬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에 오른 이들도 보인다. 블라우헤르드서부터 내려온 이들은 옷차림과 신발이 그래도 하이킹하는 사람다운데, 수네가 쪽에서 온 이들은 슬리퍼 신고 동네 마실 나온 사람 같다.
마지막 호수는 고갯길을 넘어서야 한다. 마터호른을 눈앞에 두고 다시 걷는다.
산의 고도차가 색깔로 확연히 드러난다.
고갯마루에 올라 잠시 쉬어 간다. 이럴 땐, 나무 그늘을 권한다.
고갯마루 두 번 넘고 만난 라이 호수. 사람도 개도 호수에서 헤엄치고 논다. 완전 놀이터 분위기다. 아, 이 동네 사람들은 여기가 천연 수영장이구나!
구글 맵보다 등산 루트를 파악하기 좋은 사이트를 찾았다. 물론, 여행 끝난 다음에.
스위스 알프스를 하이킹하고 싶다면, 알아두면 유용하지 싶다.
우리는 오른쪽 라운드 코스를 호수 지니자마자 꺾어 그냥 내려왔고, 아래쪽도 중간에 잘라 먹었고, 나머지는 길 따라 걸었다. 오르내리는 길이 감춰져 있지 않아 그때그때 길을 고를 수 있었다. 만약, 수풀 속이었다면 긴장 좀 했을 터였다.
수네가(Sunegga) 역 앞에서 파노라마로 마터호른을 담는다.
역으로 가는 통로 속, 시원하다.
통로를 지나 수네가 역으로 바로 들어간다. 우린 표 없다. 검표를 하는 사람도 없고, 일단 기차를 탄다.
체르마트, Sunnegga Blauherd Rothhorn Funnicular And Cable Car Station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나갈 수 없다. 정산소에 가서 CHF 18/人을 주고 체르마트 - 수네가 표를 5장 산다. 한 장씩 나눠 가지고 자동 개찰기를 통과한다.
마터호른 구경 잘하고 체르마트로 돌아왔으니, 그 기념으로 시원한 맥주 한잔은 마셔야지. 모퉁이 호텔 1층에 있는 바에서 맥주를 주문한다. 간단한 견과류 안주를 그냥 준다. 우리 식으로 돈 안내도 기본으로 제공되는 뭔가가 어색할 지경이다. 이 집 맥주 맛집일세. 여전히 한낮 이지만, 얼굴 불콰해지는 거 지금 이 순간은 개의치 않는다.
숙소로 돌아와 체크인한다. 체크인 할 때 사람을 만날 일이 없다. 에어비앤비 메시지 내용에 따라 약속된 장소에서 키를 챙기고 우리에게 배정된 방으로 올라간다. 에어비앤비 사진과 똑같은 풍경을 마주한다. 깨끗하고, 넓고 무엇보다 양쪽 베란다의 창을 여는 순간, 온 집으로 몰아치는 산바람이 짱이다. 에어컨이 없다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우린 짐이 조금 무겁고, 엘리베이터는 층과 층 사이에 멈춰 1/2층은 가방을 끌다시피 들고 올라와야 한다는 건 예상 밖이다. 하지만 그건 웃고 넘길 정도로 가벼운 불편함이다.
숙소, 마음에 쏙 든다.
야은 길재 선생의 시조 중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다.'라는 대목이 있다. 15년 만에 체르마트를 온 느낌을 말하기에 딱 어울린다.
그 시절, 마터호른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것이 아쉽지는 않다. 당시엔 가자고 해도 체력적으로 견뎌내기 힘들었다. 시간과 체력이 된다는 가정 하에, 한 번쯤 마터호른 정상에 서는 것도 생각해 본다. 하지만 격하게 꿈꾸지는 않는다.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으니, 만나고 싶으면 다시 오면 된다. 만나는 방식은 그때 그 사정에 맞게끔 고르면 되고.
운 좋게도 15년 전의 인연을 체르마트에서 만났다. 같은 때 같은 곳을 찾았다는 그 기쁨은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