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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님 Jan 23. 2024

아파트 주민들의 주말 모임

지극히 사소한 나의 일상 #4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주말은 벌써 두 계절째 복작복작한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난 뒤인 오후 2시쯤이면 볕이 가장 잘 드는 단지 한가운데의 정자 앞으로 누구는 수줍게 두 손을 맞잡고, 누구는 힘겹게 지팡이에 의지하여 삼삼오오 모여든다. 누군가가 펼쳐놓은 종이컵과 봉지 커피를 하나씩 챙겨 들면 또 다른 누군가가 투박한 보온병을 들고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을 부어준다. 이야기꽃은 진작에 활짝 피어 여기저기에서 두런두런한다.


삼십 대 초반의 신혼부부부터 노령의 어르신들까지 주말마다 한자리에 모이는 풍경은 시대의 흐름을 한참 벗어나기에 이질적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이렇게 모이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다. 조합에서 밀어붙이는 아파트 정비 사업에 대한 불안감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하나둘 모이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어느새 해가 바뀌고 조합과 주민 간의 힘겨루기가 고착 상태에 접어든 지금, 여전히 주민들은 주말마다 자발적으로 모인다. 한탄과 분노를 토로하기 위해 나오던 것이 이제 얼굴이 익숙해진 이웃의 소식이 궁금하여 나오게 되는 모양이다.


온 동네 아이들을 모아 술래잡기를 하던 어린 시절 이후 이렇게 많은 이웃들을 알게 된 것은 처음이다. 심지어 젊은 세대끼리 소통하는 채팅방은 하루도 쉴 새가 없다. 오가며 마주치는 주민들과 인사하는 것이 아직은 낯설고 멋쩍지만, 다 지나고 나면 유독 따뜻했던 겨울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2024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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