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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는 사람 Jul 05. 2023

<수라> 아름다운 것을 본 기억, 기록, 책임

1경 2상: 풍경, 풍상, 진상의 공존과 기록

▪︎풍경: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

▪︎풍상: 바람과 서리. 많이 겪은 세상의 어려움과 고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진상: 사물이나 현상의 거짓 없는 모습이나 내용.

<수라>를 보고 나오니 저 세 단어와 김훈의 산문 몇 편이 생각났다.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속에서 살아간다.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실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풍경과 상처>. 1993. 문학동네.


나를 비롯해 SNS에 올리는 대게의 사진은 대상의 '풍경 밖'에 있는 (이쁜) 사진이다. 낡고 남루한 골목과 풍경이 등장하는 사진도 결국은 풍경의 밖에서 찍고 지나간 이미지다. 풍경 안에서 공생, 공존했던 기록은 아니다. 밖에서 (구경)하다 지나가는 사람은 상처받지 않는다. 안에서 같이 부대끼며  때 상처받는다.

<수라>에 등장하는 사람 중 풍경 외부에 있는 사람은 없다. 아름다운 풍경의 외면뿐 아니라 풍상, 진상까지 함께한다. 그래서 그들은 상처받는다. 이 상처를 '아름다운 것을 본 죄'라 했다. 그 죄(책감)는 '책임감'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것을 보아버린 기억의 죄, 그 책임감으로  만든 기록, 새만금 갯벌의 아름다운 풍경과 그 풍경 속의 풍상과 진상을 함께한 사람들의 얘기가 <수라>다.


20대 초던가, '새만금'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무슨 개발을 위해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드는 국가적 큰 사업으로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환경단체와 염전과 어업이 주 생활수단인 어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분쟁 중인 지역이라는 정도로 기억한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낸 세 대통령이 워낙에 국가적 토건 개(괴)발을 많이 해서 그런 것 중 하나 정도로 생각했을 거다.

'새만금'이란 지역명도 행정 개편된 신주소, 신도시 명으로 생각했지 싶다. 그러고 잊었다. 그 사업을 처음 추진한 노태우 이후로 대통령이 여야 교대로 7명이 바뀌었다. 강산이 세 번 변한다는 30년이다. 이미 완결됐거나 철회됐거나 할 세월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 '새만금' 이야기란다!


영화를 보고 지역명을 찾아봤다. 예전엔 김제·만경평야를 앞글자 하나씩 따서 '금만평야'로 불렀는데 '새만금(새萬金)'은 그 '금만''만금'으로 순서 바꾸고 새롭다는 뜻의 '새'를 덧붙여 만든 이름으로 1991년에 정부주도로 시작된 간척사업이다. 전북 군산부터 부안 변산까지 33.9km에 이르는 방조제를 세워 바다를 막고 만경강, 동진강 하구의  갯벌을 메워 간척지로 바꾸는 계획이다. 이곳이 얼마나 넓은가 하면 '광활'이라는 단어로 네이버 검색창에서 치면 가장 위에 뜨는 문장 예시면이 이렇게 나온다.

전북 김제군에 광활면이 있다. 군산과 부안 사이에 반도처럼 황해로 돌출된 땅이다....


33.9km가 체감이 잘 안 되는데  김훈은 그의 글 여러 곳에서 만경평야의 '만경강'을 꽤 자주 언급했다. 산문집 <자전거 여행> 서문에서 '만경강에 바친다.'라고 썼고 소설 <칼의 노래> 서문에서도 '다시 만경강에 바친다'라고 썼다. 그 뒤, 여러 산문집의 글을 추리고 수정해 펴낸 <풍경과 상처> <라면을 끓이며> 등 이곳저곳에서도 만경강을 호출한다. 만경강 하구의 갯벌이 얼마나 넓은지가 잘 묘사돼 있다.

- 전북 군산시 옥구 염전에서 출발하는 자전거는 만경강 하구를 따라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만경대교를 건너고 만경평야를 건너고 다시 만경강 하구를 따라 내려와서 전부 김제시 심포리 갯가로 이어진다. 군산에서 김제를 거쳐 부안에 이르는 만경강, 동진강 하구 언저리는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선 전체가 갯벌이다.
-심포리 바닷가에서 만경강은 동진강과 만나 바다와 합쳐지는데, 달이 물을 깊이 빨아당기는 사리건조의 만경강 하구에서 바다는 물의 바다가 아니라 갯벌의 바다였다. <자전거 여행>

-만경강은 아직도 자유파행(自由跛行)하는 강이다. 강은 댐이나 제방으로 막히지 않아서 넓은 들을 이리저리 굽이치면서 흐른다. 만경강은 유역을 넓게 적시면서 아득한 갯벌을 펼친다. 이 갯벌은 가을이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베리아로 날아가는 도요새들의 중간 기착지이고, 여기서 오랜 세월을 염전에 소금을 일구어 살아온 사람들이 고향이다.
새만금의 물막이 공사가 끝나면 갯벌이 모두 사라져서 소금 일을 하던 사람들을 고향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새만금방조제는 만경강 어귀를 반쯤 가로막으면서 다가오고 있다. 동글조개는 그 껍데기에 나이테를 갖는다. 나무는 1년에 한 번씩 나이테를 쌓아가지만, 동글조개는 매일매일의 밀물과 썰물의 흔들림을 그 껍데기 위에 새겨간다. 그 자취가 쌓여서 조개의 나이테를 이룬다. 염전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고향의 세월이 조개껍데기의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었다.

새만금 간척공사가 다시 시작되어서 이 갯벌은 매몰될 위기에 처해 있다. 환경운동 단체들이 이 갯벌을 지키기 위해 바닷가에 장승을 세웠다. 장승은 바다를 향해 노한 울음을 누는데, 간척공사의 제방은 자꾸만 바다쪽으로 길어져간다. <라면을 끓이며>


2시간 가까이 상영되는 영화 <수라>의 내용을 문학적으로 묘사하라고 하면 위에 인용한 김훈의 산문으로 대체해도 될 정도다.

영화 제목인 '수라'는 원래 강 이름으로 부르던 무명의 갯벌이었으나,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이 흉물스러운 새만금을 대신해 붙인 이름이다. 뜻은 '비단에 새긴 수'라는 뜻이라고 한다.

오동필 단장을 비롯한 <수라> 속 생태 조사단, 지킴이들은 아름다운 것을 본 기억과 책임감으로 그 아름다움을 나 혼자만의 '추억'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프게 '기억'하고 잊히면 안 될 '기록'으로 남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곳에 가고 찍고 쓴다. 영화 처음엔 생태 보고, 환경에 관한 주제로 다가오지만 뒤로 갈수록 '카메라'와 '펜'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라는 그 역할의 무게와 고민까지 같이 전해졌다.


'아름다운 것을 본 죄'라는 말이 영화 카피로, 관객들의 한 줄 감상평으로 회자될 때 처음엔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으론 너무 연극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당위'에 호소하는 영화일 거라는 선입견도 있었다. 지역민과 활동가들이 정부와 맞서는 고성과 울분의 현장, 매립으로 말라붙어 쩍쩍 갈라진 가뭄 난 땅 같은 갯벌이 교대로 나오는 거칠고 흔들리는 카메라 워킹의 주장 강한 고발성 영화.

물길이 풀린 쪽과 막힌 쪽의 물 색깔. 사진에선 잘 안 드러나는데 영화에선 같은 장소에서의 물 색과 오염도의 차이가 극명하다.

'보지도 않고' 예단한 편견이었다. 영상은 웬만한 상업영화보다 아름다웠다. 연출은 서정적이었지만 자료와 고증은 꼼꼼했다.

특히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10주년 보고서>와 그것을 만든 과정이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였다. 조사단의 오동필 단장이 10년에 쳐 간척 전후의 새 종류와 수의 변화를 사진과 글의 데이터로 기록한 책이 벽돌 두께로 몇 권이었다. 전공자나 전업 전문 연구가들도 하기 힘든 일을 일반 시민들이 그 긴 세월에 걸쳐 사비와 시간을 들여 채집하고 기록한 것이다. 수라엔 멸종위기 1급인 저어새를 비롯해 나도 아는 이름의 도요새, 황새가 있고 처음 듣는 이름의 검은머리갈매기, 흰발농게 등의 아름답고 희귀 생물이 많았다. 간척사업과 신공항 건설로 이 새들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자료는 세밀하게, 표현은 서정적으로 관객들에게 브리핑하는 영화였다. 

사안과 긴박함에 따라 사회 운동의 구호나 시위도 다르겠지만 이제 획일적이고 감정적인 주장대신 그 방법이나 표현은 다양해져야하지않나, 그렇다면 이런 영상과 표현이 앞으로 대중에게 스미기엔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보지도 않고' 이 영화를 예단한 것처럼 사람들은 '가지도 않고' 새만금은 이제 다 끝나지 않았냐고 한다. 정태춘이 <우리들의 죽음>을 불렀을 때 사람들이 "고마해라. 이제 좋은 세상 오지 않았냐?"라고 했던 거처럼.

감독도 그랬다고 한다. 한 번도 갯벌에 와(가) 보지 않아 놓고서 "새만금은 다 끝난 이야기 아니야?"라고.

영화 속에서 생태조사단장 오동필이 '현장 방문'에 대한 얘기를 두어 번 한다. 활동가들의 보람과 절박함, 활동(운동)의 본질이 그 짧은 말에 다 담겨 있었다. 감상 중 기록을 못 해 이 말만은 꼭 기억하고 싶어 몇 번 중얼거려 외워서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현장에 와 봐라. 단 한 생명이라도 살아 있는 걸 보면 끝났다는 생각이 달라질 거다." 그리고,

 "현장을 보여주는 게 우리(활동가)의 할 일이다."

흰발농게. 사진은 인터넷 뉴스에서 발췌

새만금 개척을 반대하던 시민단체가 재판에서 패소한 뒤  '다 끝났다'라는 패배감에 빠져 남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황윤 감독도 그렇게 촬영을 접었다가 촬영 중 동숙했던 주민과 동료의 죽음, 종교가 다른 네 명의 성직자가 주도한 삼보일배 대장정을 대하며 다시 합류한다. 아름다움을 본 기억과 책임감을 느낀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 7년의 세월을 2시간 남짓의 스크린에 담았다.


많은 장면이 아름답고 뭉클하고 저릿했지만,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건 갯벌의 신비로운 풍광, 군무 같기도 하고 CG 같기도 한 환상적인 철새들의 군무도 아니었다. 사람들이었다. 생태조사단장과 그 회원들, 갯벌 지킴이들이 청년에서 중년으로 늙어가는 모습이었다.

특히 오종필 조사단장은 일반 시민으로서 그의 연구 과정과 세월, 엄청난 기록물만도 경이로웠지만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긴 투쟁의 시간 속에서 밝고 맑은 얼굴일 수 있을까 싶은 긍정적인 기운이 인상적이었다. 끝이 안 보이는 길을 따라 20대 청년이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나이의 아들을 둔 50대가 될 때까지 무엇이 그를 포기하지 않게 할 수 있었을까.

손 놓아도 누구나 "할 만큼 했다."라고 할 텐데.

영화 대사 중 갯벌에 대한 그의 숭고하고 지고지순한 사랑, 갯벌에 대한 그만의 의미가 드러나는 말이 있다.


"분명한 거는 언젠가 바닷물이 들어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마른땅도 난 갯벌이라 생각하는 거예요. 마지막 칠게 한 마리가 살아 있어도 사람들은 그래, 다 죽었어. 그런데 그것도 갯벌이라는 거죠. 갯벌이라는 이름만 놓지 않으면 언젠가는 갯벌로 돌아갈 거니까. 갯벌이었기 때문에, 갯벌이라고 불러줘야 한다. 그래야 살릴 수 있다는 거죠.”

새만금생태보고서단장 오종필

마지막 한 마리,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포기하지 않는 거 그게 '희망'이란 이름 아니겠냐고 스크린을 향해 되묻는 것 같았다.

절망, 포기의 기운이 없던 그가 영화에서 딱 한 번 다 무너진 낯빛을 보인 일이 있다. '한 번 가 보지도 않은 자'의 미안함과 편하게 앉아서 아름다운 것을 본 미안함으로 그 절망이 약간은 이해되었다. 그런 미안함이 모여 '보기라도 하는' 줄로 이어졌을 거다.

영화 초반 미취학 아동으로 아빠가 다니던 갯벌에 따라다니던 꼬맹이는 이제 20대 대학생이 되었다. 아버지의 후배이자 동료이자 연구자로 생태조사에 함께 하는, 대를 이은 연구도 큰 감동이었다.


어떤 이가 <범죄도시>는 나오는 편마다 쉽게 천만을 찍는데 왜 어떤 영화는 그런 영화가 있는지조차 모르냐는 한탄을 했다. 사람들은 불편한 영화는 보기 싫어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만 웃고 떠들다가 극장 밖을 나가는 순간 휘발되는 편한 영화를 좋아한다. 불편한 영화들은 죄책감과 분노, 극장 밖을 나가서도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계속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범죄도시>에선 히어로 마동석이 나, 우리 대신 다 해결해 준다. 나는 그냥 문화 소비자로 웃고 박수 치고 나오면 아무 일 없는 일상, 살 만한 세상인데 불편한 영화, 예술은 나를 힘든 현실로 몰고 이끌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으니 모르고 싶은 거다.


새만금 사업은?

세계최대 면적이라는 광활한 갯벌을 메워 간척지로 바꾸는 사업이다. 규모의 중요성 외에도 갯벌의 주요 습지 생태계가 파괴될 위기에 처하자 국민적인 반대 여론과 생존권이 걸린 어민들이 격렬한 저항을 했다. 하지만, 정부는 2006년 대법원 판결로 결국 바다를 막는 물막이 공사를 강행했다. 생업을 잃은 어민들은 어망과 높은 장화대신 푸른 조끼를 입고 공공취로 사업으로 뜨내기 일당을 받으며 먼지나는 미세먼지 거리 속에서 연명한다. 묵은 화도 바다, 갯벌에서 다 풀었다던 어민들은 "이젠 꿈에서도 갯벌은 안 나타난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며 살던 땅과 일을 뺏긴 울분을 터뜨렸다.

와중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마지막 갯벌이 바로 군산의 수라갯벌이다. 그리고 이젠 신공항 건설 추진으로 다시 더 큰 위기를 맞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1년 동안 새만금은 총 30개 기업, 6조 5765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는 2013년 새만금청이 개청한 이래의 실적 4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새만금개발청'의 자료로 국무회의에서 밝힌 '새정부 업적'으로 내세운 수치다.


이 영화를 먼저 본 이의 포스팅 밑에 달렸던 인상적이고 아픈 댓글이 생각난다.

"코로나가 온 세계인을 공포로 몰아넣었을 때, 딸이 그런 말을 했어요. 자연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인간의 개체 수를 줄이고 싶어 하는데, 인간은 바이러스를 죽이면서 살아남으려고 한다고..."


마지막 사진 장은 이난영 작가의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중의 그림들이다. '새만금'을 지키려고 싸우고 우는 영상 속 사람들에서 '비자림'을 지키려고 나무를 끌어안고  울던 사람들이 생각나서 다시 찾아봤다.

'가장 아름다운 길'에도 선정된 제주도 비자림의 나무 천 그루가  졸지에 잘려 나갔을 때도 '환경영향평가서'는 새만금 보고서처럼 비자림의 생태 개체와 수를 누락하거나 은폐했고 그 사실을 밝히고 알린 건 시민들이었다. 멸종위기인 애기소똥구리와 천연기념물인 팔색조의 울음소리를 채집하고 알렸다. 내 그림과 글이 있어야 할 곳을 고민하던 이난영은 이 벌목의 만행을 그리고 썼다. '아름다운 것을 본 의무와 책임감'을 그림과 글로 남겼다.

그림.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이난영. 이하 뒷 사진들도 같은 작가의 작품입니다.
그 숲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울면서 나왔다.
나무가  하나씩 잘려나갈 때마다
옆에 있던 나무들이
입을 막고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나무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땅을 짚고 통곡을 했고
어떤 나무는 겁에 질려 드러눕고  말았으며
어떤 나무는 대신 나를 잘라라고 소리쳤으며
어떤 나무는  두 손으로 귀를 잡고 하염없이 울었으며
어떤 나무는  나무를 끌어안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람들은 그 숲으로  갔다.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이난영.





사람들은 그 숲으로 갔다.
아직 남아있는 숲의 어두움을 쫓아
그 어두움 속으로 날아드는  새들을 따라
사람들은 그 숲으로 갔다.

숲에 서식하는 멸종 위기의  새 사진을 멀리서라도 찍으면 숲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숲의 곳곳을 다녔던 사람, 깜박하고 잠이 든 사이 그토록 기다렸던 새는 모두 다녀갔는데.

사람들은 그 숲에서 나무를 끌어안고 서로를 끌어안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을 본다'라는 건 그 대상의 '상처''어두움'까지 끌어안는 일이라 두려운 일이다. 그 두려움을 같이하는 사람과 '맞대고 기대어 견디는 것'이라고 새만금생태보고서단장 오종필이 말했다.

영화 끝에는 영화에 맞춤인 동요 <아름다운 것들>이 서정적으로 편곡돼 흐르는데, 나는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이 생각났다.


https://youtu.be/N-9uL4pQdp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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