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 술 생각이 뭐야.

리빙 라스베가스 재개봉 기념

by 경주씨

영화, 리빙 라스베가스.

뭐가 좋았던 걸까. 그때의 열몇 살은.

시디를 사서 마르고 닳도록 듣다 시디를 잃어버리고 어는 날 갑자기 나온 얘기를 핑계 삼아 중고 시디를 다시 샀던 그때, 이 영화 재개봉하면 좋겠다 했었다.


진짜 재개봉했다.

감기로 이번 주 내내 골골거렸다. 어제는 친구들이 모여서 양곱창을 먹는다는데 도저히 남포동까지 기어갈 컨디션이 아니었다. 집에 누워서 그녀들이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사진에 아주 그냥 배 아파 죽었다. 그 양곱창을 참은 덕에 오늘 리빙 라스베가스 보러 갈 기력이 생겼다. 아침나절에 뒹굴거리다 다시 확인을 하니 센텀에서 한다. 그래 가보자. 예매를 했다. 두둥.


주말 오후 센텀까지 나를 나가게 하는 힘이란 뭐였을까.

차에 꽂아두고 있었던 ost 시디를 연거푸 들은 덕이었을까.

비디오 가게에서 표지에 이끌려 영화를 봤을 거다.

아마도 노래에 홀렸던 것 같다. 영화 내용도 거진 다 까먹고 대충 그랬지 하고 아슴아슴한 상태로 영화 얘기를 했었다. 노래만 선명하게 남아서 밤 드라이브를 하다 괜히 사무치고 술을 마셨던가 말았던가.


삼십 년을 건너와 극장에 간다.

요새 극장은 허술하게 사람이 오는지 가는지 관심도 없더니 이 영화는 사람이 관 앞에 지키고 있더라.

싱숭생숭 영화가 시작됐다. 아 그치 이랬었다. 너무나 길고 긴 이야기를 던지고 나서야 제목이 창에 뜬다.

그치 죽으러 가는 사람에게 그 전의 카더라 하는 것들은 모두 지난 것들이다. 그러니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도 라스베가스를 향해 가는 그 순간이겠지.

ost에서 내내 반복해 들리던 대사들이 아 여기구나 여기였구나.

붉어진 하늘 위로 스팅은 진짜 너무 잘해.

S-E-R-A는 너무 아름답다.

저 여자를 둘러싼 환경이 아무리 폭력적이어도 여자는 웃었다.

상담인 듯 화면이 이어지는데 아 저건 마지막 이후구나 영화가 끝나고서야 그 생각을 했다.

삼십 년 전 20세기 영화가 뭐 그렇지 해도 너무 폭력적이다.

어지럽다. 굳이 이렇게까지 보여줄게 뭐냐고.

중간중간 너무 술을 들이붓는 벤 덕분에 술도 안 마셨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영화가 끝나고 울렁거리는 속으로 영화관 아래층 교보에서 계산대 근처 매대에 올려진 캬라멜을 사 먹었다. 멀미인지도 모를 울렁임이 조금은 가라앉기를 기대했다.

이거 저거 불쾌한 포인트들을 다 견딘 건 저 여자의 눈빛 때문이었다.

저 한없이 나약한 존재를 향해 기대어 서는 마음이 사랑이라고 웃는 여자.

얼마나 사는 게 고독하면 저런 사랑을 하겠다고 나서는가.

알콜중독자에게 예쁜 포켓 술병을 사주는 마음, 나는 모르겠다, 모를란다. 젠장.


이 영화 재개봉할 줄도 몰랐지만 혼자볼 줄은 더 몰랐다 ㅎㅎㅎ

혹시나 마치고 술 한잔 생각이 날까 했더니 너무 오래돼서 중간 내용을 다 까먹은 사람의 안이하고도 주제넘은 얄팍한 감상이었다. 술이 뭐야, 울렁거려서 혼났네. 지하철 역 입구 야채가게에서 딸기 한판을 사고 집 앞 중학교 운동장에 들러 철봉도 한 번 하고 온다.


그때는 생각지도 못했을 테다. 세월이 이 만큼 흘러 다시 만난 저 여자가 이렇게 오래 가슴에 남을 줄.

오렌지색 셔츠를 침대에 올려둔 여자

첫 데이트에 입었던 옷을 입고 배웅하는 여자

사랑한다고 웃던 여자


너무 무서워서 다시 볼 엄두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약한 선택을 한 남주보다

살아내고 있는 여자의 눈빛은 못 잊을 것 같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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