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싸우어라 써야 제 맛
여름이 길고 긴 유럽의 저녁나절에는 가벼운 맥주도 참 좋았다. 뮌헨, 시청 광장 한편 브로이 하우스. 단체여행 대학생 무리가 옥토버페스타를 얘기하며 우루루 들어간 맥주집은 크기도 크더라. 거기서 처음으로 레몬향이 넘치는 사우어 에일을 만났다. 이건 만났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혁명적이었다. 아니 맥주가??? 카스도 하이트도 아닌데 심지어 이런 상큼한 맥주가 있을 수 있나? 세상에??? 돌아와 사우어 에일이 뭔지도 모르고 그 새콤한 맥주가 생각나 종종 입맛을 다셨다. 그러니까 그때 뮌헨에서 말이야 하며 시작되는 그런 뻔한 여행 얘기에 꼭 맥주 얘기를 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꼭 그 새콤한 맥주를 먹고 싶었다.
그 새콤한 맥주가 사우어 에일인 걸 안 건 그때부터 몇 년 뒤였다. 수제 맥주가 한창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부산에서도 몇몇 브로이 하우스가 생기고 첨단 유행을 따르는 현대녀성은 유행을 좇아 새로운 술을 찾아 나섰다. 부산 갈매기 브루어리. 그게 그러니까 오미자 맥주였나 맞나? 새콤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소개를 듣고 선뜻 주문했다. 이거다! 내 맥주 인생은 사우어에일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할 만큼 사우어 에일을 좋아한다. 와... 드러눕자 그날 몇 잔을 마셨나.
송정에는 와일드웨이브브루어리가 생겼다. 퇴근길 참새방앗간 루트에 수제 맥줏집이란. 호오오~~~~ 사우어 에일 전문이란 소리에 갔더니 여긴 천국인가요. 아니 왜 사우어 에일이 단계별로 있는 거죠? 젤 기본 청량한 여름맛 그대로 기본 사우어 에일부터 농도와 산미가 점점 그라데이션 되는 듯한 사우어 에일이 종류별로 메뉴에 포진해 있었고 맥주를 도대체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겠다. 정말 콸콸 들이부었다.
아니 근데 진짜 어떻게 맥주가 이럴 수 있어?
사우어 에일을 마실 때마다 이름도 모르고 마셨던 뮌헨의 그 맥주를 생각했다. 맥주를 마시고 나선 길, 유월 해가 한 껏 길어진 광장은 커다란 화면이 설치되어 있고 오페라 상영회가 열리고 있었다. 툭툭 아무렇게나 내어놓은 의자며 테이블이며 멈 춰 선 사람, 걸어가는 사람, 우두커니 혼자 앉은 사람 둘 혹은 셋 그리고 또 사람 무수한 사람들은 느슨하게 그 밤을 즐기고 있더라.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아쉬움에 몇 걸음마다 뒤돌아보며 그 광장을 마음에 두었다. 나도 저 광장에 흘러 들어가 사우어 에일 좀 마시고 노닥거리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태리 아리아를 듣고 싶었다. 느슨하게 무명 씨로 거기 있고 싶었다. 언젠가는 꼭 다시 한번 와야지. 거기까지 대충 한 십 년이 걸렸었나 보다.
독일로 출장을 가게 됐다. 뮌헨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가는 길이었다. 뮌헨 하는 순간에 역시나 내 마음은 콩밭으로 달아났다. 그 브로이 하우스에 갈 수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가내수공업에 종사하는 1인의 해외출장 동행인은 사장님, 즉 아빠다. 사장님이랑 중국부터 시작해 여러 나라를 거치며 출장관련 무사히 지내고 돌아오기 각종 미션을 클리어하고(이건 진짜 따로 써야된다 할말하않 백마흔다섯개) 레벨업하고 있었다. 뮌헨에 갔을 때는 아빠도 사사건건 '이거 얼만데?' 하던 경상도 꼰대아저씨에서 선택적으로나마 '이런데도 함 오보고 그래야 된다' 정도는 발전을 했다.
다시 간 뮌헨은 겨울이었다. 박람회투어 전문 여행사가 있다. 항공, 호텔 조식 후 버스송영과 저녁식사를 제공한다. 아무리 찾아도 시즌 중에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 투어의 어느 날 저녁식사가 시청 근처라고 했다. 설마!! 세상에!!! 진짜 바로 그 브로이 하우스였다. 걸어가는 중간에 아빠한테 저기는 시청이고, 저 사자가 뮌헨의 상징이고, 독일 맥주 축제가 옥토버페스타 인데 하는 그런 소소한 얘기들을 하며 솔직히 좀 들떴다. 여기를 다시 근데 아빠랑. 아부지 출장 다니면 피곤한데 음식도 입에 안 맞아 짜증을 얼마나 부리는지 모른다. 평생 일만 하던 아빠가 낯선 풍경 앞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을 하면 가끔 몰래몰래 바라보곤 했다. 그래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이렇게 다닐 수 있겠어 할 수 있을 때 따라 댕기자 생각을 하곤 했다. (그치만 영감 가만안도!!)
내가 맛있게 먹었던 맥주라고 하니 아빠도 같은 걸로 시켜놓고
'좀 새그라바서 글타마는 그래도 게안네'
아빠는 문화체험 마냥 맥주를 마시고 이인당 하나씩 나온 슈바인학세를 좀 곤란해 했다. 어데 썽그리지도 않은 통짜를 내놓노 소리가 나오다 들어간 얼굴. 닭은 짜고, 햄은 와 이만한데? 그래도 요래 조래해가 먹으면 된다 세심하게 잘라 드리고 나는 맥주를 퍼붓기 바빴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이제는 이름도 알고 그러니 아빠 이거 좀 더 잡솨봐. 이거 여기가 시초야 진짜야.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그 광장을 지나게 되었다. 가이드 분께 물으니 정말 여름날의 그 광장이 맞다고 한다. 아빠는 내 얘기를 들으며 즐거워했다. 평소에는 절대 알 수 없는 내가 지나온 시간을 아빠도 거기서 만나는 거였다. 이래 걸으니 좋네 하며 숙소 복귀를 아쉬워했다.
'그 이름 머꼬 족발 그거는 우리나라가 낫드라. 근데 말라꼬 감자는 그마이나 주노.'
'아부지, 그래도 좋지요?'
돌바닥에 부딪혀 돌아오는 발걸음 소리가 별로 피곤하지 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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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부산 사우어에일 절대강자는 영도에 있다. 사우어영도. 와일드웨이브브루어리가 이사를 가며 사우어 에일 전문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일반적인 수제맥주도 있고 당연히 기본 사우어 에일부터 오크 숙성한 사우어 에일까지 다양하게 있고 시즌한정 사우어에일도 있다. 음식도 어지간한 레스토랑은 명함 접어야 된다. 해산물빠삐요뜨 진짜 끝내줌. 이제 외지에서 친구들이 오면 부산역에서 만나 여기가 무조건 1순위.
나는 운전을 할 테니 당신들은 사우어 에일을 드시오!!
특이사항 : 자꾸 술을 권하며 코 앞에 들이대고 맛있지 맛있지? 하며 뿌듯하고 흐뭇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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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얘기를 쓰다 보니 아빠도 요 한 번 오바야 되는데 언제 함 가지? 일단 동물농장 끝나면 얘기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