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스이짱
술 얘기를 시작하면 빠질 수 없는 친구가 있다. 내 나이에서 반을 접어도 보고 산 세월이 더 긴 친구.
이제는 안보는 친구.
만스이짱, 창원 정우상가 뒤편 크지 않은 가게는 바 좌석으로만 되어있다. 남자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시는 일식 주점. 모든 안주가 고르게 맛있고 술 종류도 적당히 갖췄고 무엇보다 문을 열자마자 쪼로록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참 맘에 들었던 집.
친구가 괜찮은 술집이 있다고 해서 갔다. 차가 있는 날은 술 한잔하고 친구 집에서 자고 오거나 아니면 술 안 먹고 안주만 뽀개고 집에 오거나. 참 뻔질나게 갔다. 어느 날인가 평일 저녁 영화를 보고 마음을 못 이겨 너무 서글픈데 밥 먹으러 오라는 친구 말에 넙죽 달려가 두어 시간 앉았다 오기도 했다. 모든 계절에 여러 친구들과 혹은 둘이서 참새 방앗간처럼 들리던 곳. 창원이 멀다면 먼데 재미 삼아 다녔다. 거기 친구도 있고 맛난 술집도 있으니까.
어쩌다 흩어졌을까. 자잘한 오해들이 쌓이기 시작하자 그냥 이해하고 넘길 일들도 뾰족하게 마음속에 남았다. 그게 남다 보니 넘쳤다. 그게 끝이다. 서운함이 극에 달하자 더는 이해할 마음도 이해할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너무한가, 내가 심했나 생각했지만 더 이상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인연이 여기까지 인가 보다 하기로 했다. 주변 친구들이 더 안타까워했다. 세월이 얼만데 너희가. 내가 맺은 인연들을 친구에게도 부지런히 소개하고 친구의 인연들도 내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긴 세월이었다. 그러니까 그 세월을 뒤엎고 그만 보자고 했다.
내가.
만스이짱이 가고 싶어 창원을 가기도 했었는데. 그것도 친구가 거기 있어서 가능한 얘기였다. 아무리 좋다한들 시외까지 그렇게 뻔질나게 다녔겠냐고. 무심한 듯 모른 척하며 챙겨주시는 사장님이 고맙고, 속 얘기 슬몃슬몃 풀어내고 맥락 짚어주지 않아도 알아채는 친구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마시는 술은 얼마나 맛있겠나. 삼박자가 맞아 그리웠던 거지 그냥 맛있는 가게는 얼마든지 있다. 의미가 생겨나는 건 찰나인데 그 찰나가 의미가 없어졌다면 모든 것은 빛을 잃는다. 그저 하나 하나로 분절된다.
친구와 절연하고 그 이듬해 만스이짱도 문을 닫았다. 내가 아무리 좋아한들 안 되는 일들이 있다. 만스이짱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인스타 공지를 보고 아쉬웠다. 코로나가 길어져 외출을 줄이며 통 못 가다 친구를 안 보게 되니 굳이 창원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사장님께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하고 싶었지만 굳이 인스타 디엠을 남기지는 않았다. 제가 누군데요 하고 설명하기도 좀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사람의 일이란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 어린 시절에 평생을 이야기하던 건 평생의 무게가 얼마인 줄도 모를 때라 그 평생을 입에 올리는 게 쉬웠을지도 모른다. 한 때 가까이 지낸 친구에게 온 마음을 다해 평생친구라 다짐을 했지만 사라진 인연은 열손가락을 꼽고도 넘친다. 얼마쯤 살고 나니 한 시절도 무거워 시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다. 하물며 평생이라니. 손으로 꼽아보니 처음 만나 보고 산 세월이 더 길다 하며 웃던 날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글쎄다, 안 보고 지낸 세월이 이만큼이다 하는 날도 올까. 좀 서글프고 착잡하고 궁금하지만 알고 싶지 않기도 하다. 내가 그 친구를 많이 좋아했다.
한 시절이 지났구나 한다. 비 오는 날, 만스이짱 소주가 그렇게 달았다. 바지락술찜에 술을 마시다 보면 냄비 바닥이 금방이었는데. 그러다 울어도 부끄럽지 않았는데. 뒷날 겔겔거리면서 다시 술을 마시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하면서도 해장술? 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걸 같이 지나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랬었는데.
사라진 것들이 그리운 건 그래도 좋은 기억이 남아서다.
이제는 너는 너의 시간을 나는 여기서 나의 시간을 살아가지.
사장님은 어디로 가셨을까. 자리에 앉으면 내 주시던 단정한 사각 그릇에 담긴 부추무침과 나폴리탄 지금도 가끔 생각하거든요.